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이 시발점…‘자연과 거리두기’도 실천해야”

동물 90%, 인간 식탐 때문에
자연 아닌 가축상태로 키워져
인간을 위한 상품으로 ‘전락’

‘인간과 동물’ 함께 감염되는
전염병 원인 ‘자연 훼손’ 주목
인간보다 더한 파괴자도 없어

‘자연 온전해야 인간도 상생’
연기적 생태관 갖고 생활해야
팬데믹 극복…공존할 수 있어

필자 현암스님은 코로나19를 재앙을 떠나 인류에게 또 다른 희망의 시대를 열어 주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무분별한 자연파괴를 줄이고, 생태계 보호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오대산 월정사 인근 청량지 만월정에서 외국인 스님들이 명상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필자 현암스님은 코로나19를 재앙을 떠나 인류에게 또 다른 희망의 시대를 열어 주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무분별한 자연파괴를 줄이고, 생태계 보호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오대산 월정사 인근 청량지 만월정에서 외국인 스님들이 명상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처음 중국에서 생겨났을 때는 조금은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며 곧 진정되리라 여겼다. 하지만 아직도 코로나바이러스는 진정은커녕 변종까지 만들어 내고 있는 양상이다. 코로나바이러스라고 우리가 얘기하는 이 질병의 공식 명칭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2, SARS-CoV-2)이다. 이 바이러스에 코로나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이것의 외피에 20㎜의 왕관 모양과 같은 돌기(spikes)가 있어서 이것을 전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태양의 코로나(corona)처럼 보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새벽이나 해질녘 태양에서 뿜어내는 코로나는 찬란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지닌 그 외형의 돌기는 뿔 달린 폭탄처럼 위협감을 준다.


전 세계적 재앙인 코로나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인류가 힘을 모으고 있다. 사실 코로나바이러스의 등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에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 나타났을 때 그 원인을 박쥐에서 유래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로 밝히고 이 바이러스를 사스 코로나바이러스(SARS-CoV)로 명명했다. 또한 2012년 6월에 중동에서 급성 호흡곤란증후군과 다발성 장기 부전이 발생한 환자에서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되었고 이는 아라비아반도 국가에서 폐렴과 급성 호흡곤란증후군 등을 일으켜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MERW-CoV)으로 명명됐다. 이러한 전염병이 생겨났을 때 많은 의료진과 과학자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고비를 잘 극복했다.


지금도 많은 과학자가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그것의 발생 원인을 찾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과관계의 확정은 부처님이 법을 설하실 때 주로 사용하시던 방법이다.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최상의 가르침이라고 알려지는 사성제(四聖諦)도 먼저 모든 존재가 괴로운(苦) 상태에 있음을 밝히고, 그 괴로움의 원인(集)을 드러낸다. 다음으로 그 괴로움의 상태가 해소될 수 있음(滅)을 알리고, 마지막으로 그 괴로움을 완전히 종식하는 방법(道)을 제시한다. 이것은 마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과 같다. 질병의 치료에도 먼저 의사는 증상을 확인하고 그 원인을 밝힌다. 다음으로 환자에게 그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일러 주고 치료법을 처방하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듯 부처님은 당시에 중생들의 질병을 치유하는 의왕(醫王)으로 불렸고, <셀라경(Sella sutta)>에서 당신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그러한 이의 출현은 언제나 실로 어렵나니 바라문이여,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나는 위없는 의사(sallakatto anuttaro)와 같으니라.” 실로 부처님은 중생들의 아픔을 치료하는 최고의 의사였다. 부처님이 의왕으로 불렸지만, 부처님이 중생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외과 의사와 같은 직접적 치료행위가 아닌 심리적 치유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다면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부처님의 어떠한 가르침을 적용할 수 있을까?

