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일을 응원해준 사부대중께
작은 마음이나마 갚아서 감사

혜인스님
혜인스님

부쩍 잔소리를 많이 듣는다. 천일기도 회향이 가까워질수록 조심해야 할 것들은 늘어난다. 코로나는 당연하고, 음식, 여자, 운동은 물론이거니와 은사 스님과 종무원들까지 조심하라는 분도 계신다. 내 기도의 무사 회향을 바라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았었나를 새삼 느낀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잔소리를 싫어해 평소라면 귓등으로 흘려버렸을지 모를 참견들에 두 말 않고 ‘네’ 소리가 나오는 건 그 때문이다.

내게 서운한 게 있으셨던지 한동안 절에 안 오시던 보살님이 며칠 묵고 가신다며 올라오셨다. 첫날부터 저녁예불 후에 법당을 자진해서 정리하며 “스님, 오늘은 그만 하세요. 쉬엄쉬엄 하셔야죠” 하신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기도하지 말라는 잔소리(?)를 냉큼 듣는다. “네” 하고는 바로 가사를 벗고 법당을 나왔다. 평소 같았다면 아마 못 들은 척 기도를 시작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경전 모임을 만들어 자발적으로 정진하는 신도분들이 계신데, 내가 회향 후에 절을 떠나면 봐 드릴 수 없을 것 같아 당부 말씀을 좀 드렸더니, 당신도 내게 당부할 게 있다며 마스크를 꼭 쓰라고 하신다. 안 그래도 요즘 조심한다고 애쓰는 중이라 평소 같았으면 “마스크 잘 쓰고 있는데요” 하고 토를 달았을 텐데, 이상하게 온순한 대답이 나온다. “네, 그럴게요. 이제 마스크 꼭 쓸게요.”

“스님, 가지 마세요.” 사실 기도 무사 회향보다 많이 듣는 잔소리는 이거다. 이미 절에 다른 소임자 스님께서 오시기로 돼 있고, 내 회향 후의 계획에 대해 신도분들께 말씀을 드려도, 그래도 가지 말라고들 하신다. 역시 평소 같았으면 그런 말씀 마시라는 둥, 가서 더 공부해야 한다는 둥 상황을 이해시키려 애썼을 텐데, “알겠어요. 주지 스님이 새로 오셔도 끝까지 버텨볼게요” 하는 대답이 튀어나온다.

함께 회향하고 싶어서다. 함께 기도했으니, 함께 살았으니, 회향도 함께하고 싶어서. 나 혼자 회향한다고 하면 코로나 걸려도 상관없다. 이제껏 별의별 마장과 싸워왔는데 코로나도 뭐 공부로 삼으면 그만이지. 혼자 회향한다고 하면 주변이야 걱정을 하든 말든 내 기도나 열심히 하면 그만이지. 혼자 회향을 한다고 하면 절을 떠나든 말든 내가 결정하면 그만인 일이지. 하지만 그러면 대중들이 회향을 못 하게 되잖나. 나야 900일 넘게 열심히 기도해온 시간이 있는데, 남은 며칠 빼먹는다고 그간의 공덕이 어딜 가겠는가. 그치만 남의 기도는 하루라도 내가 함부로 빼먹을 수가 없잖나. 그냥 그게 죄송스러워서 “네”가 나온다.

2년 넘게 나이 어린 후배의 천일기도를 불평 없이 외호해주시던 선배 스님이 한 분 계셨다. 한창 더 기도에 매진해야 할 막바지 무렵에 다른 소임처로 떠나게 됐다는 말씀을 듣고 망설임 없이 그 선택을 조용히 응원해드렸다. 참 다행이었다. 외호 받으며 기도하는 내내 마음에 짐이 있어서,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쳐도, 회향 후에는 그 스님의 부탁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라도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서.

난 자리는 표 나기 마련이듯, 혼자 맡게 된 소임과 법회, 기도는 솔직히 때론 버겁다. 하지만 회향 전에 이렇게나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음에 한없이 다행스럽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다. 매일같이 천주를 만드는 참 별 것 아닌 일이라도, 천 일을 보필하고 응원해주신 사부대중께 내 작은 마음이나마 갚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지난해 말일엔 매일 가던 산책길에서 엉덩방아도 찧고, 덕분에 신발도 다 해어지고, 욕실에서 발이 미끄러져 꽈당 넘어지기도 했다. 참 다행이다. 이렇게나마 마음의 빚들을 탕진해버릴 수 있어서.

[불교신문3645호/2021년1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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