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칠일 철야정진 첫날부터 졸아
부끄럽지만 더 정진하겠다 각오

혜인스님
혜인스님

또다시 나한테 실패했다. 기도를 후회 없이 회향하고자 초하루 새벽부터 입춘 새벽 전까지 삼칠일 철야 정진을 다짐했는데, 첫날부터 실패했다. 겨우 밤을 지새우고는 새벽 종송을 하는데, “나~무우~ 아~미~타~부울~ 땡-” 종을 치고 나서 깜빡 들어버린 잠에 흠칫 일어나 다음 구절이 어디였지 하고 헤매었다. 꾹 참고 밤새 정진하느라 고생하고는 결국 법회 전에 두어 시간 눈을 붙였다. 법회 후에도 어느새 잠이 들어, 꾸벅꾸벅 존 시간까지 합치면 6시간은 되었다.

이튿날은 졸며 시간 때울 바엔 얼른 좀 쉬었다 해야지 하고는 밤 9시쯤 방에 들어왔는데, 눈떠보니 새벽 3시였다. 무슨 6시간씩 자야 되도록 미리 프로그램된 기계도 아니고 습관이라는 게 이토록 무섭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비법도 7가지나 되는 ‘습관’인가 보다. 6시간 혼침이라는 무서운 습관 덕에 작심 이틀 만에 정진 계획을 수정한다. ‘최대한 오래 깨어있고 깨어있는 동안 최대한 많이 정진하자.’

처참하게 실패하고도 이렇게 당당하게 주절거릴 수 있는 걸 보면, 인간이 생태계의 꼭짓점 노릇을 할 수 있게 된 비법도 분명 자기 합리화를 위한 고도의 지적 진화 때문이었을 게 확실하다. 인간만큼 잔인하고 교활한 동물은 없지 않은가. 우리 스스로가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을 뿐이지.

잔인하리만치 진화된 지적 능력의 진정한 놀라움은 거짓 합리화로도 얻게 되는 깨달음이 있다는 거다. 사실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신뢰할 수 없는 존재라고 인정하기만 하면 살아가는 데엔 별 지장이 없다. 시간에 맞춰 출근하고 시간에 맞춰 공부하고 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외부적 압력장치를 만들어 놓으면 그만이니까. 늦잠 자고 지각하면 혼나잖나. 그럼 혼나기 싫어서라도 시간에 맞춰 일어나게 되잖나.

습관의 힘은 아무런 외부 압력장치가 없는 산사의 독승(獨僧)에게도 영향력을 미친다. 스스로 하루 네 번의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맞춰 정진하려 애쓰는 동시에 스스로 정해놓은 시간 외에는 휴식을 즐기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장치. 그렇게 자신을 속이도록 우리의 업은 진화되어왔는지도 모른다.

거짓 합리화를 통한 깨달음이란, 이토록 교묘한 업의 능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도 단순하다. 최대한 오래 깨어있고, 깨어있는 동안 최대한 많이 정진한다는 건 출가수행자의 기본 중 기본이 아닌가. 천일을 채 한 달도 남겨놓지 않는 3년의 기도 결과가 고작 이런 거였다니. 부끄러움과 동시에 이제라도 느끼게 되어 다행이라는 감사함이 드는 건, 나 역시 고도의 지적 합리화 능력을 탑재한 인간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사실.

인간의 놀라움은 사실, 이런 사실을 깨끗하게 인정할수록 더 발현된다. 사실에 기반한 외부 압력장치를 스스로 또다시 만들면서. ‘6시간은 자야겠구나. 그럼 앞으로도 6시간 이상은 자지 말아야지. 그리고 조금씩 잠을 줄여보자. 그렇게 앞으로 더 깨어있으리라.’

요새 길어진 새벽 정진 동안 법당 앞에서 목 빠지게 기다리던 강아지들과 여느 때처럼 뒷산 봉우리에 올라 하늘을 바라봤다. 어제 온 함박눈 덕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해가 얼굴을 내미는데, 반대쪽을 보니 서쪽 하늘에만 짙은 먹구름이 새까맣게 드리웠다. 회향을 앞둔 내 남은 업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래, 아직 저만큼이나 남았구나. 며칠 남지 않은 날이라도 저 비바람을 흠뻑 맞으리라. 흠뻑 다 맞고 나면 온통 맑은 하늘만 남겨놓으리라.

기꺼이 더 실패하리라. 실패하되 실망하지 않고 더 부딪히고 넘어지리라. 그리고 다시 깨달으리라. 그렇게 맑은 마음만 회향하고프다.

[불교신문3647호/2021년1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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