 

어떤 가르침 적용할 수 있을까

사성제에서 부처님이 밝히셨듯이 질병과 같은 괴로움도 갈애(渴愛)라는 불선한 정신법에서 생겨난다. 여기서 우리는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을 살피면서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코로나19의 발생에 탐욕이라는 정신적 요소가 개입되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접근법이 다른 모든 원인과 조건을 배격하고 오직 탐욕만이 원인이라는 절대적 유심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철저하게 인과의 법칙에 따르고 연기(緣起)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연기(paṭiccasamuppāda)라는 말의 의미는 ‘의존적 발생’을 나타낸다. 이는 어떤 사건의 발생은 다른 조건에 의지해서 생겨난다는 의미이다. 특정 상태의 발생에는 단지 하나의 조건이 아닌 여러 가지 조건들이 관여한다. 그러기에 인류에게 닥친 이 재앙의 원인을 단지 저 바이러스의 발생으로만 여겨서 그 바이러스의 유전적 구조를 밝히고 병원소나 숙주를 찾아내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현재의 재난에 대한 외부적 원인들에 대한 미시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법도 필요하지만, 내부적이고 심리적 요인들에 대한 연기적 통찰도 필요한 것이다.


현대 과학의 코로나19에 대처가 많은 효능을 발휘하지만, 그 한계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었지만, 그것의 효능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고 부작용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일은 많은 과학적인 대처에도 불구하고 몇몇 학자들은 이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는 항구적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를 내다보는 이도 있다. 또한, 이번 코로나19를 무사히 극복한다 하더라도 2, 3년 이내에 더 심각한 바이러스의 위험이 닥칠 수 있다고 보는 이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을 탐색하는 데 있어 좀 더 다각적이고 근원적인 접근법이 요구된다 하겠다.

 

연기적 생태관을 지녀야 한다


과학이 아닌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코로나19는 인간의 탐욕이 시발점이 된다 할 수 있다. 탐욕과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생이 인과성이 결여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것은 수십만 년이 넘었다. 인류역사가 수십만 년이 지났지만, 그 모든 시기를 합쳐도 지난 100년의 기간만큼 인류가 급진적인 발전을 이룬 적도 없다.

그 비약적 발전의 시기에 인류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지만, 그것을 위해 지구환경은 파괴되고 다른 생명체들은 희생되어야만 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지구의 자연과 다른 생명체들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대상이고 상품으로 전락했다. 인간의 식탐을 위해 90%이상의 동물들이 자연상태가 아닌 가축의 상태로 키워지고, 다른 생명들의 서식지는 조금씩 인간들의 구역으로 변했다. 이런 이유로 코로나19와 같은 인수바이러스가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이 함께 감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은 인간의 자연 파괴로 초래한 것일 수도 있다.


코로나19의 원인에 대해서 과학적 실험과 추론을 거쳐 그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들의 심리적 요인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탐욕이 지구의 존재계에 미치는 영향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연은 단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희생양이 아니다. 자연 생태계가 온전히 존재해야 인간도 상생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나친 탐욕을 내려놓고 자연과 다른 생명체를 대해야 한다.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 다른 모든 존재와 함께 생존한다는 연기적 생태관을 지녀야 한다. 인류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우리 삶을 파괴하는 적으로 여기고 있지만, 지구에 생존하는 모든 존재의 시각에서는 인간보다 더 심각한 파괴자도 없다.

관점을 바꾸어보면 인간들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심각한 바이러스라 할 수 있다. 자연 생태계의 입장에서 보자면 코로나바이러스는 무자비한 바이러스로 전락해버린 인간에 맞서기 위해 자연이 만들어 낸 백신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한마음 청정해야 온세상 청정


코로나19가 재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또 다른 희망의 시대를 열어 주는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감각적 욕망을 따르는 무절제한 접촉을 줄이고 이윤추구 지상주의는 내려놓아야 한다. 인간들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무분별한 자연파괴를 줄이고, 생태계 보호에 힘써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뿐만 아니라 자연도 자연 그대로 머물 수 있게 ‘자연과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한다. 팬데믹의 발생 원인으로 탐욕을 받아들이고 그 원인을 조금씩 줄여나간다면 팬데믹의 극복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향상된 뉴노멀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원각경>의 “한 마음이 청정하므로 온 세상이 청정하다”는 가르침을 새겨야 할 때인 것이다.

[불교신문3654호/2021년2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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