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묻지 않은 전통이 오롯한 약사부처님 도량

한국 3대 흥국사 중 ‘東흥국사’
신라 원광스님 창건…1400년 역사
조선 선조 아버지 능 지킨 원찰
고종 대까지 왕실사찰로 역할

약사기도도량으로 유명해
만월보전 모신 약사부처님
가피로 코로나19 극복 위해
매일 기도하는 흥국사 대중

흥국사(興國寺)라는 이름을 가진 절은 전국에 몇 곳이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찰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흥국사와 전남 여수에 있는 흥국사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경기도 남양주시에도 흥국사가 있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현재 조계종 제25교구 말사인 남양주 흥국사는 역사적으로 보면 다른 두 흥국사보다 가장 이른 시기에 창건된 절이지만, 의외로 그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2월4일 찾아간 흥국사는 기자 또한 부끄럽게도 첫 방문이었다. 새벽까지 내린 눈으로 사찰은 겨울 정취를 더해 더욱 운치가 있었다. ‘고즈넉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런 절이다.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남양주 흥국사의 모습. 고즈넉함이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사찰은 한가롭고 아늑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남양주 흥국사의 모습. 고즈넉함이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사찰은 한가롭고 아늑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에는 3개의 흥국사가 있다.” 이른바 ‘3흥국사’다. 동(東)흥국사, 서(西)흥국사, 남(南)흥국사가 그것이다. 남양주 흥국사가 동쪽, 고양 흥국사는 서쪽, 여수 흥국사는 남쪽에 있다 해서 동서남 세 방위에 위치한 흥국사를 ‘삼(3)흥국사’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 남양주 흥국사 주지 화암스님의 견해다. 

주지 스님의 이같은 자신감은 남양주 흥국사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남양주 흥국사는 신라 제26대 진평왕 21년인 599년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건의 주역도 원광스님이다. 화랑도의 세속오계를 만든 것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스님이다. 불사를 일으킨 지 14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그 깊은 유서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 또한 남양주 흥국사다. 그래서 존재감이 다른 흥국사보다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쉽다. 

남양주 흥국사의 또 다른 자랑은 조선 왕실의 원찰이라는 사실이다.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가 주인공이다. 선조는 그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를 흥국사 근처에 세우면서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흥국사를 크게 중수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흥국사의 조선 왕실의 사찰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흥국사 주지 화암스님은 “흥국사는 조선 고종 대까지 왕실의 원찰로서 기능을 담당했다”고 전했다.

남양주 흥국사의 왕실 원찰로서의 역할은 사찰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조선 고종 대까지 그 역할을 했다는 증거는 사찰 편액을 보면 알 수 있다. 등록문화재 제471호인 ‘대방(大房)’의 ‘흥국사(興國寺)’라는 현판은 조선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글이다. 흥선대원군의 글씨는 전각마다 등장한다. ‘영산전’의 현판과 주련, ‘만월보전(滿月寶殿)’의 주련 등에도 흥선대원군은 그 흔적을 남겼다. 이로서 고종 대까지 왕실의 사찰로서 그 명성을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남양주 흥국사를 대표하는 문화재는 등록문화재인 ‘대방’. 그야말로 큰 방이다. 주지 스님에 따르면 대방은 다용도실로서 역할을 했다. 예전에 대웅전은 일부 스님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고, 신도들은 대방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며 부처님에게 기도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신도 기도공간이 되지만, 스님들이 모여 공양을 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안거기간에는 선방으로서 수행공간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남양주 흥국사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인 대방. ‘흥국사’ 현판은 조선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글씨다.
남양주 흥국사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인 대방. ‘흥국사’ 현판은 조선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글씨다.

그래서 1878년 건립이라는 비교적 길지 않은 역사에도 문화재로 인정받은 것이다. 현재도 흥국사 대방은 사용하고 있다. 가운데 부처님을 모시고 법당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잠시 문을 닫았지만 신도들이 불교를 배우는 불교대학 강의실로 사용했다. 문화재라고 보존만 하는 게 아니라 활용하는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유래가 깊은 사찰인 만큼 보물 등 문화재도 많고 전통이 오롯이 남아 있어 사찰의 전형을 느끼고 싶은 탐방객에게는 제격인 곳이 이 절이다. 

