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호의 한국의 불상] <25> 고려불상4 - 산 정상에 조성된 촉지인 불좌상
[배재호의 한국의 불상] <25> 고려불상4 - 산 정상에 조성된 촉지인 불좌상
  • 배재호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
  • 승인 2021.03.02 16:59
  • 호수 3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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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말여초 미의식, 불교 신앙 속에서 재해석

압도적인 크기·수준 높은 조형
유능한 재력가에 의한 조성 추정
명산의 신령들 거처했을 법한 곳
민간신앙이 불교로 습합된 흔적
선본사 석조불좌상, 고려 초기, 전체 크기 5.17m, 최대 폭 3.07m
선본사 석조불좌상, 고려 초기, 전체 크기 5.17m, 최대 폭 3.07m

 

8세기 중엽, 경주 토함산(吐含山) 정상에 조성된 석불사(石佛寺, 석굴암 石窟庵) 불좌상, 즉 “산 정상에 조성된 촉지인 불좌상”의 이미지는 통일신라시대 9세기는 물론 고려 초기까지 영향을 주었다.

대구 팔공산 선본사(禪本寺, 일명 관봉 冠峰, 갓바위) 석조불좌상, 전남 해남 대흥사(大興寺) 북미륵암(北彌勒庵) 마애불좌상, 전남 영암(靈巖) 월출산(月出山) 용암사지(龍巖寺址) 마애불좌상, 서울 북한산 승가사(僧伽寺) 마애불좌상 등은 석불사 불좌상의 영향을 받은 고려 초기 불상들로, 산 정상 바위에 두리새김(환조)과 마애기법으로 조성된 것이다. 불상들은 명문이 없어 구체적인 조성 배경을 알 수 없지만, 압도적인 크기와 수준 높은 조형으로 보아 상당한 능력을 갖춘 후원자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대규모 불사(佛事)를 하기에 지형적으로 매우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산 정상에 이들 불상이 조성된 배경에는 비단 석불사의 영향 뿐만 아니라 그곳이 지니고 있던 “장소성(場所性)”도 한몫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고려 초기에 도선(道詵, 827~898)의 비보(裨補) 사상(국가의 안녕을 위한 풍수 형국의 보완 수단)이 사원, 불탑, 불상 조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


팔공산 선본사 석조불좌상은 <삼국유사>에 승려 심지(心地)가 동화사(桐華寺)를 택지(擇地)할 때, 스승인 속리사(俗離寺, 현 속리산 법주사)의 영심(永深)에게 받은 간자(簡子) 2개를 중악(中岳, 팔공산) 산신(山神)과 함께 던졌다고 하는 팔공산 정상에 있다. 즉 통일기 신라의 오악(五岳) 중 중악의 산신이 거처하던 곳에 불상을 조성한 것이다.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불좌상, 고려 초기, 불상 크기 4.2m, 바위면 크기 가로 8m, 세로 6m(사진 제공=김리나).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불좌상, 고려 초기, 불상 크기 4.2m, 바위면 크기 가로 8m, 세로 6m(사진 제공=김리나).

 

불상은 통견 방식으로 법의를 입고 촉지인을 결한 채 가부좌하고 있다. 불신(佛身)과 대좌가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불상은 따로 만든 팔각형 보개(寶蓋)를 쓰고 가공되지 않는 암벽을 광배로 삼고 있다. 머리와 양손은 몸에 비해 큰 편이며, 짧은 상체와 폭이 넓은 무릎을 지니고 있다. 불상은 양감이 풍부한 얼굴과 부드러운 조형의 상체, 다소 경직된 듯한 하체를 갖추고 있다. 또한 크고 둥근 육계, 소발(素髮)의 머리카락, 턱이 진 발제선(髮際線, 이마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머리카락),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간 가늘고 긴 눈, 도드라진 백호, 높은 콧날과 약간 벌어진 콧방울, 짧은 인중, 어깨까지 닿은 큰 귀, 양감 있는 양 볼과 턱, 살짝 힘이 들어간 입술을 가지고 있다. 양손은 투박해 보이지만 손톱까지 표현되었으며, 양발은 법의로 덮여 있다. 대좌 앞까지 흘러내린 법의 자락은 굵은 음각선으로 표현되었는데, 그 주름은 몸의 굴곡과 그다지 유기적이진 못하다.


