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스님] 부산 운수사 주지 범일스님
[우리스님] 부산 운수사 주지 범일스님
  • 박봉영 기자
  • 승인 2021.02.26 15:34
  • 호수 3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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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련은 ‘조아질라고’ 오는 것입니다

범어사 입산해 만난 성오스님
“내 상좌하자” 사제 인연 맺고
제방 선원 다니며 용맹 정진

‘조아질라고’ ‘통과 통과’ 출간
일상 속 행복 긍정메시지 전해
‘재밌는 법문’ 부산불교 새바람

부산 백양산 중턱에 위치한 운수사는 내려다뵈는 풍광이 좋기로 꽤나 이름이 있는 사찰이다. 백양산 기운을 담은 약수가 있고 낙동강 하구를 따라 펼쳐지는 낙조가 아름다워 평상시에도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다. 하지만 부산지역 불자들에게 더 유명한 것은 운수사에 있는 주지 범일스님이다. <조아질라고>, <통과 통과>라는 책으로 이름을 알리고 재미있는 법문과 강의로 인기를 끌며 부산불교에 또 한명의 스타가 등장한 것이다.

범일스님이 운수사에 온 것은 은사 성오스님 덕분이다. 성오스님은 2006년 입적했지만 뒤를 이어 제자들이 운수사에서 불법을 펴고 있는 것이다. 범일스님은 성오스님의 애상좌 중 한명이었다.

범일스님은 1982년 도를 깨우치겠다는 각오로 선종대본찰 범어사로 입산했다. 처음에는 젊은 사람이 할 일도 많은데 뭐하러 출가하느냐고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출가 의지에 대한 시험이었을 것이다. 돌아가지 않겠다고 무릎을 꿇고 버텼다. 3시간쯤 지났을까. 행자반장이 왔다.

행자생활을 하던 중 선원에서 입승 스님이 찾는다는 전갈을 받았다. 상당수의 행자들이 은사로 모시고 싶다고 했다가 거절당한 스님이라고 들었다. 그 입승 스님이 은사가 된 성오스님이다. 성오스님은 범일스님에게 내 상좌하자고 했다.

은사 스님은 제자들에게 참선정진이 본분사임을 늘 강조했다. 누구든 선방에 간다면 반겼다. 곁에서 본 모습도 깨어 있는 수행자 그 자체였다. 이른 새벽에도 일어나 참선하고 있는 은사 스님을 보명 출가수행자의 길을 배웠다. 범일스님은 여행을 가도 새벽이면 일어나 좌선을 하고 있는 은사 스님을 보고 수행자의 새벽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각인하게 됐다누구나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했다.

범일스님이 범어사에서 안거에 들었을 때의 일이다. 범일스님은 다른 스님과 문제가 있어 결제를 깨고 나오려 한 적이 있었다. 범어사에 있던 은사 스님에게 선방을 나오려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 때 들려준 은사 스님의 말씀은 지금도 추상처럼 남아 있다.

너 내 말 잘 들어라. 옛날부터 결제를 파하는 놈은 부모의 배를 갈랐단다. 그런 자식을 왜 낳았냐고. 왜냐하면 자기 자신만 공부를 못하는게 아니라 다른 스님들도 공부를 못하게 하고 번뇌를 주니 그 업이 다 녹일 수 없을 만큼 크단다. 너가 나가는건 자유다. 그러면 나와의 인연도 끝이다. 그 뿐만 아니라 너로 인해 너의 부모도 업을 받으니 알아서 해라.”

은사 스님의 말씀을 듣고 꾹 참고 인내했다. 참는 것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훗날 깨달았다. 그래서 범일스님은 무슨 일을 하든지 결제하듯이 한다. 중간에 포기하는 법이 없다.

