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자 동의 없이 세워진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이하 차체험관)’에 대한 철거 명령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비상식적 판결’ ‘코드 판결’ 등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조계종이 대책위를 출범하며 전면전을 예고하고 있다. 해당 판결이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조계종선암사와 태고종선암사의 소유권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차체험관 철거 소송에서 꾸준히 순천시 편에 서 온 태고종선암사, 그러나 당초 순천시를 상대로 먼저 문제 제기를 한 건 태고종선암사였다.
차체험관을 둘러싼 갈등은 태고종선암사와 순천시 관계가 틀어지면서 시작됐다. 2004년 태고종선암사 주지였던 지허스님(태고종 종정)은 토지 소유자인 조계종선암사 동의 없이 순천시에 토지사용승낙을 내줬다. 이 승낙을 토대로 순천시는 2007년 선암사 경내 4995㎡ 부지에 총 9동의 체험관을 건립했다. 그러나 지허스님이 주지 연임에 실패하자 순천시는 건물에 대한 소유권을 순천시 명의로 등기하고 독자적인 운영에 나섰다.
태고종선암사는 순천시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2010년 12월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선암사가 재산관리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월권과 독선 운영을 하고 있다”며 “차체험관이 순천시장의 영빈관으로 쓰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달 순천시를 상대로 소유권보존등기말소 소송도 제기했다.
당시 소장에 따르면 태고종선암사는 “이 사건 등기는 (선암사)점유자인 원고의 동의가 없었을 뿐 아니라 분쟁중이지만 법적인 소유권자인 조계종의 동의도 구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관리인 명의로 등기를 보존해선 안된다는 불교재산관리법의 취지와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순천시 앞으로 등기된 차체험관이 조계종선암사 동의 없이 세워진 건축물이라는 점, 순천시가 재산관리권의 범위를 넘어선 행위를 했다는 점이 태고종선암사 주장의 핵심이었다. 이는 현재 태고종선암사가 조계종 소유권을 부정하고 있는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차체험관 소송은 사실 처음부터 태고종선암사 요청으로 시작된 사안이었다. 2010년 태고종선암사는 차체험관에 대한 순천시의 독단 운영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순천시를 상대로 등기 말소 소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합법적으로 선암사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는 조계종선암사의 도움 없이 소송을 진행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한 이유가 컸다. 태고종선암사는 조계종선암사에 순천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을 요청했고, 수십년 이어온 분규를 평화적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조계종선암사는 2011년 합의에 따라 이를 수락했다.
실제로 조계종선암사가 2011년 6월14일 순천시를 상대로 제기한 차체험관 철거 소송 소장엔 조계종 측 변호사와 태고종 측 변호사 이름이 함께 명기돼 있다. 양 측은 법적 소유권자인 조계종선암사가 전면에 나서는 대신 태고종선암사가 뒤에서 받쳐주는 형식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태고종선암사는 3년 만에 돌연 입장을 바꿨다. 조계종선암사가 순천시를 상대로 제기한 차체험관 철거 소송에서 보조참가인으로 이름을 올리며 순천시 편에 선 것이다. 나아가 태고종선암사는 2014년 12월 조계종선암사를 상대로 ‘등기명의인표시변경등기말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 배경엔 태고종선암사 주지 교체로 인한 내부 불협화음, 그로 인한 조계종선암사와의 소통 부재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분석이다.
조계종선암사를 상대로 한 등기 말소 소송 당시 태고종선암사 주지였던 호명스님(태고종 총무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양 측이 함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시작한 소송이었지만 조계종에서 태고종 측 변호사를 해임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며 “태고종선암사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등기 소송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2011년 합의는 반세기 넘게 지속된 분규에 마침표를 찍는 사안이었다. 당시 쉽지 않은 합의로 양 측은 교계 안팎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태고종선암사의 급격한 입장 선회가 날선 비판으로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이는 평화적 방법으로의 상생과 공존을 위해 60년 동안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조계종 측에 대한 배신 행위이기도 하다. 60년 불법 점거를 넘어 이제는 조계종 선암사에 대한 소유권까지 빼앗으려는 태고종선암사를 두고 더 이상 가만있을 수 없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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