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망념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부처’라 말하는데…

夫諸佛諸佛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이 
莊嚴寂滅宮         적멸궁을 장엄함은 
於多劫海            오랜 세월에 
捨欲苦行            욕심을 버리고 고행을 한 까닭이요.

양관스님

부처님 성도절, 그러니까 ‘부처님이 깨달으신 날’이 다가오면 기쁨으로 환희해야 할 텐데 항상 그러지 못하고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부처님이 출가한 나이에 산문(山門)에 들어 부처님이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그 나이를 훨씬 지나버린 지금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슬프기까지 한 것이 사실이다. 

부처님의 그 위대한 깨달음까지 간다는 생각도 해 보진 못했지만, 부처님께서 치열하게 정진하셨던 그 모습을 본받아 눈꼽만큼이라도 따라가려고 노력한 시간이 있었던가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부처님이 되는 조건을 욕망을 버리고 고행한 공덕이라고 하고 있다. 욕망의 강에 아예 몸을 깊숙이 담그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고행이라는 그 다음 조건을 실천하기 전이라도 욕망을 비우는 것이라 하고 있다. <화엄경>에서도 ‘한 생각의 번뇌 망념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부처’라고 설하고 있고 있는데, 욕망을 비우고 일어나지 않게 하는 노력은 얼마나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거의 많은 사람들이 욕망을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수행을 떠나 욕망을 구체화 시키는 쪽으로 하루하루의 삶이 짜여 져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일상 속에서 우리는 다겁해의 수행 이야기가 나오면 물러나 버리기 십상이다.

겁(劫)이라는 숫자만 해도 헤아리기 어렵고 그것도 앞에 많을 다(多)자가 붙어 그 겁을 또 헤아리기 어렵게 하는 많은 시간이 나오고 오랜 시간 수행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전에서도 일반적으로 ‘삼아승지를 닦아서 성불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런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들으면 쉽게 포기해버리고 만다. 새해가 시작되고 우리가 세웠던 계획도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는 것이 보통의 일인데 우리가 어찌 다겁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이런 숫자적인 어려움 때문에라도 우리는 쉽게 첫발을 떼어 놓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님 삼일 정도하다가 포기해 버리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발심한 사람으로서 항상 포기만하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이다.

너무 큰 하나의 겁을 이야기하기 전에 2021년 한 해 하루하루 만이라도 큰 욕망을 버리고 비우는 일을 떠나 작은 욕망이라도 하나하나 일어나지 않게 하는 노력을 해 나간다면 우리들에게도 조금의 진전이 있고 적멸궁을 장엄하는 큰 공덕은 없더라도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에서 말하는 의미를 조금이라도 새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운문문언(雲門文偃) 화상은 <벽암록> 제6칙에서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법문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하는 선행, 수행이 쌓이면 우리도 언젠가 겁이 쌓이고 쌓여 적멸궁을 장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생을 거듭하더라도 말이다.

[불교신문3647호/2021년1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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