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혈모세포 공여자 인터뷰/
간호사 방지영, 회사원 박종혁 씨


학생 때 ‘생명나눔실천본부’ 통해 
장기기증 및 조혈모세포 등록 신청

수년 만에 ‘유전자 일치’ 소식 듣고
막연한 두려움으로 잠시 고민했지만
“작은 실천으로 생명 나눠 뿌듯해”

조혈모세포 채집을 위해 지난달 양산 한 병원에 입원 중인 방지영 씨. 방씨는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신청도 한 상태다. 사진 오른쪽은 회사원 박종혁 씨. 2019년 골수 이식으로 수여받은 공여증을 들고 있다. 사단법인 생명나눔실천본부에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 등록신청을 한 서른살 동갑내기들이다.
조혈모세포 채집을 위해 지난달 양산 한 병원에 입원 중인 방지영 씨. 방씨는 조혈모세포에 이어 '생명나눔실천본부'를 통해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신청도 한 상태다.

“평생 연락이 안 올 줄 알았는데 9년 만에 다시 연락을 받아 정말 기뻤습니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까요.”

삼성창원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방지영(30) 씨는 한달 전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방씨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혈액암 환자가 나타났고 그의 조혈모세포가 필요하니 기증 의사가 남아있는지 확인하는 전화였다. 대학생이던 2012년 생명나눔실천본부를 통해 기증 희망자로 등록한 지 8년 만의 일이었다.

기증 의사를 확인하는 전화는 처음이 아니었다. 방씨는 2014년에도 한차례 유전자가 일치하는 백혈병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듣고 흔쾌히 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환자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이식 시기를 놓쳤다. 조혈모 세포 이식은 백혈병 같은 혈액암 환자의 생명을 구할 유일한 희망이지만, 가족과 형제자매가 아닌 타인과 유전자형이 맞을 확률은 수만 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기증 희망자가 많아도 대부분 방씨처럼 일치자가 나타날 때까지 몇 년이고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혈모세포 채집은 하루가 소요되지만 유전자 상세검사와 건강검진 등의 과정을 거친 뒤 병원에 입원해 채집이 끝나고 회복기를 가지기까진 꼬박 한달 가까이 걸렸다. 채집 당일, 방씨는 양쪽 팔에 바늘이 꽂힌 채 4~5시간 누워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험으로 인해 보호자와 친구들 면회는 제한됐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업 특성상 자가 격리도 해야 했다. 근무하는 병원엔 양해를 구했다. 개인 연차를 내고 업무에서도 잠시 배제됐다. 

주변의 염려와 코로나라는 상황에도 방씨가 세포 기증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 건 ‘사람 살리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포를 이식 받는 수여자의 신상 정보는 원칙적으로 비공개지만 저와 비슷한 나이의 30대라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세포 이식을 위해서는 기증자와 수여자의 항원이 정확히 일치해야 하는데, 일치하는 사람 찾기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거든요. 간호사라는 직업을 떠나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조금의 수고로움이 따른다 하더라도 새 생명을 살리는 일이잖아요.”
 

조혈모세포 채집을 위해 지난달 양산 한 병원에 입원 중인 방지영 씨. 방씨는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신청도 한 상태다. 사진 오른쪽은 회사원 박종혁 씨. 2019년 골수 이식으로 수여받은 공여증을 들고 있다. 사단법인 생명나눔실천본부에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 등록신청을 한 서른살 동갑내기들이다.
간호사 방지영 씨가 조혈모세포 이식에 대한 공로로 2020년 수여받은 공여증을 들고 있다. 
2019년 조혈모세포 이식으로 받은 공여증을 들고 있는 회사원 박종혁 씨.
2019년 조혈모세포 이식으로 받은 공여증을 들고 있는 회사원 박종혁 씨.

대학생 때 조혈모세포 희망등록을 신청했다 수년이 지나 연락을 받은 박종혁(30) 씨도 5년만에 기증 절차를 밟은 케이스다. 박종혁 씨는 동국대 참사랑봉사단으로 활동하며 생명나눔실천본부와 인연을 맺었다. 장기이식과 조혈모세포 이식 캠페인에 참여하며 생명을 잃은 위기에 처한 환자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기억에선 차츰 멀어졌다. 

그러던 중 2019년 7월 박씨는 조직적합성항원(HLA)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많은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대답이 금방 나오진 않았다. “생각해보겠다”고 답한 뒤 고민이 시작됐다. 부모님은 강하게 반대했다. “골수 기증을 하면 몸이 안 좋아진다더라” “굳이 네가 나서서 할 필요가 있나” 등등 골수 기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들이 걸림돌이 됐다.

그래도 고민이 길진 않았다. 5년 만에 박씨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났는데 이번에 기증이 안되면 또 언제까지 환자를 기다리게 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언제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가능한 것도 아니고. 사실 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죠. 골수 기증 후 한달 간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후유증이 있다는 말도 들었는데, 직접 해보니 걱정했던 것보다 아무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인생에 한번 할 수 있을까 말까하는 경험, 절실한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멋모르던 대학생 시절, 생명나눔실천본부가 운영하는 홍보 부스와 봉사단 활동 등을 통해 조혈모 세포 등록을 했던 두 청년은 30살 동갑내기다. 같은 나이지만 서로 다른 시기,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을 하고 다른 때와 장소에서 이식 절차를 밞았지만 기증을 결심한 마음은 하나였다. 안타깝게 사그라지는 생명에 새 불씨를 지필 수 있다는 사실, 절실하고 간절한 누군가에게 희망이 돼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조혈모세포 이식에 대해서...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한 거부감은 아직도 크다. 질병관리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혈모세포를 기증할 생각이 없는 이유’에 대해 절반 이상이 ‘막연한 두려움’을 꼽았다. ‘골수 기증’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기증자에게 전신마취를 하고 등쪽 골수에 큰 바늘을 꽂아 채취했지만 요즘은 헌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양쪽 팔 혈관에 바늘을 꽂아 한쪽 팔에서 혈액 중 조혈모세포만 채취한 뒤 나머지를 다른 팔에 다시 넣는 방식이다. 기증자의 조혈모세포는 2~3주 안에 원래대로 다시 회복된다. 

골수 내에 포함된 조혈모세포는 ‘혈액을 만드는 어머니 세포’라는 뜻으로 모든 종류의 혈액세포를 생성하는 줄기세포다. 이 세포가 자라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은 물론 각종 면역세포를 만든다. 혈액암 환자의 치료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려면 환자와 기증자의 조직적합성항원(HLA)이라는 유전자형이 일치해야만 한다. 

가족이 아닌 타인의 경우, 일치할 확률은 수 만 분의 일에 불과하며 기증이 되려면 기증자 본인이 강력히 원해야만 한다. 혈액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항암요법이나 가족 간 또는 자가 이식의 순서로 치료를 모색하지만 모든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 HLA가 일치하는 조혈모세포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불교계 유일 장기기증 및 조혈모세포 희망등록 단체인 생명나눔실천본부는 희망등록자를 상시 신청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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