용서는 나의 수행, 칭찬은 나의 기도

정운스님 지음/ 불교신문사
정운스님 지음/ 불교신문사

30년 전 보령에 원력 세워
세원사 창건 후 포교 매진

불교신문 논설위원 칼럼 등
틈틈이 쓴 글 책으로 엮어

“수행자는 자기를 위한
안락 즐겨서는 안 된다”

충청남도 서해와 인접한 보령시 시골마을에 세원사를 개원해 30년이 넘게 지역민과 청소년 포교에 매진해 온 정운(淨雲)스님이 다섯 번째 산문집 <용서는 나의 수행, 칭찬은 나의 기도>를 세상에 내놓았다.

정운스님(보령 세원사 주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은 1989년 보령에 세원사를 창건해 주지로 있으면서 글을 쓰고 도자기를 빚으며 지역포교에 앞장서 왔다. 정운스님은 25년 전부터 농·어촌 청소년 대상으로 청소년 복지, 상담, 문화, 선도를 이끌어 가고 있기도 하다. 청소년 사업의 공로로 대통령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으며 시인으로도 등단해 4권의 시집과 4권의 산문집, 다수의 논문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1989년 충남 보령에 세원사를 창건해 30년이 넘게 지역민과 청소년 포교에 매진해 온 정운스님이 다섯 번째 산문집 ‘용서는 나의 수행, 칭찬은 나의 기도’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정운스님이 빚어 세원사 경내에 전시하고 있는 도자기 작품.
1989년 충남 보령에 세원사를 창건해 30년이 넘게 지역민과 청소년 포교에 매진해 온 정운스님이 다섯 번째 산문집 ‘용서는 나의 수행, 칭찬은 나의 기도’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정운스님이 빚어 세원사 경내에 전시하고 있는 도자기 작품.

보령에 세원사를 창건한 계기는 우연한 인연이었다. “선객이신 은사 스님께서는 학비를 대줄 수 없어 나는 어린이 법회 법사를 맡아 학비를 벌었다. 평생 어린이 청소년 포교에 몸담는 계기가 될 줄 몰랐다.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하고 한창 서울에서 활동하던 중 심한 결핵을 앓는 바람에 휴양 차 도반의 소개로 충남 보령 어느 민가에 머물게 됐다. 어느 날 시내에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탔는데 승복을 입은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아줌마가 있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불교는 도대체 무엇을 했고,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하는 생각에 모든 욕심을 버리고 이곳에서 포교 원력을 세웠다.” (본문 ‘머무는 그곳이 법당이더라’ 중에서)

이후 스님은 여기저기 반연(攀緣)으로 시주해 고추밭을 개간하고 가건물을 지었는데 불상을 모실 돈이 없었다. 마침 포교당을 그만두는 곳이 있어 부처님을 모셔 놓고 기도하면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 한문, 영어를 가르치고 어린이 법회를 보았다. 무속과 교회가 득세하는 승복 입은 비구니 스님을 ‘아줌마’라고 부르는 이곳에서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어린이 법회는 어머니가 중심이 되는 성인법회로 이어졌고, 다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멀리서도 세원사를 찾아왔다. 어린이 법회는 보령에서 청소년 사업으로 이어지는 터전이 됐다.

모든 과정은 힘들고 어느 것 하나 순탄하지 않았다. 어린이 법회는 열었는데 아이가 없었다. 아이가 모이자 함께 뛰어줄 지도자가 없었다. 공간도 최악이었다. 가건물은 비바람이 불면 날아갈 정도로 허술했다. 아이를 모으고 가건물은 정식 법당으로 고쳤지만 함께할 스님도 도와줄 선생님도 여의치 않았다. 가건물을 헐고 불사를 하면서 잠시 법회를 접고 계속 하느냐를 놓고 고민하는데 청소년교화연합회 보령지부를 만들어 찾아가는 법회를 해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다시 일어설 용기가 생겼다. 아이들, 공간, 지도교사 등 모든 고민이 일거에 해결되는 묘수였으며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앞날이 험난해도 지나온 길만 하라는 생각이 드니 저절로 힘이 샘솟았다.

이후 청소년자원봉사센터를 설치해 보령시 전체 청소년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사찰이 아닌 일반 청소년센터여서 종교 장벽이 없어졌다. 무대가 한층 넓어지고 활동 폭이 확대된 것이다. 시내에 사무실을 얻어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그동안 다져온 사찰은 큰 힘이었다. 자원봉사센터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사찰에서 감당했다. 청소년 포교 활동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니 사찰 살림도 줄여야 했다. 지금도 세원사는 공양주가 없이 주지인 정운스님이 공양주, 채공, 부전, 정원사 소임을 다 산다. 1인 5역, 6역, 7역이다. 비용을 줄여 청소년 사업에 환원하느라 조정했던 사찰 운영기조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세원사는 포교 활동에 부적합한 위치에 놓여 있어 재정과 신도 확보에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그래도 보령 시내에서 청소년사업을 벌이고 시(市)를 대표하는 종교로 발전하는 데는 세원사의 역할이 컸다. 단단하게 뿌리 내린 세원사를 바탕 삼아 더 넓은 지역으로 나온 포교 전략은 성공했다. 사찰을 벗어나니 관과 지역의 협조를 얻기에 용이했고, 더 많은 어린이 청소년을 만났다.

포교 전략보다 앞서는 것은 수행자의 삶 그 자체다. 수행자로서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자세가 포교의 바탕이요 가장 큰 원동력이며 전부다. 이러한 수행자의 원력이 몇 년에 걸쳐 아낌없는 인적, 물적 투자로 신망이 더해졌고 오늘날의 보령 청소년 포교의 터전을 만들었다. 보령시 청소년 사업의 성과로 2016년에는 대통령국민포장을 받았다. 그렇게 30년 여 동안 부처님 도량을 일구며 현재에 이르렀다.

