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에 오면 다쳤던 마음도 다시 살아난다

- 내소사 품고 있는 능가산
보석같은 바위들로 즐비하고
원효 의상 진표 등 고승들이
머물다간 자취까지 완연…

- 아무렴 대웅전만큼 좋을까?
팔작지붕은 능가산에 머무르다
나래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한 마리 봉황같이 아름다워

전북 부안 내소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전나무 숲이 펼쳐져 있어 기분이 상쾌해진다.
전북 부안 내소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전나무 숲이 펼쳐져 있어 기분이 상쾌해진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도시인들은 휴식을 간절히 원한다. 좀 쉬자, 쉬자 하면서도 쉬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이다.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이라도 산 깊은 절 숲에 머물며 자신을 돌아보고 숲과 함께 여유를 느껴보면 어떨까. ‘휴식(休息)’은 사람(亻)이 나무(木)에 기대어 스스로(自) 마음(心)을 내려놓는 일이다. 실제로 후한의 개국공신 풍이는 전투가 끝나 남들이 자신의 공을 알리려 애쓸 때 그는 공을 내세우지 않고 큰 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했다고 해서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는 별호를 얻기도 했다고 한다.

대웅보전. 팔작지붕은 능가산에 머무르다 나래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한 마리 봉황과 같이 아름답다고 한다.
대웅보전. 팔작지붕은 능가산에 머무르다 나래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한 마리 봉황과 같이 아름답다고 한다.

세상살이의 경쟁에서 벗어나 비로소 쉴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능가산(楞伽山) 내소사(來蘇寺)이다. 능가산은 부처님께서 <능가경>을 설하신 인도의 능가산에서 따왔다. 이 산은 신선, 현성들이 법을 구하며 보살 대중들은 삼매와 신통력을 갖춘 곳으로, 가는 곳마다 선경이며 보물들이 안팎을 투명하게 비추는 신성한 산이라 한다.

이처럼 내소사를 품고 있는 능가산은 보석으로 꾸민 듯 바위들이 아름답고 원효, 의상, 진표 등 고승들이 머물다간 자취가 완연하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때 혜구 두타스님이 세운 절로, 원래 소래사(蘇來寺)라 하였는데 소래는 ‘이곳에 오면 소생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소생시킬까? <능가경>에서 ‘잃어버린 마음을 소생시키는 곳’이란 의미에서 소래사라 하였는데 18세기 이후 내소사로 고쳐졌다.

능가산과 내소사 전경
능가산과 내소사 전경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전나무 숲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어 상쾌하다.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어보면 번뇌가 사라지고 숲의 즐거움에 빠져본다. 천왕문을 지나 봉래루 앞 넓은 마당에 서면 능가산이 흰 빛을 뿜고, 천 년된 당산나무가 신령스럽다. 매년 정월대보름에는 내소사에서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비는 당산제를 지내고 있으니 우리 고유 민속을 아끼는 불교의 포용력을 실감케 한다.

 

살아 숨 쉬는 고려범종
봉래루 옆 보종각에는 살아 숨 쉬는 고려범종이 있다. 이 범종은 고려 고종 9년(1222)에 인근 청림사 범종으로 제작되었으나 1850년 농부가 야산 땅속에서 발견했다. 인근 사찰에서는 서로 범종을 달라고 졸랐고, 지혜로운 농부는 갈 곳을 범종에게 물어보았다. “개암사로 가겠느냐?”하고 종을 치고, “실상사로 가겠느냐?” 종을 쳤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소사에 가겠느냐?”하고 종을 쳤더니 그제야 우렁차게 소리가 나서 내소사로 보냈다는 인근 촌로들의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범종소리는 ‘부처님의 음성’이니, 부처님의 말씀에 따른 현명한 판단이었다.


또한 이 범종에는 중생의 원을 들어주기 위해 급히 하강하는 불보살의 모습이 있다. 얼마나 급히 내려오셨으면 이를 어쩌나! 불보살의 머리 위 보개(寶蓋)는 미처 따라오지 못해 영락을 휘날리면서 같이 가자며, 급히 뒤따르는 모습이 재미있다. 범종으로 인해 또 한 번 살아 있음을 느껴는 내소사가 되었다.


