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 - 사바가 곧 극락임을 알게 하는 영주 부석사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 - 사바가 곧 극락임을 알게 하는 영주 부석사
  •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 승인 2021.02.17 14:52
  • 호수 3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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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내가 부처님께 안길 차례…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장명등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려 무량수전을 가슴에 안아보시라
내 팔에 무량수전이 그대로 안긴다. 어떻게 지었으면
무량수전을 내 가슴에 품을 수 있을까?

커서 위압감을 주거나 작아서 볼품이 없거나
남거나 모자람도 없이 당당하다. 고개를 들거나
돌릴 필요도 없이 내 눈 안에 딱 맞게 들어온다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들풀 향기 느껴지는 그걸 안으면 중생인 내가
부처님을 안아주는 거룩한 광망(曠茫)이 펼쳐진다.
안양루 오방불 ‘화현’. 범종루 아래 동쪽 삼층석탑에서 10여 미터 정도 동쪽으로 가서 안양루를 쳐다보면 포벽 사이에 나타난 ‘오방불의 화현’을 볼 수 있다.
안양루 오방불 ‘화현’. 범종루 아래 동쪽 삼층석탑에서 10여 미터 정도 동쪽으로 가서 안양루를 쳐다보면 포벽 사이에 나타난 ‘오방불의 화현’을 볼 수 있다.

천만 가지 각양각색의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해 향기를 뿜으며 벌과 나비 등 곤충을 유혹한다. 보살 또한 부처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화엄이란 실천의 향기를 뿜으며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 676년 의상대사가 영주 부석사를 창건한 목적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부석사를 ‘무량수전’이라는 편액으로 인해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세계라든가, 계단이 극락의 구품으로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부석사는 해동 화엄이 시작된 곳이다. 화엄사상과 공간 배치로는 비로자나불을, ‘무량수전’ 현판으로는 아미타불을 모셔야 하나, 무량수전에 석가모니불 한 분만 모심으로써 삼신불이 계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의상대사의 ‘법성게’처럼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인 묘한 도리를 드러냈다.

영주 부석사 풍경
영주 부석사 풍경

 

왜 가파른 곳에 절을 지었을까


우리나라 화엄10찰은 산을 깎아 석축을 쌓아 힘들게 오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의상대사가 하필이면 넓은 땅을 마다하고 경사가 가파른 곳에 절을 짓도록 했을까? 그 의미를 의상대사의 ‘화엄일승발원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와 중생 또한 게으르지 아니하여 크나큰 보현보살 실천행을 갖추기를 원합니다”라고 했다.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에서 말한 보살의 수행 경지를 의상대사는 부석사에 10군데 돌계단을 쌓아 단계적인 실천행을 통해 성불하는 과정을 나타냈다. 또한 석축의 장엄함은 큰 돌, 작은 돌이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상호무한의 관계 속에 일체화되는 중중무진연기의 세상이다. 이 또한 화엄의 묘미이다.

무량수전 앞 석축.
무량수전 앞 석축.

계단을 따라 오르면 ‘봉황산 부석사’ 편액이 붙은 범종루가 나온다. 누(樓) 밑의 기둥들이 덤벙덤벙 놓은 주춧돌 위에 들쑥날쑥 누각을 지탱하고 있다. 또한 누마루 끝과 계단 위돌 사이로 보이는 안양루는 액자 속 그림 같아 일품이다. 미인은 반 측면으로 보라고 하였던가? 반 측면으로 살짝 드러난 무량수전과 공중에 떠 있는 안양루의 팔작지붕은 화엄세계의 궁전은 이렇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낸다.

정말 돌이 떴을까? ‘부석사’ 절 이름의 유래가 된 뜬 돌, 부석(浮石).
정말 돌이 떴을까? ‘부석사’ 절 이름의 유래가 된 뜬 돌, 부석(浮石).

 

‘바람난간’ 안양루


옛 시인들은 안양루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 ‘바람난간(風軒, 풍헌)’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지혜의 구름이 깔리고 감로의 꽃비가 내리는 아름다운 누각을 바라보며 걷는다. 일직선이 아닌 45도 각도로 틀어진 길이다. 우리 조상들은 틀어진 길에서 세상사는 재미와 인생의 여유를 느꼈을 것이다. 길에서 느끼는 다양성과 개별성은 결국 하나로 통하는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의 세계를 마음껏 펼쳤다.