정운스님의 이번 수상집은 <산에 사는 물고기>(2011년) 이후 10년 만이다.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쓴 적은 없다. 살면서 놓치고 싶지 않은 일상과 사람들, 기억해 두고 싶은 경험을 글로 옮기다 보니 원고가 모이고 모였다. 이들을 다시 엮어 이름을 지어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칼럼 ‘수미산정’에 한 달에 한 번 꼴로 6년여 간 글을 실었는데 그 편린들이 모여 한권의 책으로 나오는데 일조했다.

정운스님의 이력은 다양하다. 보령 세원사 주지로 지역 청소년 지도사로 활동하면서 대한불교조계종의 중앙종회의원도 맡고 있다. 세간으로 치면 국회의원 격(格)이다. 중앙종회의원 활동을 하면서 비구니 스님들의 입장 대변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러저러한 이야기를 묶어 ‘종단 이야기’로 엮어냈다.

정운스님은 수행자다. 스님은 “수행자는 자기를 위한 안락을 즐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뼛속 깊이 박혀 있다. 누구에게 준다는 목적이 아니라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 표출하는 그 자체를 스스로 즐기는 참한 수행승이고 싶다”고 했다.

수행자로 살아오면서 깨친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서 얻은 교훈이 글로 무르익었다. “대나무는 자랄 때마다 마디를 만든다. 그 마디가 바로 매듭이다. 대나무가 부러지지 않고 몇 미터씩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마디 때문이다. 비바람에 꺾이지 않는 것 또한 마디라는 매듭의 힘이다. 대나무 마디는 속이 빈 대나무 강도를 강하게 만든다. 사람 역시 한 단계 성장을 하며 매듭을 확실하게 맺으면 대나무처럼 유연하면서도 강하고, 그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한없이 성장하는 힘을 지니게 된다.” (본문 ‘매듭짓는 습관’ 중에서)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대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끄집어낸다. “일상은 가장 사소해 보이지 만 이 작은 일 안에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류를 범한다. 큰 문제에는 사실 작은 문제 들이 쌓여 있는 것이다. 작은 문제들을 처리함으로써 큰 문제들은 해결이 된다. 때론 일상을 단지 거추장스러운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하지만 일상은 그대로 엄연히 존재한다.” (본문 ‘일상적인 종교’중에서)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다. “죽음에 빠르고 느림이란 없다. 생명을 가진, 아니 무생물조차도 소멸하고 사라짐을 향해 간다. 영겁의 시간에서 보면 30년 한 세대는 눈 깜빡하는 찰나보다도 더 짧다. 나고 사라지는 그 찰나를 누구도 붙잡을 수 없다. 그래서 생각이 일어났을 때 하나하나 정리해 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본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다’ 중에서)

정운스님은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편함만을 추구하지 말라는 충고를 던진다. “‘진주’가 나오는 것은 전복이라는 조개의 살이 썩는 고통을 겪은 뒤에 나오는 결정체라고 한다. 화이트칼라가 되고 싶고 모두에게 빛나는 진주가 되고 싶다면 조개의 살이 썩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 고통 없이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본문 ‘화이트칼라 일자리’ 중에서)

수행과 더불어 포교를 하는 과정에서 정운스님은 틈틈이 흙을 만지면서 도자기를 빚었다. “흙을 만지고 성형하는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마음 밭에 생각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마음 밭에 잘 뿌려진 씨앗은 고온의 불에 의해서 각각의 다른 모양으로 색깔을 품으며 새롭게 태어난다. 그 본성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도예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수행자의 여정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수행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갈무리 짓는 모양의 결정체이다. 그 결정체에 이름을 디자인 해주는 일은 둘이 아닌 하나가 되기 위한 끝없는 구도의 길이다.” (본문 ‘이름을 디자인하라’ 중에서)

스님은 도자기 작품을 책 중간 중간에 사진으로 들어앉히며 “글로써 다 표현하지 못했던 감성의 여운까지도 이 책에 싣고 싶어 직접 빚은 도예작품 사진들을 넣어보았다. 소박한 재주지만 눈여겨 봐주었으면 한다”고 면서 “코로나로 위기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이 비타민이 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서해바다 인근 보령 오서산의 서늘한 바람이 골을 타고 흘러드는 세원사에서 띄우는 비구니 스님의 맑고 청량한 글이 담긴 수상집 <용서는 나의 수행, 칭찬은 나의 기도>가 깊어가는 가을 독자들의 마음에 쌓인 속진(俗塵)을 씻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태동 기자

<사진1> 1989년 충남 보령에 세원사를 창건해 30년이 넘게 지역민과 청소년 포교에 매진해 온 정운스님이 다섯 번째 산문집 <용서는 나의 수행, 칭찬은 나의 기도>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정운스님이 빚어 세원사 경내에 전시하고 있는 도자기 작품.

■ 정운스님은…

우건(旴乾) 정운(淨雲)스님은 충남 보령 세원사 주지로 있으면서 글을 쓰고 도자기를 빚으며, 25년째 농어촌 청소년 대상으로 청소년 복지, 상담, 문화, 선도를 이끌어 가는 청소년지도사이다. 청소년 사업의 공로로 대통령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또한 등단한 시인으로 4권의 시집과 4권의 산문집, 다수의 논문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스님은 한서대 겸임교수, 보령시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장, 불교신문 논설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사회복지학 박사로 세원아청문화육성회, 보령시청소년교화연합회 회장, 보령시 청소년문화의집 관장, 보령시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장,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조계종 제17대 중앙종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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