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판결과 사자상승의 본질

불교사회정책연구소장 법응스님이 불교신문 기획 보도 ‘선암사, 잃어버린 60년...‘불법(佛法)에 대처 없다’ 제하의 기사와 관련해 두번째 기고문을 보내왔다. 법응스님이 보내온 원고 전문을 모두 싣는다.

불교는 승가(僧伽Sangha)라는 특별한 공동체를 형성해서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승가는 부처 님가르침에 근거하였으며, 요지부동한 것은 그 구성은 독신 비구여야 한다는 조건이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장구한 역사의 도량 선암사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선암사 측의 주장은 대략 선암사는 조계종과 무관한 사찰이다 선암사는 1962년에 정권과 불교재산관리법에 의해서 부당하게 대한불교조계종으로 공부상 등재됐다 선암사는 우리가 과거부터 은사에게서 물려받아 점유해서 살고 있으니 우리 것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불교의 사자상승(師資相乘)’법류상속(法類相續)’ 제도를 바탕으로 한 주장으로 여겨진다.

사자상승(師資相乘)불교용어사전에서 스님으로부터 제자에게 학해(學解) 법문을 전하여 이를 받아지녀 끊이지 않게 함이라 설명하고 있다. 다분히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전수하고 면면케 한다는 의미다.

사자(師資)는 사장(師匠)과 제자(弟子)를 지칭하는 것으로 ()는 남을 가르쳐 이끌어 주는 자리에 있는 사람”, “()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하여 법()을 얻은 사람이란 의미다. 도량이나 건물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착안한 제도다. 사자상승은 물론, 도량 등 부동산까지 포함해서 해석할 경우에 필수 조건은 승가의 전통과 그 정체성 등에 부합여부를 따져야 한다. 법류상속은 사자(師資)’의 집단적 의미를 부각한 표현이다.

석가모니부처님 이래 불교는 다양한 이론의 가지를 쳐서 분파되었다. 그러나 불교라는 큰 틀에서 사자상승의 조건과 내용은 변하지 않았으니 삭발염의 한 독신 비구와 그 구성의 집단이다. 독신 비구와 그 구성의 집단을 외면하고서는 불교와 그 전통은 물론 승가의 정통성에서도 이탈한 행태가 분명하다.

역사성 있는 큰 도량일수록 불교의 원칙에 입각해서 승가를 구성했으며, 수행의 모범을 보여 왔으니 그 중 하나가 문제의 선암사다. 선암사의 개산 명분과 정체성, 불교사적 흐름은 독신 비구로 구성된 승가집단이라는 전제이며, 선암사의 역사와 일상의 구석구석에 깔려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분명코 그러했다.

대처는 일제강점기에 태동한 강제된 현상으로 1700년 한국불교사에서는 공연히 긍정 받을 수 없는 제도다. 선암사는 결혼한 승려가 작금에 자신의 노력으로 창건한 사찰이 아니다. 1천 년이 넘는 역사와 불교의 진수가 담긴 사찰인 선암사를 두고서 사자상승을 주장하려면 비구만을 인정하는 종단에 등록되었거나 상주 대중을 비구로 구성을 한 연후에 주장해야 그나마 설득력이 있다할 것이다.

태고종이 종조로 삼고 있는 태고보우스님은 중국 임제(臨濟) 스님의 법손(法孫)인 석옥(石屋) 스님에게서 법() , 인가를 받은 스님이다. 임제선사의 법을 사자상승했다. 그런데 보우스님 제자 중에 누군가가 비록 제가 결혼을 했으나 공부가 수승하고 서열이 높으니 저에게 사자상승해 주십시오. 그리고 도량도 물려주시고 제도적으로 취처를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면 보우스님께서 과연 그것을 용인했을까? 또 실제 그러한 일이 발생할 수도 없지만 만일 발생했다면 이 광경을 본 당대의 스님들은 침묵했을까?

보우스님의 법을 이은 조선시대의 기라성 같은 선사들 중 공연히 취처한 자에게 전법은 고사하고 사전(寺田) 한 떼기라도 물려주거나 받은 사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교계는 종조를 바꿈은 환부역조(換父易祖)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논쟁을 했다. 그러나 불교사 어디에 취처한 스님에게 작은 암자라도 하나 물려주기 위한 방편으로 사자사승을 거론한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사자상승으로 대표되는 법맥(계맥(戒脈선맥(禪脈강맥(講脈))의 면면(綿綿)이 단절의 위기 시는 밀사(密嗣), 몽중법문(夢中法門), 서상수계(瑞祥受戒), 위패건당(位牌建幢)의 방편을 강구해서 그 맥을 계승토록 했으니 승가에서 그 정통성이 얼마나 중요하지를 보여주는 한 예다. ‘초대계석(招待繼席)’이라 해서 문중에 선지식이 부재 시는 계정혜(戒定慧)를 구족한 타 문중의 스님을 초빙했으니 비록 문중이 다르다 해도 조선불교의 일체감을 보여주고 증명한 사례다.

불교 및 불교사와 관련한 사안에서 사자상승은 비구라는 순혈주의(純血主義)와 이를 표방한 종단을 제척하고서 거론하는 것 자체가 교리는 물론,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법리에도 반하는 행위다. 이를 외면한 판결은 오판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번 대법원의 파기 환송의 이유는 선암사 대중이 실제 거주하고 있다는데 착안한 판결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에 앞서 선암사의 불교와 불교사적 위치와 위상, 특히 장구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그 정체성부터 세밀히 살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역사와 시대상황으로 인한 대처 스님들의 입장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닌 것을 옳다 할 수 없으며, 사안을 억지로 합리화해서도 안 된다. 거듭 제안하는 바는 조계종과 태고종 양측은 법원의 판결이 아닌 대화로써 해결해야 하며 종내는 그러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