코로나19로 세상이 고통을 겪고 있는 요즘, 남양주 흥국사는 매일 세상의 안전과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있다. 흥국사가 ‘약사기도도량’이기 때문이다. 흥국사가 약사기도도량이 된 유래도 신이하다. 사찰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 태조가 병으로 약해지자 그 딸이 약사여래부처님을 조성해 서울 정릉 봉국사에 모셨다.

부처님의 가피로 태조는 병이 낫고 그 후로도 많은 이들이 기도로 병을 고쳤다. 그러던 중 약사부처님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고, 수소문 끝에 한 냇가에서 부처님을 찾을 수 있었다. 원래 있던 절로 모시려고 하니 꿈쩍도 하지 않던 부처님은 “흥국사로 모시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가벼워졌다고 한다.
 

흥국사는 약사기도도량이다. 약사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만월보전’ 모습.
흥국사는 약사기도도량이다. 약사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만월보전’ 모습.

그 약사여래부처님은 현재 흥국사 ‘만월보전’에 모셔져 있다. 주지 스님 등 흥국사 대중은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만월보전’에서 매일 기도하고 있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날에도 스님은 종단이 배포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기도정진> 의식집을 열심히 봉독하고 있었다.

주지 화암스님은 “약사기도도량으로서 코로나19로 고통 받고 있는 세상과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약사여래부처님의 가피로 하루빨리 코로나가 소멸돼 세상이 예전처럼 돌아와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흰 눈 뒤덮인 남양주 흥국사는 사찰의 고즈넉함과 함께 스님의 독경소리까지 더해져 세상을 더 맑고 깨끗하게 만들고자 하는 부처님의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남양주=김하영 기자 hykim@ibulgyo.com


◼ 인터뷰 흥국사 주지 화암스님

“전통과 현대 어우러진 힐링공간으로…”

화암스님
화암스님

“남양주 흥국사는 1970년대까지도 아름다운 절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다가 교통환경 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세간에 덜 알려지게 됐고, 전통을 유지한 지금의 사찰 모습으로 남게 된 것이라 여겨집니다. 개발되지 않은 아름다움, 옛 것이 그대로 보존된 절이 바로 남양주 흥국사의 매력입니다.” 

남양주 흥국사 주지 화암스님에게 사찰의 인지도가 낮은 점은 못내 아쉽지만 그것이 도리어 흥국사의 강점임을 역설했다. 서울과 맞닿은 가까운 사찰 가운데 전통을 오롯하게 간직한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은 분명 매력으로 다가선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것은 이제 장애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아름답다면 어떻게든 찾아가는 것이 요즘 세태이다. “수락산에 위치하며 서울과 남양주시, 의정부시와 소통할 수 있는 사찰입니다. 서울과 경기도 시민들이 언제든지 와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고 자부합니다.”

스님은 기왕에 갖춰진 전통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현대가 조우하면 많은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른바 전통과 현대의 만남, 문화벨트 조성이 그것이다.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시민들의 정신적인 쉼터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남양주 흥국사의 미래로 꼽았다. 스님은 “남양주시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서, 남양주와 서울, 의정부를 아우르는 전통문화의 거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삭막한 시대에 마음의 문을 열고 종교를 떠나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힐링의 장소로서 각광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같은 구상이 현실화되려면 앞으로 많은 고개들을 넘어야 하지만, 이미 좋은 환경과 바탕은 갖추고 있으니 차분하게 실천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옛 명성에 비해 현재 흥국사는 크게 각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시작으로 한 단계씩 걸음을 걷다보면 흥국사는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재가 있는 전통문화의 공간이자 염불수행하는 힐링의 장소, 지역과 함께 하는 열린 도량으로서의 목표를 향해 남양주 흥국사는 힘차게 걸어가겠습니다.” 

김하영 기자 hykim@ibulgyo.com
 

[불교신문3655호/2021년3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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