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전” 칭송

현세부모 봉양 안주하지 않고
윤회苦까지 종식…‘해탈’ 지향

불교 효행문화의 진수 알리는
‘세계 유례없는 성보문화재’

“부모은혜 고마움 느끼는 것은
자기의 중심을 세우는 것으로
어려운 세상 살아가는 버팀목”

서울에서 1시간 거리 정도 지척에 위치한 화산 용주사(조계종 제2교구본사)는 지금은 우리가 쉽게 가 볼 수 있는 정겨운 사찰이다. 융건릉에서 병점 방향으로 가다보면 왼쪽이 넓게 트이면서 용주사가 반긴다. 정조는 이 길을 가기 위해 한강에 배다리를 설치하고 길 위의 백성들을 만나면서 아버지 사도세자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났었다. 용주사 일주문을 들어가 경내에 들어서면 왼쪽에 용주사효행박물관이 있다. 효행이란 종교와 이념을 넘어서는 인간의 소중한 가치이다. 효행박물관이라는 박물관 명칭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요즈음은 사찰에 가면 성보박물관을 종종 볼 수 있다. 수많은 사찰의 성보문화재는 신앙의 힘과 원력, 뛰어난 장인이라는 삼박자가 잘 맞아 조성된 것이다. 사찰에 봉안된 성보문화재는 당연히 예경의 대상으로 불전에 모시지만, 도난과 화재 등에서 보호하기 위한 대안으로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현재 박물관에 소장된 성보문화재는 다른 사찰과 구별되는 독창성이 있어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찰의 역사적 문화적 특성이 뚜렷하다. 

용주사 효행박물관의 대표적 문화재는 과연 이름에 걸맞게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佛說大報父母恩重經版)>이다. 이 경판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부모님의 은혜의 귀중함과 그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를 새긴 것이다. 이 경판이 용주사에서 만들어진 배경에는 조선의 성군 정조대왕이 있다. 
 

➲ 정조의 효심 가득한 용주사

조선시대의 중흥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군주로 영조와 정조를 꼽는다.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는 탕평책을 실시하여 관리를 골고루 등용하는 등 시회적·정치적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 특히 83세까지 천수를 다한 조선에서 가장 장수한 왕이며, 52년 동안 왕위를 누린 인물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 어렵게 얻은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비정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사도세자 죽음의 배경에 대해 당파 싸움에 희생되었다는 설과 영조가 보기 드물게 장수하여 그 정적이 바로 그 아들이 된 것이라는 설 등 분분하지만 영화의 소재가 될 만큼 드라마틱한 내용이다. 결국 손자인 정조가 왕위를 계승하였고 정조는 할아버지의 장점을 본받아 사회개혁을 이루어 내어 역사의 진전된 발전을 이루어낸 현명한 왕이었다.

특히 정조시대는 문화의 르네상스시대라 일컬을 정도로 문화의 부흥을 일으켰는데, 이는 본인의 문화적 소양에 기인한 바가 큰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동국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정조가 그린 파초도에서 그의 예술적 기량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도 여러 저술과 강론을 남겼으며, 그의 기개가 느껴지는 서예도 능했음을 알 수 있다. 

정조는 왕이 되자마자 “본인은 장헌세자(莊獻世子: 사도세자 思悼世子, 1735~1762)의 아들이다”라고 천명할 정도로, 그의 부친의 삶을 애달파했다. 그는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묘를 천하제일의 복지(福地)라 하는 이곳 화산(花山)으로 옮겨와 현릉원(뒤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하였다.

현릉원의 능사(陵寺)로 용주사를 중창하고 비명에 숨진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호하고 그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능침사찰은 대부분 운영되는 사찰 가운데 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에 비해 용주사는 왕실에서 주도하여 세운 특이한 경우이다. 

정조는 용주사의 설립계획을 치밀하게 구상해서 빠르게 실행에 옮겼다. 1790년 2월에 용주사의 입지를 선정한 것을 시작으로 그해 9월에 대웅전에 불상을 점안하여 마무리 하였다. 용주사 건립에는 총 216일 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총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정조의 측근이자 수족들이 총동원 되었는데, 채제공(蔡濟恭, 1720~1799)과 김홍도(金弘道)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친숙한 인물이다. 

