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4일 대법원은 한국불교 역사와 정체성과 현실을 부정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1955년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한국불교 수행전통을 회복하는 정화를 통해 출범한 대한불교조계종을 부정했던, 1960년 겨울처럼 대법원은 60년 만에 법의 이름으로 조계종을 혼란에 빠트렸다. 

대법원은 종단이 원고로 나서 1, 2심을 승소한 ‘선암사 야생차 체험관 철거 소송’에서 파기 환송 결정을 내렸다. “실질적으로 사찰이 누구 것인지 실제 모습을 근거로 판단해야 한다”며 조계종 측 손을 들어준 사건을 다시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파기환송 사유는 이해할 수도 없으며 법률 상식에도 맞지 않다.

“실질적으로 사찰이 누구 것인지 실제 모습을 근거로 판단해야 한다”는 사유는 한국불교 역사와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뿐만 아니라 힘을 동원해 억지로 점령한 다른 단체나 개인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논리다. 우리 속담에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했는데 대법원이 아예 주먹을 합법화 한 것과 다름없다. 

선암사는 이미 법으로 조계종 소유임이 확정되었지만 태고종 측의 강제 점유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 국가로 치면 ‘미수복지구’와 같다. 1962년 제정된 불교재산관리법에 따라 조계종 소유였던 선암사는 대처측이 그대로 점유했지만 불교 화합 차원에서 필요한 행정 조치만 하고 물리력 행사는 자제했다. 사고 사찰로 지정돼 양측 모두 행정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순천시가 대행하다 2011년 조계종 태고종의 합의에 따라 우리 종단이 소유자 지위를 획득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순천시의 야생차체험관 건물은 불법 점유한 태고종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원천적으로 불법 행위였다. 이 때문에 우리 종단이 제기한 철거 청구소송을 1심과 2심이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엉뚱하게 사찰 소유가 누구인지 살펴야한다며 법이 인정한 소유주 문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법에 등록된 소유권을 무시하고 강제 점령한 불법행위를 대법원이 인정하는 셈이다. 

정부와 법이 조계종의 선암사 소유권을 인정한 것은 정화를 통한 종단의 역사적 정통성을 대한민국 정부와 법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조계종이라는 이름의 현대 종단은 1962년 불교재산관리법에 따라 등록됐지만 그 근거는 삼국시대 이래로 고려 조선을 거치며 형성된 수행과 문화, 사찰 운영 관리, 승가 전통을 대한불교조계종이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 점거가 아니라 전통문화 의식 같은 정신과 내면 역사를 법과 행정이 반영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1960년대부터 선암사를 둘러싼 수많은 소송에서 법은 한결 같이 조계종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역사와 전통, 대한민국의 법을 대법원이 일거에 부정하는 결정을 내렸으니 1960년 겨울에 이은 또 다시 대법원 발(發) ‘훼불’이 일어났다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60년 전 잘못된 판결로 인해 우리 종단과 스님들이 겪은 고초, 국가 사회적 혼란과 낭비가 극심했는데 이번에는 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걱정이다.

[불교신문3646호/2021년1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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