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보다 괴로운 어둠은 마음
타인의 배려로 내 마음 덜어져

혜인스님
혜인스님

올해는 새 해를 못 본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헌 해를 보러 갔다. 우리 절에서 가까운 일출명소인 대동문에는 매해 1월1일마다 산성 자락을 따라 등산 인파들이 몰리는데, 올해는 입산 통제 덕에 미리 다녀온 것이다. 물론 4인 이하 사적 모임으로 해서.

못 볼 새 해가 아쉬워 혹시 우리처럼 미리 맞으러 오신 분들이 계실까 싶어 마스크를 단단히 하고 갔는데 해맞이를 하는 30여 분 동안 한 사람도 보이질 않았다. 덕분에 1월1일엔 발 디딜 틈도 없는 제일 좋은 자리에서 실컷 해를 감상했다. 새벽부터 따라 나온 강아지들이 더욱 신이 난 건 말할 것도 없고.

겨울에 해가 짧아지면 아침 공양 후에 출발해도 일출을 볼 수가 있어, 이렇게 여유 있을 때 손님이 오시면 가끔 해를 맞으러 간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특별하지 않은 날일수록 해는 더 특별해 보인다. 소리 없이 뜨는 태양을 고요하게 맞을 수 있어서다. 늘 해를 보는 나 같은 사람에겐 북적북적 정신없는 1월1일 날 뜨는 해가 제일 맛이 없다. 어차피 해는 맨날 뜨는 걸 뭐. 1월 1일이라고 북적댈 일이 뭐 있나.

사실 생각만 살짝 바꿔보면 매일 매일이 새 해다. 그리고 과학적으로는 매일 매일이 헌 해다. 우리가 태양을 도는 거지 해는 어제 있던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러니 새해라는 것도 다 보는 사람의 마음의 표현. 그런 의미에서 내 마음의 새해를 꼽아보라면 역시 처음 머리 깎던 날이었지 싶다.

유학을 가고 싶었다. 출가 직전까지 외교관 공부를 해서였을 수도, 학위에 대한 막연한 로망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출가자로서의 삶에 물들수록 시나브로 세속의 습과 막연한 환상들은 흐려지더랬다.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1월1일의 해는 특별해 보였던 것 같다.

매일 새벽마다 외는 아침종송은 할 때마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다르지만, 그중에서도 오늘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 하는 소리가 참 좋았다. 내가 어둠의 끝에서 세상을 밝히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면 사람들은 가장 어두운 곳은 지옥이 아니겠냐고 말씀들 하시는데, 내겐 아니기 때문이다.

해골에 담긴 물을 먹고 대당 유학을 과감히 포기하셨던 원효스님의 깨달음은 모두가 알다시피 ‘일체유심조.’ 동시에 유학을 떠났던 진골 출신의 의상스님을 제치고 역대 최고의 고승으로 후대에 남으실 역사적 순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선배 스님들 표현을 빌리자면 ‘절집 장판 때를 묻히면서’ 매년 새해마다 보내왔던 헌 해들을 통해 느꼈던 건 결국 어렴풋이나마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구릿물이 철철 끓는 지옥에 간들 뭐하나, 우리는 천국 같은 세상에서도 지옥처럼 살고 있는데. 지옥보다 괴로운 가장 큰 어둠은 다름 아닌 내 마음인걸.

지난해를 괴롭혀오던 코피가 멎었다. 겨우내 동지까지 고생한 우리 종무원들이 사나흘씩 휴가를 다녀오는 사이였다. 다행히 내 밥을 차려주러 오신 봉사자들 덕에 평소랑 똑같이 먹고 똑같이 기도했는데 어느새 코피가 멎은 걸까. 절을 혼자서 지켜보니, 그동안 내가 기도한다고 각자 할 일을 알아서 해주며 신경 안 쓰도록 해주신 종무원들의 배려심이 새삼 깊이 느껴지더랬다. 그 배려심도 모르고 그래도 책임은 내가져야지 하며 쓸데없이 신경 쓰던 내 어두운 마음도 함께 느껴지더랬다.

그렇게 또 마음이 덜어졌다. 종무원들의 휴가 덕에 내 마음에도 휴가가 찾아왔나 보다. 이렇게 남의 마음들로 내 마음이 덜어지는 사이 코피가 멎었나 보다. 일체유심조라야 지옥이 파하나 보다.

[불교신문3643호/2021년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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