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사, 추모법회 및 사리탑 제막식
스님 뜻 이어받은 간소한 모습 눈길

문경 봉암사가 1월11일 ‘적명스님 열반 1주기 추모법회 및 부도 제막식’을 봉행했다. 사진은 평생 수행 정진에 힘썼던 적명스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적명선사탑'.
문경 봉암사가 1월11일 ‘적명스님 열반 1주기 추모법회 및 부도 제막식’을 봉행했다. 사진은 평생 수행 정진에 힘썼던 적명스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적명선사탑'.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수행자의 지남(指南)이 됐던 적명스님을 기리는 부도(浮屠)가 봉암사에 세워졌다.

문경 봉암사는 111적명스님 열반 1주기 추모법회 및 부도 제막식을 봉행했다. 추모법회와 제막식 모두 평생 수좌로 살았던 적명스님 가르침에 따라 간소하게 치러졌다. 주지 원광스님은 평생 절제하며 간소하게 살아오신 스님의 뜻을 다시 새기고자 했다특히 적명선사탑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 한 사람의 수행자로 평생을 정진했던 적명스님의 삶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고 밝혔다.

적명선사탑은 봉암사 경내 태고보우 원증국사 사리탑옆에 세워졌다. 기단 없이 4각 돌기둥 3개가 서 있는 모습으로 각각의 기둥은 불법승(佛法僧)’을 의미한다. 좌차와 승속의 구분 없이 평등한 위치에서 수행 정진하고자 했던 적명스님 뜻대로 기단을 따로 두지 않고 땅 바로 위에 평평한 받침돌을 두어 높낮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평평한 돌 위에 세워진 4각의 3개 기둥은 일반적으로 사리탑이 원형의 8각 모양을 띄고 있는 것과 달리 규모가 작고 간소하다. 어떤 문자나 그림도 없이 문경과 경주에서 채굴한 자연석을 그대로 다듬어 옮겨왔다. 기둥의 각진 면들은 각각 크기와 위치를 달리해 수저 하나 허투루 놓지 않았던 스님의 평소 모습을 따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매순간 머물러 있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했던 진취적인 자세를 담았다.

적명스님은 출가 후 60년을 선원과 토굴에서 수행정진하며 승속의 존경을 두루 받는 어른으로 꼽혔다. 한국 불교 최고 선승으로 추앙받으면서도 격식을 갖추는 것을 극히 꺼렸다. 일찍이 봉암사 최고 어른인 조실로 추대됐지만 나는 그럴 위치에 있지 않다며 재차 마다하고 한 명의 수좌로 돌아간 덕에 10년이 넘도록 봉암사 조실이 빈 자리로 남아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평생을 후학과 같은 자리에서 수행 정진하며 언제나 자애로운 미소와 천진을 잃지 않던 적명스님. 스님을 기리는 적명선사탑평평한 돌머리에는 살아생전 스님이 일기장에 적어 둔 글이 함께 새겨져 있다.

범속한 한 사람의 승려로 대중 속에 묻혀 규율 따라 때로는 일하고 때로는 좌선하며 간혹 큰 스님이 와서 법문하면 비록 그가 옛 도반이나 후배라 할지라도 법에 대해 설한다는 사실만으로 감격해 마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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