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독송 의식문 처음 반짝 사용
오랜 관행에 젖어 한문으로 되돌아가
다양한 이유로 한문 의식 염불 선호

의식 염불 목적은 부처님 진리 전달
내용 분명하게 전하는 우리말로 해야

지용스님
지용스님

솔직하게 말하면 아침예불 때 우리말 의식문을 즐겨 쓰지 못한다. ‘반야심경’ 정도만 우리말로 독송하고 나머지 의식문은 아직 그대로다. 몇 년 전 우리말 경전과 우리말 의식을 널리 펼치는 캠페인을 할 때에는 군사찰이 모범이 되어보자고 애를 썼던 적도 있었다. 대부분이 초심불자라서 쉬울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다들 한문경전 선호도가 높았다. 초기 좋은 분위기도 사라진 지금은 군법당에서도 우리말 의식을 열심히 시도하는 곳이 거의 없는 듯 하다. 

군부대 특성상 1~2년에 한 번씩 주지가 바뀌는 현실에서 나 혼자 특이하게 우리말로 의식을 봉행하는 모습은 신도들에게 혼란을 주기 쉽다. 아무튼 여러 이유로 전전긍긍하는 사이에 몇 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제는 무언가 바꾸려는 노력조차 돌출행동처럼 보인다. 아쉬운 일이다. 언젠가 우리말 의식문 연구 개발에 참여했던 한 스님께 조언을 구했었다. 그런데 그 스님조차 우리말 의식이 번거로워서 평소에는 한문의식을 쓴다고 토로해 놀란 적이 있다. 그만큼 관행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 때문에 법문과 염불 음원과 영상을 만들어 SNS에 올려 두었는데 우리말 경전이나 의식문보다 한문 경전 선호도가 몇 배나 높았다. 개인 공간에서 혼자 듣는 염불소리조차 익숙한 음률과 음성의 한문 경전이 더 좋다는 것인데, 한문 경전의 뿌리가 그만큼 깊고 무겁다는 반증이다.

오랫동안 우리가 향유해오던 한문경전과 한문의식 틀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문 의식문을 선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더 짧아서, 염불 고유의 음률이 중요해서 선호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 현재 한국불교 현장에서 절대 다수가 한문으로 의식을 하기 때문에 대세를 따르는 것이 신도들에게 더 낫다고 말하는 분도 만난다. 다들 일리가 있고 수긍이 가는 말이다. 

이러한 모든 이유를 다 수긍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말 염불, 우리말 의식(한글 의식이 아니다)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그 모든 이유들을 다 합하더라도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불교로 나아가는 일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문 독송의 유려한 음률이 더 좋다는 것은 경전을 진리의 가르침이 아니라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고요한 음악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니 우리말 의식으로 변화가 더욱 시급하다. 한문경전 독경소리를 들으며 깊은 의미를 바로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듣는 사람이 공감 못하는 내용이라면 종교로서 생명력도 미래 전망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불교가 전에 없이 다양해졌다. 하지만 타 종교, 타 분야와 비교조차 어려울 정도로 절대적으로 양이 적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공감과 소통을 하기 쉬운 언어’로 된 불교 텍스트가 많지 않아서라고 추측한다. 기술 부족은 금방 조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결함이라면 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개선해야 한다. 우리말 경전과 의식을 일상 속에서 살아나게 하는 것은 그래서 포교 근본을 개선하는 일인 것이다.

진보는 다소 소란스럽고 통일성이 적으며 거칠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꾸준히 시도해야 한다. 많은 시도와 실험 속에서 다듬어지는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가지게 될 것이다. 장엄하고 익숙하며 듣기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 그리고 깊은 깨달음까지 전해주는 우리말 염불을 말이다.

[불교신문3643호/2021년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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