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스님] 해인사 국일암 감원 명법스님
[우리스님] 해인사 국일암 감원 명법스님
  • 장영섭 기자
  • 승인 2021.02.09 1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협화음을 감당하고 극복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은유와 마음’ 이론 통해
외롭고 힘든 사람들 ‘위로’
“진정한 공동체 정신이란
갈등을 치열하게 좁혀가는 것“
해인사 국일암 감원 명법스님은 “각자가 삶의 주인이 되어 화합하는 무위(無爲)의 공동체가 불교의 미래를 밝혀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인사 국일암 감원 명법스님은 “각자가 삶의 주인이 되어 화합하는 무위(無爲)의 공동체가 불교의 미래를 밝혀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인총림 해인사에는 비구니 암자가 많다. 여러 교구본사 중에서 해인사가 가장 많이 갖고 있다. 국일암(國一庵)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일제강점기에 비구니 강원(講院)이 있었고 한때는 선원(禪院)도 운영했다. 안거에 들면 20명쯤 모였다. 지금은 명법(明法)스님 혼자 산다. 공양주도 없다. 118일 그곳에 눈이 엄청나게 내렸다. 국일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차가 다닐 수 없을 만큼 눈이 쌓였다. 조심조심 걸어가다가 부지런히 눈을 쓸어내며 내려오는 스님을 마주쳤다.

명법스님은 세속에서 알아주는 인문학 인재였다. 스님의 간곡한 요청으로 출신학교는 밝히지 않는다. 조계종 화합과 혁신위원회 기획위원, 성보보존위원 등으로 10년 정도 중앙에서 일했다. 구미 화엄탑사 주지를 하다가 작년에 해인사로 내려왔다. 은사인 성원스님이 주석하던 곳이 국일암이다. 책 읽고 글 쓰고 일반인들을 상대로 명상지도를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사람들은 인근 마을에서도 멀리 대구에서도 와서 배운다. 얼핏 한도인(閑道人)’의 삶이지만 실상은 전혀 한가하지 않다. 한때는 20명이 살던 절을 혼자 관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스님은 상당히 추워보였는데 외롭지는 않다. 출가한 지 27년 됐다. “불교 덕분에 충분히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인생 전체가 지금 이 순간에 있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고 긍정하는 나이다.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그 시간을 왜 견뎌냈는지.

이제는 그 시간을 견딘 방법을 남들에게 일러주기 위해 힘쓴다. 저서 <은유와 마음>에 그간의 노력과 지혜가 상세하게 나와 있다. ‘은유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지름길과 같다. 은유와마음연구소를 이끌며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 아파하는 이들을 은유로 구해줬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모임에서 나는 상담학과 ○○○.’라고 자신을 소개할 때 거기에는 어떤 고정된 의미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이와 달리 나는 굴러온 돌이다.’라고 표현한다면 굴러온 돌이라는 은유에는 앞의 직접적 표현보다 더 복합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명법스님이 말하는 은유스토리텔링의 장점은 은유가 억압된 감정을 좀 더 쉽고 안전하게 표출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편안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마음을 치유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벚꽃의 은유에선 화려한 겉모습에 집착하는 마음을, ‘가방의 은유에선 온갖 잡동사니를 마음에 끌어안고 사는 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은유에 기대면, 자신의 문제와 객관적 거리를 둘 수도 있다. 그렇게 어떤 특정한 모습에만 집착한 나머지 내가 미처 모르던 나를 알아가게 되고, 잘못 알고 있는 나를 깨닫게 된다.

내가 알지 못하던 다양한 나를 알려는 시도와 노력은 진정한 자기애를 가져다준다. “나를 순수한 무(), 곧 공()으로 보고 체험할 때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쓸 때 공성(空性)이 발휘됩니다. 명상 상태에서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버리고 사회적으로 부여된 역할을 떠나 순수하게 공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내가 존재하고 있다면, 나는 고정돼 있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으며 반쪽짜리 나에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선한 마음을 획득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선한 마음이 흘러넘칠 때 비로소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성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결국 공성에 근거해서만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선의가 실천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명법스님은 불교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걱정하는 사람이다. 화합과 혁신위원회 활동을 통해 또는 이런저런 상담과 강연을 통해, 스님이 보여주고 이루고자 하던 가치는 공동체의 회복이다. 스님들의 독특하고 모범적인 공동체인 승가(僧伽)가 여전히 건재하는 이유도 사람들에게 끝내 소통과, 소통을 위한 인내와 배려의 정신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타인과 화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소통이 되겠어요?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공동체주의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온정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더라도 마음의 공성을 지켜내면서 상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적지 않은 불자들의 경우 공동체적인 사유가 부족하다보니 불협화음이 생기면 무작정 회피하거나 나쁜 일도 좋게 지내자 하면서 얼렁뚱땅 넘어가버리고 맙니다. 불교계에도 개인주의가 만연한 상황입니다. 불협화음을 감당하면서 극복하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요.”

스님이 스스로 명상을 하고 남들에게 가르치는 까닭은 인생의 주인이 되고자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각자가 주인이 되어야 참다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지향하는 공동체는 무위(無爲)의 공동체입니다. 무위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것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요하거나 강요당하지 않을 덕목과 권리를 뜻합니다. 무위의 가치를 갖고 우리 자신들이 주인이 되는 것, 서로를 만나고 이해하고 만나고 북돋아 주고 인정해주면서 함께 마음을 다해 어울리는 것. 그러다 보면 작은 아이디어라도 서로가 관심을 주고 인정해주게 되겠지요. 그러면서 개개인이 더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겠지요.” 스님의 말대로라면 불국정토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그 출발은 상대방의 소중한 마음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날은 원래 수도권에 눈이 많이 온다고 했다. 기상청의 예보는 빗나갔다. 남부지방에 폭설이 왔다. 해인사 가는 길에 고생이 컸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한 치 앞이라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명법스님은
대학원에서 석사논문까지 쓰고 1994년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운문사 승가대학을 졸업했으며 대학으로 돌아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과 대안연구공동체 등에서 미학 명상 불교를 가르치고 있다. 2016년 오랜 도반들과 함께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공동체인 미르문화원을 열고 그곳에서 은유와마음연구소를 운영했다. 불교와 인문학의 만남을 통해 무위(無爲)의 공동체’, ‘불교사상의 현대적 적용을 시도하고 있다. 저서로 <선종과 송대 사대부의 예술정신>, <미국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미술관에 간 붓다>, <은유와 마음>이 있다.

해인사=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