선본사 석조불좌상에 보이는 살짝 당긴 턱, 짧고 굵은 목, 가슴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게끔 모은 듯한 양어깨, 각진 어깨선, 몸에서 떨어진 양팔 등은 고려 초기 불상에 보이는 특징이다. 소위 “산 정상에 조성된 촉지인 불좌상”의 이미지는 석불사 불좌상으로부터 받은 것이지만, 정작 조형적인 면에서는 팔공산 기슭에 조성된 7세기 후반의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 일명 팔공산 석굴암) 불상과 닮아서 주목된다. 즉 선본사 불상에서는 석불사 불상의 가장 큰 특징인 편단우견 방식의 착의법과 다리 사이의 부채꼴 법의 주름이 보이지 않으며, 군위삼존석굴 불상의 통견 방식의 착의법, 상현좌(裳懸座, 법의로 덮인 대좌)의 대좌 형식, 소발의 머리카락, 턱이 진 발제선이 확인되고 있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北彌勒庵) 마애불좌상은 두륜봉(頭輪峰) 아래의 자연 암반을 다듬어 조성한 것으로, 통견 방식으로 법의를 입고 연화대좌 위에서 촉지인을 결한 채 가부좌하고 있다. 돋을새김된 불상은 상체의 법의 주름이 하체의 것보다 밀집되어 있어서 불상의 윗부분이 아랫부분보다 입체적으로 보인다. 불상의 왼쪽 어깨 앞에는 법의를 고정하는 삼각형의 술 장식이 표현되어 있다.

불상은 큼직큼직한 이목구비와 양감이 넘치는 양 볼, 다소 짧고 굵은 목, 살짝 움츠린 어깨, 양감이 과도하게 느껴지는 몸을 갖추고 있다. 또한 몸에 비해 큰 편인 둥글고 넓은 얼굴에 넓고 편평한 육계, 발제선만 따라 표현된 나발,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간 부리부리한 눈, 얕게 음각된 눈동자, 부은 듯한 눈두덩, 반듯한 콧날, 가늘고 도톰한 입술 윤곽, 귓바퀴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귀를 가지고 있다.

활달한 모습의 연꽃이 위아래로 맞붙여 있는 연화대좌는 마치 실제 대좌를 놓은 듯이 공간감을 부여해 준다. 두광과 신광으로 구성된 광배는 아무 문양이 없는 삼중(三重)의 원형(圓形)과 그 외연의 화염문으로 표현되었다. 광배의 좌우 위아래에는 중앙의 불상을 향하고 있는 4존의 공양천인상(供養天人像)이 표현되어 있다. 불상 좌측 아래에는 병향로(柄香爐)를 들고 있는 천인상이, 우측 아래에는 연꽃을 들고 있는 천인상이 새겨져 있다. 아래쪽의 천인상들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위쪽 천인상들도 공양물을 들고 있다. 천인상들은 모두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하였으며, 상체에는 조백(條帛, 천의)을 비스듬히 걸쳤는데, 불상 우측 아래의 천인상은 치마 위에 다시 요포(腰布, 허리를 감싸는 덧옷)까지 입고 있다. 불상은 다소 탄력감이 떨어진 조형적인 모습과 둥글고 넓적한 얼굴, 부리부리한 눈, 밀집된 법의 주름과 술 장식, 다리 사이의 흐트러진 부채꼴 주름, 몸을 감싸듯이 안으로 모은 양어깨에서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전반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북미륵암 불상은 고려 초기의 시대성과 지역성을 반영하듯 조형적인 특징과 도상 구성이 석불사 불좌상과 달라서 불상의 성격도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대둔사(大芚寺, 대흥사 大興寺) 북암(北庵)을 북미륵암이라고 한 <대둔사지(大芚寺誌)>의 기록과 같이 불상은 미륵불로 추정된다.

