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당시 인도 신분제 철저
평등 기반한 불교 등장 혁명적
군주 귀족 후원받아 교세 확장
외호에 안주하며 민중과 괴리

Q 부처님께서 탄생하셨고 성도 후 평생 포교를 하셨던 불교의 기원지인 인도에는 현대에 이르러 왜 불교가 흥하지 못하고 신자들이 적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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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 질문은 유서 깊은 불교가 현대의 인도에서 소수종교로 남아 있는 것이, 불교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불교를 폄하하려는 의도적 질문으로 들려 아쉬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웃 종교들을 조금만 살펴보면 예수가 태어났던 이스라엘에서도 현재 개신교와 천주교가 합친 기독교가 겨우 2% 정도밖에 안 되는 소수종교이며, 중국의 유교와 도교도 현재 우리나라나 일본·동남아지역 몇몇 나라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 그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사실에 비추어 보면 불교만 특별할 것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순수하게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하시는 분들을 위해 한 번 정리 해 보겠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불교는 부처님의 출가 동기가 그러했듯, ‘인간의 고통’에서 출발하여 그 ‘고통에서의 해방’을 이끄는 철저한 중생구제의 가르침이 중심이었습니다. 당시 인도의 브라만교는 카스트제도 속에 사람들을 가둬놓고 특권층만 부귀영화를 누릴 뿐, 대다수 사람들의 고통은 무시하였습니다. 이에 불교는 기성종교와 사상을 비판하며, 어느 계급으로 태어나느냐가 아니라 현재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대접받아야 한다는 만민평등사상에 기반한 혁명적인 가르침으로 교세를 펴나갔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부처님 당시에도 이러한 혁명적인 가르침을 구현하려 순교도 마다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승단은 점차 군주와 귀족들의 후원과 외호 속에 대중의 희망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집권세력의 불교가 되었습니다. 결국 부처님 열반 후, 수백 년에 걸친 후원세력들의 외호가 도리어 독이 되어 민초에 뿌리내렸던 불교가 일반인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부처님께서 그토록 일반 대중을 위해 지방어를 사용하여 법문을 하라고 하신 지침을 등한시하고 일반인들은 알지도 못하는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여 경전을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학적이면서 형이상학적인 교리만을 논쟁하는 승단 중심의 불교는 더 이상 중생구제의 가르침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불교가 정체되는 사이, 불교에 처참하게 공격당했던 브라만교가 ‘힌두교’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 대부분의 불교사상을 흡수하여 매섭게 반격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그 설 자리를 잃고 맙니다. 여기에다 결정적으로 몇 번에 걸친 이슬람교의 침략으로 사원들이 대대적으로 파괴당하고, 대부분의 스님들은 살상당하거나 노예가 되기에 이릅니다. 이로써 인도불교는 치명타를 입게 되고 거의 재기불능의 상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인도불교의 쇠락의 역사는 현재의 한국불교도 타산지석으로 삼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신문3655호/2021년3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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