안양루 계단을 올라서면 보살의 십지인 법운지에 다다른 것 같다. 이곳에는 화엄의 등불. 통일신라시대 장명등(석등)이 무량수전 앞에 서 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완벽한 비례이다. 사찰의 장명등은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비추어 지혜로 이끈 부처님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런 까닭에 장명등 부처님께 예경을 하는 배례석이 있다. 적당한 크기의 장명등은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며 무량수전과 조화를 이룬다.


화사석(火舍石)의 보살은 공양물을 들고 삼매에 들어 “이 공양 받으시는 부처님은 얼마나 좋아하실까.” 어린아이처럼 환희의 미소가 흐른다. <삼국유사>에 “의상대사의 제자 오진은 매일 밤 100리 밖 안동 하가산 골암사에서 팔을 뻗쳐 이 장명등 부처님께 불을 밝혔다”고 한다. 오진은 제8 부동지의 신통력으로 불을 켜서 세간을 밝혔다.

부석사의 백미 ‘무량수전’의 아름다움.
부석사의 백미 ‘무량수전’의 아름다움.

부석사의 백미 무량수전


부석사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무량수전이다. 금방 세수한 여인의 깨끗한 얼굴로 천년의 세월을 보여준다. 최순우 선생으로 인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유명해 졌지만 정작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장명등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려 무량수전을 가슴에 안아보아야 한다. 어떻게 지었으면 내 팔로 안아서 가슴에 품을 수 있을까?

고개를 쳐들거나, 돌릴 필요도 없이 내 눈 안에 무량수전이 딱 맞게 들어온다. 커서 위압적이거나 작아서 볼품이 없거나 남거나 모자람도 없이 당당하다.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신이 만든 건축물이란 이런 것일까? 들풀 향기가 느껴지는 무량수전을 안으면 중생인 내가 부처님을 안아주는 거룩한 광망이 펼쳐진다.

환희심으로 무량수전 안으로 들어간다. 이젠 내가 부처님에게 안길 차례이다. 합장하고 바라보니 내부의 배흘림기둥들은 화엄성중이 석가세존을 호위하듯 장엄하고, 단순 명쾌하다.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 부처님은 동쪽을 향해 앉으셨다. 인도에서는 동쪽이 가장 수승(殊勝)한 곳으로 부처님은 언제나 동쪽을 향해 앉으셨다. 일부에서는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기 때문에 아미타불로 보는데 이는 교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참배를 마치고 나오면 무량수전 좌측 뒤편에 있는 큼직한 바위가 이절 이름을 지어준 뜬 돌, 부석(浮石)이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이 뜬 돌을 확인하려고 바위 뒤로 실을 넘겨서 앞으로 당기니 실이 걸리지 않고 빠져나와 과연 돌이 떴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부석은 부석사를 창건하는데 큰 역할을 한 선묘낭자의 고귀한 신앙심을 보여주고 있다. 낭자는 서해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어 신라에 화엄을 펼치는 원동력이 되었다. 선묘낭자는 석룡이 되어 부석사에 안식처를 마련했다. 머리는 무량수전 부처님 발밑에, 꼬리는 장명등에까지 이어졌다. 의상대사의 선묘낭자에 대한 지극한 배려는 오히려 인간미가 넘친다. 무량수전 동쪽에 선묘각을 지어 높은 공덕을 기리고 있다.

무량수전 내부 배흘림기둥.
무량수전 내부 배흘림기둥.

포벽 사이 오방불 화현


이렇게 부석사를 살펴보고 내려갈 쯤 안양루에서 바라다보는 남쪽 먼 산의 풍광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드디어 나타난 화엄의 바다는 저 멀리 높고 낮은 산들이 파도를 일으키며 부처님을 향해 밀려와 예경을 한다.

엎드린 먼 산들의 아름다움은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예쁘고, 아름다운 저곳이 바로 우리가 지지고 볶고 사는 사바이다. 그러니 사바가 곧 극락이다. 뿐만 아니라, 서천으로 태양이 뉘엿뉘엿 떨어질 무렵이면 다섯 부처님의 허공 출현은 보는 이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범종루를 내려와 동쪽 삼층석탑에서 10여 미터 정도 동쪽으로 가서 안양루를 쳐다보면 포벽 사이에 나타난 황금빛 오방불을 볼 수 있다.


영주 부석사는 중생이 부처님을 안아주고 부처님 또한 중생을 품어주는 곳으로, 절대 진리의 세계는 중생 속에 있고, 일체만상이 부처 아님이 없는 도리를 말하고 있는 사찰이다.

*이 글은 유튜브 ‘불교신문TV’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불교신문3653호/2021년2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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