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율론 삼장에 능통, 선농일치 삶…걸림없는 자유인
경율론 삼장에 능통, 선농일치 삶…걸림없는 자유인
  • 하정은 기자
  • 승인 2021.03.26 15:30
  • 호수 3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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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총림 방장 고산당 혜원대종사 행장

13세 때 부친 인도에 따라 범어사에 입산
20년 화두선…전강·전계 율사로서 한평생
쌍계사 중창, 혜원정사 석왕사 연화사 창건
“상좌들에겐 엄격하고 원칙적인 성품이지만
신도들 만나 법문할 땐 다정다감한 할아버지”
경남 통영에서 뱃길로 1시간여 들어가면 연화도라는 섬이 있다. 1998년 8월, 고산스님은 이 메마른 섬에 연화사라는 관음도량을 창건했다. 대웅전부터 요사채 해수관음상까지 도량 곳곳 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매달 관음재일에는 손수 도량도 점검하고 법문도 했다. 사진은 2008년 연화사 앞에 선 스님의 모습이다. 불교신문
경남 통영에서 뱃길로 1시간여 들어가면 연화도라는 섬이 있다. 1998년 8월, 고산스님은 이 메마른 섬에 연화사라는 관음도량을 창건했다. 대웅전부터 요사채 해수관음상까지 도량 곳곳 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매달 관음재일에는 손수 도량도 점검하고 법문도 했다. 사진은 2008년 연화사 앞에 선 스님의 모습이다. ⓒ불교신문

고산스님은 1933년 경남 울주에서 7남매 중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세 살배기 때부터 고기삶는 냄새만 맡아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퍼질 정도로 예민했고 유년시절엔 집근처 간월사지 석불좌상이나 용화사 미륵석불을 자주 참배했다. 인근 석남사로 초등학교 졸업여행을 갔다가 어머니가 주신 돈 50전을 몽땅 불전함에 넣고 열두번 절하면서 “부처님, 이 돈 모두 드릴테니 훌륭한 사람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던 일화도 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스님은 부친 손에 이끌려 범어사 조실 동산스님을 참방했고, 동산스님은 “진작 올 것이지 왜 이제 왔어”라며 13살 소년을 흔연히 맞았다. 1945년 4월26일 스님의 입산득도일이다. 고된 행자생활 석 달만에 아직 어린 스님은 엄마 생각에 고향집으로 도망쳤다가 이듬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상실감을 가누지 못한채 다시 범어사로 입산했다.

당시 동산스님은 돌아온 어린 상좌에게 “내가 시키는대로 절생활 잘 하면 꼭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고 장담했고, 지극한 기도 끝에 스님은 관세음보살로 화현한 어머니를 상봉했다.

고산스님은 1948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1956년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와 보살계를 각각 수지했다. 1954년 부산 범어사에서 첫 안거를 지낸 이후로 20여년간 합천 해인사, 김천 직지사, 청암사 등 전국 선원에서 치열하게 화두를 참구했다. 경학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는 강백으로서도 일가를 이뤘다. 

고봉스님으로부터 ‘선교일여도리(禪敎一如道理)’의 전강을 받아 <대승기신론 강의> <반야심경 강의> <돈황본 육조단경> <우리말 불자 수지독송경> <다도의범> <사람이 사람에게 가는 길> <지옥에서 극락으로의 여행> <관세음보살 영험록, 소원을 이루는 법> <머무는 곳 없이> <지리산의 무쇠소>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1972년 동산스님 석암스님으로 이어지는 율맥을 이어받은 스님은 한평생 율사로서 권위를 인정받았고 2008년 대한불교조계종의 아홉 번째 전계대화상으로 역할을 올곧이 수행했다. 

고산스님의 전법포교 원력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지대하다. 1960년대 말 부산 동래포교당 주지를 하면서 중고생학생회를 만들어 지도법사로 맹활약했고 1972년 서울 조계사 주지를 맡아 처음으로 불교합창단을 창설하는 등 불교대중화에 앞장섰다. 1975년 폐사에 가깝던 하동 쌍계사의 주지를 맡아 중창불사를 통해 교구본사로서 사격을 갖춰 오늘날 쌍계총림의 근간을 세웠다. 부산 혜원정사, 부천 석왕사를 창건해 도심포교의 토대를 닦았고 통영 연화도에 연화사를 창건하고 관음신앙의 기틀을 다졌다. 

“한번 하고자 하는 일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출현해서 못하게 한다면 그만두지, 중도에 폐한 일이 없었다”는 스님의 결단과 원력이 맺은 결실이다. 고산스님은 1998년 종단이 혼란기에 있을 때 제29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맡아 종단안정에 기여했으며 2004년 조계종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스님은 팔순이 넘어 하동 쌍계사 조실로 지내면서도 부산과 경기도 부천, 통영 연화도 등 원거리를 오가면서 법회와 법문을 거르지 않기로 유명했다. 매달 재일마다 전국을 순회하듯 스님을 기다리는 신도들을 찾아다녔다. 개인적으로 찾아온 신도들에겐 거리를 두지만, 법상에 앉아 법문을 할 때 만큼은 정감 넘치는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다정다감하고 유머가 넘쳐 법당은 늘 웃음소리가 넘쳤다.

남편이나 시댁에서 존중받는 법이나 부자되는 비결, 여성들 다이어트 비법, 현명한 육아방식이나 며느리 사위 대하는 자세 등을 부처님 법에 빗대 스님 특유의 재치를 곁들여 들려주는 명법문은 법회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몰려드는 이유다. 

경율론 삼장에 두루 능통한 종단의 대표 원로로 추앙받은 고산스님은 틈틈이 붓글씨를 쓰면서 여가를 보냈고 울력을 하면서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삶을 실천했다. 전국 곳곳 도량마다 텃밭을 손수 일구고 상좌들에게 농사일을 엄하게 가르친 스승으로 유명하다.

고산스님은 2013년 본지 신년특집 인터뷰에서 행복한 삶을 묻자 “자기 욕심보따리를 풀어던지면 행복은 자연히 기다리고 있는 법”이라며 “감사하는 마음, 미소짓는 삶, 침묵하는 태도를 갖고 살도록 노력해 보라”고 당부했다. 

지난 2월 쌍계총림 방장으로서 내린 동안거 해제법어는 스님이 열반하기 전 마지막 법문이 됐다. “일대사 마친 자는 걸림없는 자유인이라(終一大事者 無碍自在人也).” 고산스님은 3월27일 스님이 한평생 일궈온 지리산 쌍계사에서 만개한 벚꽃 속으로 흩날리듯 떠나갔다. 법납 74년, 세수 88세. 

[불교신문3659호/2021년3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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