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철행 광진노인보호센터장

연 억대 매출 사업가에서 복지가로
10년 108배, 경전읽기로 새벽 열어
치매어르신들 ‘민원 해결사’ 역할도

조철행 광진노인보호센터장.조철행 센터장이 40대부터 써 모은 글이다. 20년 가까이 다음 카페와 그의 개인 일기장에 쓴 원고만 수천개가 넘는다. 그는 이 원고들을 모아 향후 책으로 엮을 계획도 갖고 있다.
조철행 광진노인보호센터장.

어르신 90% 이상이 치매 환자인 광진노인보호센터는 최근 2년 간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민원과 어르신 들 간 불협화음까지,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에서 수탁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지난해부터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지칠 때까지 어르신과 직원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끝없이 자기를 낮추는 이 사람, 조철행 광진노인보호센터장 공이 크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30년 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며 연 억대 매출의 기업가로 성공했지만 어느 순간 모든 걸 다 내려놨다는 그다. 치열하고 화려했던 삶에서 이제는 충만한 삶으로 인생 2막을 다시 연 조철행 센터장을 1월13일 서울 광진구 노인보호센터에서 만났다. 

“요즘 세상에 끼니 걱정하는 사람 없지요? 근데 저는 배곯다 사무치게 울어도 봤어요.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에요. 운 좋게 결과가 따라줬지만 그래도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집도 사업도 다 줘버리고 가진 거 하나 없지만 오히려 충만함을 느낍니다. 진짜로 사는 것 같달까.”

조철행 광진노인보호센터장(62)은 2년 전 출가 아닌 출가를 했다. 30년 가까이 이끌어온 사업체는 직원들에게 나누고 퇴직 후에도 안정적으로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건물은 가족에게 넘겼다. 사회적으로, 가정에서도 치열하게 이뤄온 것들을 충분히 누릴만한 위치, 비로소 한 숨 돌릴 여유가 생겼을 때 그는 손에 쥔 모든 것을 놓았다.

“사업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시기였는데 이상하게 기쁘지 않더라구요. 하던 사업도 잘되고 수익이 크게 나서 건물도 구입했죠. 불안하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수입도 보장됐는데 이상하게 우울했어요. 하루 종일 피곤하고 축축 쳐지고 말이에요. 이게 사는 건가 싶었죠.”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다섯 식구 가장이 됐다. 24살이 돼 직접 농산물 유통 업체를 차리기 전까진 남들 밑에서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남들 잘 때 안자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을 때 배를 쥐어짜며 버텼다. 한 달에 80kg짜리 쌀 한 포대를 5000가마씩 배달하면서 이기적이고도 치열하게 살았다. 아버지 없는 삶, 가장 없는 살림살이의 매서움을 알았기에 나도 주변도 돌아볼 줄 모르던 때였다. 앞만 보고 달리던 그의 삶이 완전히 멈추게 된 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어머니를 공주 신원사 옆 굿당에 모셨어요. 굿당을 절로 착각할 정도로 그 때는 정말 불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아요. 나중에 어머니를 위해 재를 올리고 기도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조금씩 알았죠. 그러면서 절에 조금씩 다니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법공양> 책도 그 때 처음 봤구요.”

책 읽는 걸 좋아하던 그의 눈에 법당 옆에 놓여있던 <법공양>이 쏙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우룡스님 ‘금강경 강해’를 수없이 읽었다. “제가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가 노자였는데 부처님은 그보다 백배 아니 수천배는 더 높은 경지에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 때부터 였던 것 같아요. 제 삶이 송두리째 바뀐 때가...”

완전히 다른 삶이 시작됐다. <법공양>으로 시작된 인연은 나눔 활동으로 이어졌다. 출판사인 불교신행연구원에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8kg짜리 10포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10년이다. ‘거사님 이마에 도끼날이 붙어 있다’며 바늘 하나 안 들어갈 정도로 서슬퍼렇던 그에게 찾아온 엄청난 변화였다.

혼자 108배도 시작했다. 그의 후원 소식과 신행 생활을 들은 한 보살이 혜거스님을 한번 찾아가보라 귀띔했다. 그 길로 금강선원을 찾아 ‘능엄경 강의’를 들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강의에 나와 쉴 새 없이 질문하는 그에게 ‘참선반’ 반장이라는 소임도 주어졌다. ‘무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은 고민이 혜거스님과의 문답에서 한순간 풀렸을 때는 ‘좋아 죽는 줄 알았다’고.
 

조철행 광진노인보호센터장.을 모아 향후 책으로 엮을 계획도 갖고 있다.
조철행 센터장이 40대부터 써 모은 글이다. 20년 가까이 다음 카페와 그의 개인 일기장에 쓴 원고만 수천개가 넘는다. 그는 이 원고들을 모아 향후 책으로 엮을 계획도 갖고 있다.

“공부할 방법을 몰라 그저 책만 읽고 글만 썼는데 답답함이 많이 풀렸죠. 왜 경전을 처음 접하다보면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기분이 들잖아요. 강의를 듣고 스님과 대화하면서 조금씩 문장들이 이해가 되더라구요. 못했던 불교 공부를 한꺼번에 하려니 반쯤 미쳐있었는지, 참선반 수업이 끝날 때 즈음 스님께서 그러시더라구요. ‘너무 깊이 가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계에 치여 아귀다툼 하듯 살던 지난날이 언제였는지도 모를 만큼 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상담심리를 공부하기 위해 검정고시를 보고, 사이버대에 등록하며 뒤늦게 만학도의 삶도 시작했다. 복지 관련 행정 업무는 처음이지만 모두 마다하는 센터장 자리로 흔쾌히 수락할 만큼 복지 분야에 관한 관심도 커졌다.

매일 수백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던 CEO에서 이제는 경전 읽기와 부처님 가르침을 글에 녹이는 시간으로 새벽을 연다는 조철행 센터장. 가진 거 하나 없는 ‘빈 손’이지만 충만과 행복으로 편안과 자유를 얻었다고 말한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저라고 왜 어렵지 않겠습니까. 다만 곤혹스러운 순간들이 닥칠 때마다 다른 시선으로 보고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고 해요. 그게 아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통찰’이겠지요. 저는 ‘탐진치’ 삼독심이 아예 없어요. 아니, 있어도 그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화가 없고 욕심이 없으니 부딪힐 일이 생기지 않는 것 같아요.”

환희심, 충만, 여유, 안정, 웃음. 그를 채우고 있는 감정들이다. “조금 늦긴 했지만, 부처님 가피로 뒤늦게 명예롭게 사는 기분입니다. 가진 것 하나 없지만 지금보다 더 좋았던 때가 없는 것 같아요. 이 귀중한 가르침을 진작 알았으면 더 좋았을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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