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귀의할 만한 스승이나 선지식이 없다는 말을 듣곤 한다. 들을 때 마다 스스로가 부끄럽고 마음이 씁쓸해진다. 요즈음은 그야말로 민낯의 시대이다. 한때는 사회적으로 존경받았던 유명인사들의 민낯이 수시로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혹자는 과거에는 훌륭한 스승들이 많이 계셨는데 이 시대에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물질문명의 발달로 너무 많은 개인정보들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지식과 의식수준의 증장으로 스승에 대한 평가기준이 높아진 탓이리라. 더 많은 지식과 정보로 더 훌륭한 스승을 찾고자 하니 점점 더 어려워지고 심지어 온라인을 통한 검색을 하고 직접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부정적인 정보들을 알게 되고 실망하고 허탈해한다.


과연 스승과 선지식은 없는 것일까. 가만히 성찰해보면 스승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미에 맞는 스승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스승은 이것이 문제이고 저 분은 저것이 마음에 안 드는 등 불평불만을 흔히 이야기 한다. 그 판단기준이 참으로 누구나 공감하는 올바른 기준일까.

대부분은 자신의 알음알이와 아상으로 만들어진 왜곡된 기준이다. 설사 마음에 쏙 드는 스승을 만났다 하더라도 자신의 아상에서 비롯된 욕망과 집착의 허상일 뿐 참다운 스승은 아닐 것이다. 부처님처럼 모든 것을 갖춘 스승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가는 여정을 설해주신 것이리라. 지혜와 공덕이 부족한 말세 중생들이 보리심을 실천해 나아갈 때 부처님 가르침에 비추어 내가 배울 점이 있다면 귀의해서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근본성품에서 보면 지금 이순간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모든 것은 진여자성에 비친 자신의 업식일 뿐이다. 그것이 불보살이든 중생이든 유정물이든 무정물이든 모두가 동일하다. 그래서 대원경지요 평등성지이다.


가장 뛰어난 최고의 스승은 지금 여기 내 눈앞에 나타난 견문각지의 대상이다. 그 대상을 연(緣)하여 보고 듣고 아는 주인공을 알아차린다면 순간순간 모두가 불보살님의 화신이요 선지식일 것이다.

[불교신문3654호/2021년2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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