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기고] ‘영원한 수좌’ 적명스님을 추모한다
[불교신문 기고] ‘영원한 수좌’ 적명스님을 추모한다
  • 박희승 봉암사 문경세계명상마을
  • 승인 2021.01.25 16:26
  • 호수 36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입적 1주기 추모재와 부도 제막식을 보며

명예 고사하고 평생 수좌로 살며
자신을 낮춤으로 수행정신 보여줘

문경시와 수좌 스님들 원력 모아
봉암사 세계명상마을 건립 발원
박희승
박희승

종립 태고선원 수좌 적명스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이 되어 2021년 1월11일 봉암사에서 1주기 추모재와 부도 제막이 있었다.

희양산 봉암사는 한국불교의 심장이자, 선승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1200년 동안이나 청정한 수행 종풍을 밝혀왔다. 

2009년 봉암사 조실로 추대된 적명스님은 ‘조실(祖室)’ 대신 그냥 ‘수좌(首座)’로 불러 달라 했다. 출가 수행자라면 한 산중의 방장ㆍ조실이나 회주ㆍ주지를 명예로 여기는 승가풍토에서 이를 고사함은 스님의 수좌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스님은 늘 “중은 중다워야 한다”, “모름지기 수좌라면 본분사에 정진해야지 이익이나 명예를 쫒아서야 되겠는가” 하시며, 종단 안팎의 그릇된 언행을 보면 안타까워하고 경책하셨다. 그리하여 뜻있는 불자들은 자신을 낮춤으로서 더 빛나는 수행 정신을 실천하는 스님을 더 존경하고 따랐다.

스님은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봉암사에 주석하면서도 법을 묻고자 찾아오는 이는 막지 않았고, 승속을 막론하고 구도 원력의 수행자들의 공부 점검이나 법담을 위해서라면 밤새는 줄 몰랐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관에 있는 이들이 찾아오면 당신은 격식에 따른 인사조차 피하니 스님의 가풍이 그러했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봉암사에 오기도 어려웠고, 혹 오더라도 스님은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문재인 대통령이 야인 시절 봉암사로 찾아와 수좌 스님을 뵙고 책을 선물한 인연이 있었다. 스님은 그 책을 보고 노무현-문재인의 개혁 정신에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뒤에 청와대로 간 문재인 대통령이 어느 날, 사람을 보내어 수좌 스님과 차 한 잔 하러 봉암사에 오고 싶다고 허락을 구했다. 수좌 스님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 못가는 곳이 있어야 되겠나, 오시면 차나 한잔 대접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오기로 한 날, 종일토록 비가 내리는 바람에 대통령은 봉암사에 오지 못했다. 
 

적명스님 진영.
적명스님 진영.

수좌 스님께서 열반하시던 해에 나는 도반들과 여러 번 봉암사로 와서 법문을 청해 들었다. 법문은 중도사상과 화두 참선법을 주로 하셨다. 스님은 워낙 달변이고 음성 또한 편안하여 한 번 법문 들은 이들은 불교와 화두선에 신심을 내고 좋아하였다. 봉암사와 수좌 스님 명성이 점점 알려져 세계 여러 불교학자들과 명상지도자들이 찾아와도 거절하는 법이 없었고, 꼭 법담을 나누었다.

말년에 스님께선 “수승한 화두선을 세계인들에게 전하여 지혜와 평화를 찾게 도우면 좋겠다”며 문경시와 수좌계의 원력을 모아 봉암사 세계명상마을 건립을 발원하셨다. 명상마을은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며 선(禪) 전래 1200주년이 되는 금년 가을에 개원하고자 하는데 수좌 스님께선 보지 못하고 가시니 무상한 마음이 가슴을 저민다. 이젠 후학의 몫이 되었다.

1주기를 맞아 봉암사 안거 대중과 더불어 적명스님 탑을 세운 주지 원광스님은 평소 “나 죽으면 사리탑이나 비를 세우지 말라. 정 허전하면 자연석이나 하나 두라” 하신 스님 뜻을 받들어 경내 부도전에 작은 돌기둥 세 개를 세우고, 받침돌에 스님의 짧은 한 말씀을 새겨 그 뜻을 기렸다. 

[불교신문3647호/2021년1월23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