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신교 급성장 이유는 목사 설교
심혈 기울여 준비하고 냉정한 평가 받아
우리 사찰은 법문 보다 기도 제사 중심
빠르게 성장한 사찰 비결도 스님 법문
법회가 중심이 되는 사찰로 변화해야

윤성식
윤성식

전세계에서 한국의 개신교만큼 성장하는 교회를 가진 경우가 없다. 서양에서 기독교는 쇠퇴하는 종교이지만 한국에서 개신교는 놀랄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다보니 한국 개신교의 성장 비결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이 많다. 급기야 미국 신학교에서 한국 교회의 성장 비결을 연구하고 강의하기 까지에 이르렀다.

개신교의 성공 비결로부터 우리는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대형 교회로 성장한 뒤에는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기존 명성으로 교회 규모가 유지된다. 하지만 개척 교회에서 대형 교회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다. 대형 교회로 성장한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요인만 들라하면 설교의 질이라고 본다. 신도 몇 명 모아 놓고 시작한 교회가 대형 교회로 성장한 이면을 보면 목사의 탁월한 설교가 공통점이다.

교회에서 일요일 교회의 꽃은 목사의 설교다. 그날 설교가 좋았다거나 별로였다는 평도 꼭 나온다. 어떤 목사는 일주일 내내 설교 준비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일요일 설교가 끝나면 다음 일요일 설교 준비에 들어간다. 설교 준비를 철저하게 하기 위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줄 비서를 고용한 목사도 있다. 설교가 좋으면 소문이 나고 그 설교를 듣기 위해 또 신도가 모여든다.

사찰 법회는 법문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어떤 대형 사찰은 주지 스님이 법문할 차례가 되면 신도들이 일어서서 나간다. 점심 공양을 하러 가는 것이다. 법문이 법회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예 주지 스님 법문이 없는 사찰도 있다. 교회는 설교를 들으러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설교가 중요하다.

사찰은 기도와 제사가 중심이어서 스님의 법문은 부수적으로 취급당한다는 느낌이다. 신도 몇 명 없던 어떤 사찰이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대형 사찰로 성장했다. 그 비결을 물었더니 단 한 번도 법문을 거른적이 없었다는 답을 했다. 그것이 답이다. 우리 불교의 위기에 던지는 답이다.

‘월화수목금’ 동안 우리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부대낀다. 분노하고 실망하고 의문을 가진 채로 사찰에 왔을 때 불교의 지혜가 신도를 비추지 못한다면 분노하고 실망하고 의문을 가진 채로 다시 삶으로 돌아간다. 불교의 지혜가 삶을 비추지 못하고 출세간에만 머물러 있다면 사찰은 부처님의 뜻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초기 불교 경전을 보면 부처님의 법문이 승가의 중심이었다. 법문은 부처님만 하신 것은 아니었다. 사리불, 목건련, 마하가섭 등 뛰어난 제자도 법문을 했다. 의문이 생기면 부처님에게도 질문했지만 사리불, 목건련, 마하가섭 등 뛰어난 제자에게도 던졌다. 설명을 듣고 감동한 뒤에 다시 그 말을 전달하는 과정이 경전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법문과 주고 받는 문답을 통해서 불교교리가 정리되고 설명되고 교육되었다.

지혜의 법고를 울리는 스님의 법문이 다시 사찰에 울려 퍼져야겠다. 법회에 모인 신도가 단 한 명이라고 해도 법문을 해야한다. 신도가 한 명이건 백 명이건 법문을 통해 스님의 불교교리는 다듬어지고 빛이 난다. 가르침은 최상의 배움이다. 신도가 한 명이건 백 명이건 법문을 통해 신도가 배우는 내용은 동일하다. 법문을 통해 스님과 신도가 모두 성장한다. 법문을 통해 불교교리가 바로 서고 신도가 변화하고 한국 불교가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불교신문3647호/2021년1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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