출가본분사에 대한 은사 성오스님의 생각도 범일스님에게는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성오스님은 범어사 주지로 있을 때도 후학들에게 포교 보다는 참선정진을 강조했다. 범일스님은 그 이유를 물었다. 성오스님은 눈 밝은 명안종사가 나와야 포교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얼마 뒤 조계종 종정 성철스님이 입적하자 그 뜻을 알게 됐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범일스님의 출가 공부는 해운정사 선원에서 꽃을 피웠다. 서울 봉은사에서 소임을 살던 1997, 현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이 조실로 있는 부산 해운정사 선원에 입방 신청을 했다. 진제스님은 입방을 신청한 납자들을 한명도 빠지지 않고 직접 만났다. 범일스님을 대면하고 난 진제스님은 선원장에게 이번에 좋은 수좌가 온다면서 무조건 받아주라고 일렀다고 한다. 범일스님의 결기가 마음에 쏙 들었던 탓이다. 출가생활의 큰 변곡점이 될 서막이었다.

출가수행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담은 <조아질라고>가 이곳에서 시작됐다. 결과물이 나오는 2009년까지 12년이 걸렸지만 해운정사에서의 체험은 지금도 생생하다.

봉은사에서 소임을 살면서 한동안 선원을 떠나 있었던 터라 해운정사에서의 정진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큰 뜻을 품고 좌복에 앉았으니 하루 한끼 일종식과 수면 4시간의 치열한 정진을 이어나갔다. 이 자리에서 죽을지언정 다음 생에 기대지 않겠다는 각오로 정진했다. 하지만 육신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느 정도 다시 좌복이 익숙해지자 아프던 몸도 하나둘 나아졌다. 그런데 유독 손목의 통증만은 가시지 않았다.

통증은 정진의 장애물이기도 했다. 육신의 아픔과 함께 밀려온 왜 아플까?’라는 상념 때문에 정진의 끈을 놓치기 일쑤였다. 통증에 기대어 정진을 이어가던 중 찰나의 깨달음이 통증으로부터 자유스럽게 해주었다. ‘이 통증이 정점에 도달하면 아픔이 끝나는 것이로구나.’ 묘하게도 다음날 통증은 말끔히 사라졌다. 범일스님은 나에게 생기는 괴로움과 아픔은 좋아지려고 나타난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때부터는 모든 시련과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눈 앞에 닥친 시련과 어려움을 외면하거나 회피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2009년 발간한 <조아질라고>는 치열한 수행을 통해 얻은 행복을 전하는 지혜같은 것이다.

범일스님은 운수사 주지 부임 이후 부산불교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재미있는 법문, 위트 있는 강의로 불자들을 매료시켰다. 그 결과가 운수사 불교교양대학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처음 운수사에 왔을 때 30~40명 선이던 한 기수 수강생이 200명으로 늘었다. 달리 홍보하지 않아도 불자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생긴 변화였다.

범일스님의 차방은 만나는 이들에게 줄 선물로 가득하다. , 달력, 시계, 컵 등 종류도 다양하다. 모두가 행복을 전하는 선물들이다. 그러나 각각의 선물에는 법상이나 강단에 오를 때마다 설하는 행복법문 조아질라고가 담겨 있다.

힘든 시련이나 아픔은 나를 망가지게 할 수도 있고, 좋아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스승이 되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나빠지게 됩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문제는 잘 몰라서 그렇지 결국은 좋아지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 조아질라고.”

범일스님은…
1957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한 범일스님은 1982년 범어사로 입산했다. 선원 입승으로 있던 성오스님을 은사로 득도, 1884년 사미계를 수지했다. 곧바로 해인사 선원에서 안거정진을 거친 뒤 1986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중앙승가대를 거쳐 다시 참선정진을 위해 선원으로 돌아가 곡성 태안사, 부산 해운정사 등지에서 수선안거했다. 2001년 양평 화야산에 터를 잡고 서종사를 개산했다. 평생 공부를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담은 책 <조아질라고>, <통과 통과>가 서종사에서 만들어졌다. 2017년 부산 운수사 주지를 맡아 불자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있다.

부산=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유지호 부산울산지사장 kbulgy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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