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이 쉽지 않다. 세상 어느 한 곳 멀쩡한 곳을 더더욱 만나기 쉽지 않다. 읽었던 선어록을 다시 잡았다. “버려라” “놓아 버려라” 양손에 든 꽃 중에 한 손의 꽃을 버렸다. “버려라” 나머지 꽃도 버렸다.


부처님께서는 또 “버려라”라고 조용히 말씀 하셨다. 불제자는 양손의 꽃을 모두 다 버렸는데 무엇을 버리란 말씀 입니까 무척 황당했다.


“불제자여 버렸다라는 그 마음마져도 놓아버려라” 하늘을 째는 번개 같은 자상하신 말씀에 생사를 초월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꽃은 꽃이 아닌 삶의 전부인 것이다.


크게 죽어야 크게 살 수 있고 크게 살아야 크게 죽을 수 있다. 어떤 이의 죽음은 낙타털처럼 가볍고 어떤 자의 죽음은 태산이 무너지는 듯하다. 놓지 않고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손가락에 붓을 쥐고 원을 그리면 원이 되고 네모가 되는 것, 원도 아니요 네모도 아니요, 원 같기도 하고 네모 같기도 한 이 묘함은 양극단을 내려놓아야만 이를 수 있는 묘한 경지요, 무상무구 발심의 서원만이 이루게 한다. 두 주먹 쥐고서는 더 잡을 수가 없다. 어떤 일이든지 오만이 들어차 있으면 더 받아들일 수 없다. 스펀지 같은 수용성만이 거듭 새로울 수 있다.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점차 강해진다. 남을 높일수록 내가 더 높아지는 지극한 도리를 어찌 모르는가!


이런 말씀이 있다. 엄양(嚴陽) 존자가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주스님이 방하착(放下著)이라 하였다. 엄양 존자가 “한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내려놓으란 말입니까!” 조주스님께서 “내려놓기 싫으면 짊어지고 가거라” 하셨다 천이통이 열리고 누진통까지 열리고 깨달음으로 본래 고향에 이를 수 있었으니 얼마나 무량대복일까. 소유한 것도 없는데 소유하지 말라 하시니 이 또한 문자에 갇힌 사변의 논리를 깨어줄 수 있을지, 마음속에 자라는 번뇌와 속됨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대자유인이고 참사람인데 어찌할 수가 없다. 너무 힘들고 처음 맞는 알 수 없는 세간살이 변이종 바이러스까지 지친 마음 놓아야 하지만 너무 힘겨워 놓을 수 없다.


“버려라” “내려놓아라” 이 귀한 가르침이 참으로 무섭게 느껴지는 세상의 한 복판에서 갈 길을 잃어버린 참으로 지독하게 무서운 세상이다.

[불교신문3654호/2021년2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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