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 - 희유하신 세존의 숨결 석굴암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 - 희유하신 세존의 숨결 석굴암①
  •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 승인 2021.03.31 16:07
  • 호수 3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600년 전 법화경 설하시는 경이로운 법석”

주실은 ‘원형과 돔’으로 구성
무한한 우주 공간을 나타내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원형벽면 입구양쪽 문수ㆍ보현
제석천, 범천과 10대 제자 …
오색광명 광배는 신의 한 수
석굴암의 진면목은 26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 보살, 천신, 불자들에게 법화경을 설하는 경이로운 자리하는 점에 있다. 살아 있는 듯 자연스런 인체표현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각각의 조각에 법화경의 내용이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신심을 더욱 더 고취시키는 자리가 되고 있다.
석굴암의 진면목은 26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 보살, 천신, 불자들에게 법화경을 설하는 경이로운 자리하는 점에 있다. 살아 있는 듯 자연스런 인체표현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각각의 조각에 법화경의 내용이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신심을 더욱 더 고취시키는 자리가 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 받는 부처님은 어떻게 조성해야 인간적인 모습과 초월자적인 모습을 동시에 표현하고 깨달음을 형상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 부처님의 숨결을 느끼고자 하였던 신라인들의 신앙심은 석굴을 팔 수 없는 화강암 지형을 ‘발상의 전환’이라는 기적을 통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인공석굴을 쌓고 그 위에 돌과 흙을 덮어 세계 최초로 불가사의한 석조건축물인 석굴암을 탄생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석굴암을 이야기 할 때 ‘아름답다 과학적이다’란 말이 주종을 이룬다. 비유하면 찻잔의 아름다움만 보고 그 속에 담긴 차 맛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석굴암에 왜 이런 조각을 했는지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미적기준과 축조기술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굴암의 진짜 면목은 26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 보살, 천신, 불자들에게 <묘법연화경(법화경)>을 말씀하시는 경이로운 자리를 표현한 것이다. 이들 조각은 살아 있는 듯 자연스런 인체표현으로 더욱 신앙심을 불러일으킨다. 각각의 조각에 <법화경>의 내용이 어떻게 투영되어 나타났는지를 살피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석굴암은 일반 사찰에 있는 조형을 모아 한 장소에서 한 눈에 볼 수 있게 꾸며져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석굴암의 주실은 원형과 돔(dome)으로 구성되어 무한한 우주 공간을 나타내고 있다. 중앙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원형벽면 입구 양쪽에는 문수, 보현보살, 제석천, 범천과 법화경 수기 10대 제자, 십일면관음보살이 서 있다.

 


 

1만8000의 세계를 비추는 미간의 ‘백호’, 머리에 솟은 상투 형태의 ‘육계’, 목에 있는 세 줄의 둥근 모양의 ‘삼도’ 등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나면 “중생 또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표현한” 신앙적 조형미에 또 한 번 감동하게 된다.
1만8000의 세계를 비추는 미간의 ‘백호’, 머리에 솟은 상투 형태의 ‘육계’, 목에 있는 세 줄의 둥근 모양의 ‘삼도’ 등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나면 “중생 또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표현한” 신앙적 조형미에 또 한 번 감동하게 된다.

 

우리민족이 염원하는 상호


먼저 석굴암은 우리민족이 염원하는 부처님을 우리의 얼굴로 조성했다. 깨달음을 이룬 성도(成道) 당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은 신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천(人天)의 스승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최근 윤재신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석굴암 석가모니 부처님은 항마촉지인으로 인해 어깨가 왼쪽으로 3도 틀어져 있다고 한다. 1300년 전 인체의 사실성에 기초하여 조각하였다니 정말 놀랍다. 지신(地神)을 가리킨 오른쪽 검지는 움직이는 듯하고 오른 팔과 허리사이의 뚫린 공간은 완벽한 입체감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부처님이 동짓날 일출방향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정동방향으로 앉으신 것은 동짓날이 새해인 신라인들은 곧 부처님 말씀이 모든 일에 기준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법화경> ‘서품’에 “미간의 백호상으로 광명을 놓으시니 동방으로 1만8000의 세계를 비춰 시공을 초월해 중생을 구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기적을 일으키셨다”고 했다. 부처님의 머리에 솟은 상투 형태의 육계는 많은 대승경전에서는 “선행의 과보로 나타난 것으로 정수리로부터 백 가지 보배의 광명을 놓아 중생의 모든 두려움을 없애준다”고 했다.


불자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인연은 무엇일까? 부처님을 만난 인연이다. <법화경> ‘방편품’에 “사리불아, 부처님의 지혜를 중생에게 보이고(見道), 부처님의 지혜를 중생에게 깨닫게 하고(修道),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가게 하려고(無學道) 세상에 나타났느니라”고 하셨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오신 목적을 조형으로 표현한 것이 부처님의 목에 있는 세 줄의 둥근 모양의 삼도(三道)이다. 위없는 깨달음을 이룬 분이라는 것을 중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중생 또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가사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인도 당시의 옷차림으로 왼 가슴의 젖꼭지까지 보일 정도로 얇고, 중첩된 옷 주름은 왼팔과 양 무릎을 덮고 원형 대좌 앞에 부채 살처럼 펼쳐 인체조각의 사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부처님의 가사는 일체의 불안을 그쳐 쉬게 한다고 한다. 뒷벽 부처님의 머리에서 나오는 오색광명을 표현한 연화광배는 조형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위치가 신의 한 수이다. 예경장소인 전실에서 바라보면 광배의 중앙에 부처님 얼굴이 정확히 보이도록 하여 더욱 장엄하다.