정조는 직접 ‘용주사’라 사명(寺名)을 지었다. <정조실록>에 실린 부친인 장헌세자의 꿈에 용이 구슬을 안고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정조가 태어났다는 기사와 <화산용주사상량문>에 “아 대궐의 임금이 처음으로 사찰의 이름을 내리신 것은 평상시 부처의 덕을 갚고자 한 까닭이다”라는 부분에서 그 사연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세계의 유례없는 효행본찰(孝行本刹)이라는 이름으로 용주사를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 부모의 은혜를 새기다 

사람들은 보통 불교에서 효는 중요한 덕목이 아니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 초기 경전에서부터 석가모니부처님 스스로가 효행을 실천한 인연 설화를 서술하고 있다. 불교에서 효는 현세의 부모 봉양에 안주하지 않고 윤회 속 괴로움을 종식시켜 해탈로 지향한다는 점이 효행을 구현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부모은중경>은 내용이 길지 않으나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 구성되어 있는 완성도가 높은 경전이다. 정조는 보경당 사일스님에게 <부모은중경>에 대한 설법을 듣고 섣달그믐과 단옷날에 <부모은중경> 게송을 인쇄하여 배포하도록 하였다. 

정조는 1796년 목판과 동판의 간행을 완성하였고, 이후에도 영구히 후세에 전하고자 돌에 새겨 용주사에 내려 주었다. 석판은 경문을 반전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 새긴 석경(石經)인 것이다. 용주사본은 당대 최고 기량을 갖춘 자비대령화원에 의해서 밑그림이 그려지고, 주도한 인물은 김홍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용주사 <부모은중경>은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종분은 본문 격으로 석가모니부처님이 고골(枯骨)에게 예배하고 이가 곧 전생의 부모일지 모른다고 설명하는 여래정례도(如來頂禮圖)를 시작으로 한다. 

이어 임신에서 양육까지의 은혜를 10폭으로 그린 것을 담았다.
①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은 임신을 하여 몸가짐을 조심하는 은혜
②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은 해산에 임박하여 고통을 이기시는 은혜
③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은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
④연고토감은(咽苦吐甘恩)은 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어 먹여 키우시는 은혜
⑤회건취습은(回乾就濕恩)은 진자리 마른자리를 가려 누이는 은혜
⑥포유양육은(哺乳養育恩)은 젖을 먹여서 기르는 은혜
⑦세탁부정은(洗濁不淨恩)은 손발이 닳도록 깨끗하게 씻어주신 은혜
⑧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은 부모의 곁을 떠날 때 걱정하시는 은혜
⑨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은 자식을 위해 악업으로 나아가시는 은혜
⑩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은 자식을 평생 애처롭게 여기고 걱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은 불효의 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지수제건(指數諸愆)과 부모의 은혜가 막중함을 비유하여 설명한 원유팔종(援喩八種)의 내용이다. 용주사판은 원유팔종 가운데 주요수미(周遶須彌周) 장면만 변상으로 새겼다. 수미산을 백 번 천 번 돌더라도 부모의 깊은 은혜를 다 갚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장은 부모의 은혜를 갚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계발참회(啓發懺悔)는 사경ㆍ독송하며 삼보를 공양하는 것을 설하고 있다. 아비타고(阿鼻墮苦)는 불효를 행하면 아비무간지옥(阿鼻無間地獄)에 떨어진다는 과보를 설하고 있다. 상계쾌락(上界快樂)은 이 경전을 조성하면 은혜를 갚는 것이 되어 부모가 하늘에 태어나게 된다고 설하고 있다. 상계쾌락도를 새긴 것은 용주사판이 유일하다.

유통분은 설법을 들은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겠다는 맹세와 부처님이 경전의 이름을 ‘대보부모은중경’으로 정한다는 내용이다. 이 경전은 부모에게 보은하는 방법으로 <부모은중경>의 간행과 배포가 중요함을 설하였다. 오늘날 용주사 간행의 <부모은중경>은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전으로 칭송하고 있다

필자가 첫 번째로 소개하는 성보로 용주사의 부모은중경판을 꼽은 것은 새해를 맞아 불심에 담긴 효심을 음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부모의 은혜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자기의 중심을 세우는 것으로, 어려운 세상을 헤쳐 나가는데 버팀목이 된다”는 어느 스님의 법문을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코로나19로 효행의 길은 더욱 멀기만 하다. 힘든 세상살이를 헤쳐오신 모든 부모님들이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한다. 
 

※ 필자 이분희 문화재전문위원은…

불교중앙박물관에서 ‘학예업무 총괄’을 맡고 있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조선 전기 아미타불상에 대한 내용으로 석사, 한국 탑안에 봉안된 불상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재전문위원으로 불교문화재 관리에 대한 업무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불교신문3644호/2021년1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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