북미륵암에는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연석을 지대석(地臺石)으로 삼은 삼층석탑이 있어서 불상의 편년에 도움을 준다. 한편 북미륵암과 같이 촉지인 마애불좌상과 자연석을 지대석으로 삼은 삼층석탑이 한 세트로 조성된 예는 이곳에서 멀지도 않고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영암 월출산 용암사지에서도 확인된다. 절터에서는 고려 초기의 “도솔(兜率)”명 기와 편이 출토되어 당시 이곳이 도솔암(兜率庵, 도솔사)이라는 것과 촉지인 마애불좌상이 미륵불임을 추정하게 해 준다.

승가사 마애불좌상, 고려 초기, 불상 크기 5.94m.
승가사 마애불좌상, 고려 초기, 불상 크기 5.94m.

 

한편 현종(顯宗, 1009~1031년 재위) 이후, 고려 왕실의 후원을 받았던 북한산(고려 때 삼각산) 승가사에도 촉지인 마애불좌상이 있다. 비봉(碑峰) 아래 바위 면을 다듬은 다음, 돋을새김한 마애불좌상은 편단우견 방식으로 법의를 입고 촉지인을 결한 채 가부좌하고 있다. 불상의 머리 위쪽에는 바위 면에 홈을 파낸 다음 따로 만들어 끼운 팔각형의 석조보개(寶蓋)가 있는데, 보개 아랫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다. 보개와 불상을 감싸고 있는 광배는 아무 문양이 없이 매끄럽게 치석(治石)되어 있다. 광배 위쪽 좌우와 불상 양옆에는 언제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장방형의 홈이 나 있다.


불상은 밝은 표정의 얼굴과 안정된 자세의 몸을 갖추고 있다. 섬세하게 표현된 얼굴과 대좌와는 달리, 법의 주름은 음각으로 간략하게 처리되었다. 불상은 소발의 머리카락, 크고 둥근 육계, 부드러운 눈과 눈썹, 삼각형의 오뚝한 코, 적절한 크기의 입, 커다란 귀, 양감이 느껴지는 양 볼, 음각으로 표현된 이중 턱을 지니고 있다. 불상은 편단우견 방식의 착의법, 촉지인의 수인, 왼팔 팔꿈치 앞쪽에 표현된 올가미 모양의 법의 주름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경주 불상의 전통을 계승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엄지가 들려 있는 왼손, 손목이 안쪽으로 꺾인 어색한 모습의 오른손, 형식화된 법의 주름, 앙련과 복련이 맞붙어 있는 연화대좌 등에서 고려 초기 불상의 특징이 보인다. 승가사 마애불좌상은 압도적인 크기와 수준 높은 조형을 통하여 고려 왕실 발원으로 추정되는데, 현종이 1024년에 승가사를 중수할 때 조성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영암 월출산 용암사지 마애불좌상, 고려 초기, 불상 크기 8m. 사진제공=이경화
영암 월출산 용암사지 마애불좌상, 고려 초기, 불상 크기 8m. 사진제공=이경화

 

통일신라시대 석불사의 “산 정상에 조성된 촉지인 불좌상”을 모델로 한 이들 불상은 고려 초기의 미의식(美意識)과 불교 신앙 속에서 재해석된 것이다. 명산(名山)의 신령(神靈)들이 거처했을 법한 산 정상에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전반에 걸쳐 불상들이 조성된 배경에는 고려 초기에 유행한 비보 사상과 함께 성종(成宗, 981~997년 재위) 이후 팔관회(八關會)의 성격이 천령(天靈)과 명산(名山)에 대한 신앙이 축소되거나 없어지고 불교식으로 바뀐 것과 무관하지 않다.

[불교신문3655호/2021년3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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