 

깨달음을 이룬 당시 ‘항마촉지인’은 신의 굴레에서 벗어난 인천의 스승으로 부처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지신(地神)을 가리킨 오른쪽 검지는 움직이는 듯하고 오른팔과 허리사이의 뚫린 공간은 완벽한 입체감을 보여준다.
깨달음을 이룬 당시 ‘항마촉지인’은 신의 굴레에서 벗어난 인천의 스승으로 부처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지신(地神)을 가리킨 오른쪽 검지는 움직이는 듯하고 오른팔과 허리사이의 뚫린 공간은 완벽한 입체감을 보여준다.

 

부처님은 왜 돌에 조성할까?


그리고 부처님의 얼굴은 항상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부처님은 생사를 초월하신 분이라 늙은 모습이 아닌 항상 젊음 모습으로 표현된다. 부처님은 왜 돌에 조성할까? 부처님의 영원성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대반열반경> ‘금강신품’에, 마하가섭이 여쭙길 “세존이시여, 여래의 변하지 않는 몸은 마치 돌에다 형상을 새긴 것과 같겠나이다” 하였고, <법화경> ‘여래수량품’에 “부처님은 시공을 초월해 상주불멸한 존재”라 했다. 그러니 부처님을 돌에 새기는 것은 불멸한 존재임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또한 부처님이 신발을 신지 않는 이유에 대해 <불설처처경>에서 “부처님이 신발을 신지 않는 데는 세 가지 인연이 있으니 수행하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욕심을 적게 하려고, 발바닥에 있는 윤상을 사람들이 보고서 기뻐하게 하려고 한 까닭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앉으신 자리를 불단 또는 보단이라 하는데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도록 중생들이 마련한 자리이다. <대방등대집경>에 “어떤 것을 단이라 하는가? 이른바 버리고 베풂이니라. 자기의 육신을 죄다 버리고 베풀 수 있거늘 이것을 단이라 하느니라” 하였다. 욕망을 버린 부처님께서 중생에게 끝없이 베풀며 머무르시는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최초로 부처님께서 앉으실 자리를 마련한 사람은 길상초를 공양한 목동 쿠사가이다.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서 길상초를 깔고 “나는 불길함을 깨뜨려서 길상을 이루겠다. 정각을 이루지 않으면 결코 이 자리를 뜨지 않으리라”는 대원을 세워 깨달음을 이루셨기 때문에 길상초가 금강보좌가 되었다.


그리고 <잡아함경> ‘인간경’에 “비록 물속에서 자라지만 일찍이 물이 묻은 일 없는 흰 연꽃, 분다리꽃과 같아 비록 이 세상에서 살지만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삶과 죽음의 한계를 벗어났으니 그러므로 불타라 한다”고 말씀하여 연화좌가 되었다. 둥근 연화좌 뒤에 공간이 있는 것은 인도 당시처럼 신라인들도 우요삼잡(右繞三匝)으로 부처님께 예경하여 공경의 의미를 나타냈다. 석굴암 부처님의 잘 생기고 위엄이 서린 당당한 장육존상(약 4.8m)의 모습을 <법화경> ‘방편품’에서는 “부처님은 시방세계에 홀로 두려움이 없고 잘 생긴 모습으로 몸을 장엄하며 그 광명이 세간에 비치어 중생들의 존중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석공의 정을 맞아 본 적 있는가?”


어느 날, 경주 불국사 석굴암의 돌계단이 석굴암 석가모니 부처님께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하였다. “부처님이나 저나 모두 같은 토함산의 바위에서 나왔는데, 인간들은 어째서 나는 짓밟고 부처님은 지극히 공경합니까?”하고 부처님께 대들었다. 그러자 석굴암의 부처님은 미소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신라 석공의 무수한 정(釘)을 맞고 셀 수 없이 참아온 결과 세상에서 제일 존경받는 부처가 되었다. 그런데 너도 나처럼 석공의 정을 맞아 본 적이 있는가?”


부처님께서는 무수한 생을 인욕바라밀로 수행하셨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온몸을 정으로 맞은 석굴암 부처님만 하겠는가? 힘들더라도 참아내서 우리 모두 부처가 되자. 힘들겠지만.
 

[불교신문3659호/2021년3월30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우)03144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67(견지동), 전법회관 5층 불교신문사
  • 편집국 : 02-733-1604
  • 구독문의 : 02-730-4488
  • 광고문의 : 02-730-4490
  • 사업자등록번호 : 102-82-02197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06446
  • 창간일 : 1960-01-01
  • 등록일 : 1980-12-11
  • 제호 : 불교신문
  • 발행인 : 원행스님
  • 편집인 : 정호스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여태동
  • Copyright © by 불교신문. 기사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