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갑 소설가
김대갑 소설가

 

저 물은 자유다. 물은 속박되지 않는다. 물은 바람이 흔들지 않으면 저 혼자 고요하고, 거울은 때 묻지 않으면 스스로 빛난다. 나는 새벽안개에 휩싸인 다리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흘러가는 물이 까무레한 돌을 적시고 있다.


범어사 청련암을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다리, 아촉교. 먼 옛날 아비라타에서 대일여래를 모시던 아촉이라는 비구가 부처님 앞에서 성내지 않겠다는 서원을 했다고 한다. ‘아촉불’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마음의 동요를 진정시키는 부처님인 것이다. 이 다리가 청련암 앞에 세워진 의미는 암자로 들어오는 모든 이들은 세속에 찌든 마음의 분노를 가라앉히라는 것이다.


청련암은 지난 2006년 좌탈입망하신 양익스님이 주석하신 유서 깊은 사찰이다. 스님은 불교 금강영관의 관법 수련을 체계화하셨고 그분의 제자들에 의해 선무도(禪武道)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전수되고 있다. 스님은 몸과 의념, 호흡의 조화를 단련하고 번뇌를 없애는 수행법을 말씀하셨다.


다시 흐르는 물을 내려다본다. 연푸른 안개 사이로 여명이 비치고 계곡물은 붉게 물들어간다. 그 물의 끝은 안개 속으로 잠겨 있다. 나는 천천히 오른팔과 왼발을 동시에 뻗으며 일승형 자세를 취한다. 눈을 감는다. 차츰 호흡이 가라앉고 머릿속이 텅 비어 간다. 나의 번뇌가 안개 속으로 소멸되며 추루하고 구부슴했던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행복한 적막과 청결한 향기가 아촉교 위에 자늑자늑하게 넘친다.


멀리 범어사에서 범종 소리가 들려온다. 물소리, 대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 새 울음소리,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긴 여운을 끌며 다가온다. 그 여운은 산자락을 돌고 돌아 아촉교 위에 오래도록 머문다.

[불교신문3654호/2021년2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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