이젠 능가산에서 법을 설하는 부처님을 만날 차례이다. 커다란 석가모니 부처님이 다른 불보살과 함께 야단법석에 나투셨다. 이 야단법석 불화는 망자의 천도를 위해 1700년에 그려졌다. 특이한 것은 중생들이 불보살님을 알아보지 못할 것을 염려해 붉은 바탕에 금색 안료로 ‘영산교주석가모니불’ 등 불보살님이 각각 이름표를 달고 오셨다. 불보살님의 명호를 잊지 않고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원이 담겨있어 산자는 사바에서 소생하고, 죽은 자는 극락에서 소생하기를 바라는 야단법석 불화이다.

내소사 연꽃출목.
내소사 연꽃출목.

 

마음 쉬면 바로 이상향의 세계 …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산이나 불화나 범종이 있다 하더라도, 사찰의 주된 공간인 대웅전만 할까? 내소사 대웅보전은 1633년에 청민대사가 임진왜란으로 불탄 건물을 새로 지었다. 대웅보전은 웅장한 능가산을 배경으로 동쪽으로 약간 비껴 자리하여 ‘언밸런스’의 묘미를 살렸다.

팔작지붕은 능가산에 머무르다 나래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한 마리 봉황과 같이 아름답다. 특히 정면 8짝 문에 새겨진 꽃무늬는 아름답지만 엄숙함을 잃지 않았다. 화려함을 벗어 던진 빛바랜 세월의 소박한 멋은 연꽃, 모란, 국화, 해바라기, 백일홍 등 다양한 꽃으로 피어났다. 부처님께 올리는 꽃 공양은 부처가 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며, 다양한 꽃문양은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꽃살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꽃으로 장엄된 세계가 펼쳐진다. 수많은 연꽃 봉오리들이 화려하고 치밀하게 조각되어 있어 아예 부처님께서 꽃 속에 묻혀 있는 듯하다. 천장 반자에도 수많은 연꽃과 모란이 활짝 피어 있고, 기쁨에 겨운 쌍학들도 춤을 추고, 포벽에는 무수한 화불이 출현하여 부처님의 설법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천장 반자에는 장구, 아쟁, 비파, 바라, 생황 등이 부처님을 찬탄하는 천상의 음악을 스스로 연주하고 있다.

조용히 앉아 귀 기울이면 꽃비가 내리고 천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마음을 쉬면 바로 나타나는 이상향의 세계가 바로 이곳이다. 보단 뒷벽에는 커다란 백의 관세음보살이 편안히 앉아 인자한 웃음을 띠며 중생에게 묻는다. “이제 마음이 편안해 졌느냐?”고.

천 년된 당산나무. 매년 정월대보름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비는 당산제를 지낸다.
천 년된 당산나무. 매년 정월대보름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비는 당산제를 지낸다.

 

생생한 과거…설화의 즐거움
대웅보전에는 과거를 현실로 만나는 설화의 즐거움이 있다. 천장을 바라보면 물고기를 입에 문 용이 목을 대들보에 걸치고 있는데, 그 곳에 출목 하나가 비어 있다. 설화에 따르면 능가산 호랑이가 대호선사로 변하여 대웅보전을 지었는데, 이때 동자가 출목 하나를 감춰 버려서 지금도 그 자리엔 출목이 없다.

또한 관세음보살이 푸른 새로 변하여 단청을 하였는데, 동자가 몰래 문틈으로 들어다 보는 바람에 그림을 그리던 청조는 날아가 보단 뒷벽 백의관음이 되었다. 지금도 창방 한곳에는 그리다만 빈 공간만 남아 있다. 이 설화는 믿음이 약한 중생들에게 바른 믿음을 주려고 했으나 그 믿음을 의심하였기 때문에 부처가 되지 못하는 미완성의 아쉬움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능가경>에 “중생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려는 까닭에, 현란하게 채색하여 여러 가지 상들을 그린 것이다”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마음은 곧 중생의 마음이기 때문에 바로 우리가 불보살님을 지극정성으로 찬탄하는 이유이다. 달 밝은 밤 내소사 뜨락에서 오롯이 혼자임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더없는 휴식이 될 것이다.
 

[불교신문3654호/2021년2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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