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스님
동은스님

 

횡성에서 작은 암자를 지어놓고 사는 후배스님이 있다. 말이 암자지 스님들끼리 흔히 말하는 토굴이다. 얼마 전 삼척에 일이 있어 왔다며 차 한 잔 하러 가도 되냐고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어서 오시라고 했다. 한때 해인사 선방에서 같이 정진도 하고, 하동에 가서 녹차를 만들기도 했었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회포를 풀었다.


토굴살이는 어떠냐고 물었다. 주 수입원이 고추와 사과농사인데 작년에는 비가 많이 와서 다 망했다고 했다. 시름에 잠겨있던 차에 비슷한 처지에 있던 이웃이 돈 벌러 가지 않겠냐며 권해서 같이 나왔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분이 바로 목사님이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나온 스님과 목사라, 참으로 희한한 조합이었다. 하는 일은 독거노인 가정에 지킴이용 CCTV를 달아 드리는 것인데 기술은 따로 좀 배웠다고 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큰스님의 제자라 여기저기 연락해서 편히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민생들의 삶 한복판으로 뛰어든 스님의 용기가 대단했다. 시내 여관에 숙소를 잡아 놨다 길래 우리 절에서 다니라고 했더니 좋아하며 일을 나가셨다. 아침 일찍 나가면 저녁 늦게 들어오셨는데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방을 따로 드리니 난방비 많이 나온다며 목사님과 한 방을 쓰셨다. 일주일 정도 있다 가셨는데 신도 몇 분과 뜻을 모아 여비를 좀 드리긴 했지만 마음이 안타까웠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먹어야 산다. 수행자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러 죽기를 각오하고 먹지 않는다면 몰라도, 삶을 걸고 먹이를 구하는 일은 숭고하다. 존재의 목적도 결국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늙고 병들어 오갈 데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망상이 들 때가 있다. 종단과 각 교구마다 노스님들이나 아픈 스님들을 위한 복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평생을 걸망지고 다니는 스님들과,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스님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아직 답답한 실정이다.


출가할 때 늙고 병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에 출가를 안 하는 스님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들도 사람인지라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노후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려면 시간이 걸린다. 교구나 종단에서 먼저 도움이 필요한 스님들을 찾아 생계 걱정이라도 하지 않을 지원이 있으면 한다. 목마른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강물이 아니라 한 바가지의 물이다. 대부분 몸이 아프거나 대중들과 살수 없는 사정이 있어 토굴살이를 하겠지만, 이런 스님들께 종단에서 작은 관심만 보여줘도 얼마나 고맙고 자긍심이 느껴지겠는가. 출가자 급감의 원인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평생 수행과 포교에 헌신한 스님들의 노후보장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훌륭한 수행자를 기대하기는 요원하다.


천은사에 봄가을이면 어김없이 탁발 오는 노스님이 계신다. 팔십이 넘은 노구에도 걸망지고 걸어 다니며 객승의 예를 다하는 선승이셨다. 정선 토굴에서 혼자 장작패고 군불 때면서 지낸다 하셨는데 지난 가을에는 오지 않으셨다. 코로나 때문에 폐 끼칠까 안 오셨다면 다행인데 건강은 괜찮으신지 걱정이다. 거처를 모르니 찾아 뵐 수도 없다. 주소라도 알아 둘걸 하는 후회가 된다. 올 봄에는 꼭 다시 오시길 기도 드린다.

[불교신문3659호/2021년3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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