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제 개운하게 참 잘 죽었다

장웅연 지음/ 불광출판사
장웅연 지음/ 불광출판사

‘조주록’을 글감으로
풀어내는 삶의 의미

한마디로 정곡 찌르는
선사의 언어와 닮아
“청심환 같은 이야기”

탄탄하고 날카로운 문장력으로 익히 알려진 장웅연 작가의 새 책이다. 철학을 전공하고 불교계에서 20년간 일하면서 얻게 된 삶에 대한 이런저런 성찰을 담았다.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선사인 조주종심 선사의 언행을 모은 <조주록>을 글감으로 삼았다. 오랫동안 염세와 싸워온 저자는 그 깊은 어둠 속에서 건져낸 직관과 사유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살다 보면 새로운 고초는 어김없이 찾아올 테고, 아무쪼록 그와 비슷한 내구력의 용기가 주어졌으면 한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그런 마음에 떨어진 몇 개의 청심환과 같은 이야기다(‘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는 그동안 11권의 책을 냈다. 저서 가운데에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등 선문답을 소재로 한 책이 꽤 있다. 간결하고 힘 있는 저자의 문체는 한두 마디 말로 핵심을 찌르는 선사들의 문법에서 영향을 받은 듯 보인다. 이 책에서는 특별히 <조주록>에서 108가지 화두를 가져와 풀었다. 무엇보다 120세까지 살았다. 인간 수명의 한계로 일컬어지는 나이다. 이 긴 세월을 조주 선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저자는 그 120년의 내공을 좇았다. 선사와 제자가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한 <조주록>을 읽고 되새기며 자유자재한 마음 비결을 자기만의 언어로 소화했다.

장웅연 작가가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선사인 조주종심 선사의의 언행을 모은 '조주록'을 글감으로 삼은 '나는 어제 개운하게 참 잘 죽었다'를 최근 출간했다. 화순 쌍봉사 호성전에 모셔져 있는 조주선사 진영.
장웅연 작가가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선사인 조주종심 선사의의 언행을 모은 '조주록'을 글감으로 삼은 '나는 어제 개운하게 참 잘 죽었다'를 최근 출간했다. 화순 쌍봉사 호성전에 모셔져 있는 조주선사 진영.

책에는 삶에 힘이 되어줄 문장 몇 개쯤은 쉽게 고를 수 있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특색이 있고 각자만의 역할이 있다. 뱀은 잡아먹는 역할을, 쥐는 잡아먹히는 역할을 한다. 뱀은 발 없이 다니기로 한 배우이고, 지네는 많은 발로 다니기로 한 배우이다. 그럼으로써 개별자들 하나하나가 만물의 근원이 된다. 대부분의 인생이 별 볼 일들 없이 사니까, 하늘은 별들로 가득차 있다. 이번 생(生)은 좀 힘들게 살아간다는 배역을 맡았을 뿐이다.” “번뇌는 수정하는 힘과 복구하는 힘과 갱신하는 힘이 된다. 지혜란 다시 일어나는 힘이며 ‘넘어져도 괜찮다’는 힘이며 ‘틀릴 수도 있다’는 힘이다. 밤하늘은 수많은 흉터들 덕분에 간신히 빛난다. 부처는 없다고 믿는 자들의 세상은 하나같이 싸구려이거나 아비규환이다. 번뇌를 면한다면, 살아서 해야 할 만 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저자의 말처럼, ‘인생의 의미를 묻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 인생의 의미를 아직 모르기에, 타인에게 인생의 의미를 함부로 강요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고 좀 고통스럽더라도, 인생의 의미를 제힘으로 만들어서 쓰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 삶의 진짜 의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다리가 있다. 행복을 찾아가려면 다들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만 그 다리로 나귀도 건너가고 말도 건너간다. 나귀가 새치기를 하기도 하고 말이 침을 뱉기도 한다. 나의 삶이 다리라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수 있는 다리다. 좀 지저분하더라도 그것은 분명 나를 위한 다리다. 손해를 봤다는 것은, 아직 다리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조금 패이고 부서졌을 뿐 여전히 다리는 온전하다는 뜻이다. 나의 삶이 다리라면, 포기하지만 않으면 스스로 무너지지는 않는 다리다. 위인들의 삶은 하나같이 맷집이 좋은 삶이다. 똥 좀 밟았다고 발을 자르지는 않는다.”

책의 제목은 다음의 본문에서 따왔다. “오늘 하루가 인생이다. 하루의 총합이 인생이며 인생의 집약은 하루다. 예컨대 하루를 끝마치면 잠을 자게 된다. 죽는 것이다. 지루한 하루가 있는 것처럼 인생은 지루하다. 운 좋은 하루가 있는 것처럼 인생은 요행이다. 하루 공칠 수도 있는 것처럼 인생은 공허한 것이다. 낮잠을 잘 수도 있는 것처럼 요절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잠을 도통 못 잘 수도 있는 것처럼 장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낮잠에서 깨면 환생한 것이고, 늦잠을 자면 식물인간이 되어보는 것이다. 나는 어제 개운하게 참 잘 죽었다. 이렇듯 오늘 하루를 잘 살았으면, 잘 산 것이다. 또한 아무리 짧게 살았더라도 하루는 차곡차곡 쌓인다. 그런 날들이 쌓이면 인생은 충분히 의미와 즐거움이 있다. 결국 너무 조급해하거나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실수해도 괜찮고 가끔은 망쳐도 괜찮다. 이미 많이 모아두었다. 인생을 하루하루 다 잘 살 필요는 없다.” 잘못 살았다고 믿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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