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불교에 입문한 행자 위한 지침서
세월 흘러도 평생 곁에 두고 곱씹는 경전

양관스님
양관스님

다시 <초발심자경문> 책을 꺼내들었다. 통도사승가대학 강사 시절 초발심 강의를 할 때가 그리워진다. 행자실을 들고 나던 많은 행자들도 새삼 생각난다. 의무적으로 하는 강의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시간들이었다. 바쁜 와중에서도 공부하고 또 소임에 충실했던 행자들은 무사히 사미계를 받고 마치 연어처럼 강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피곤에 지쳐 공부는 뒷전이었던 행자들이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던 일도 생각난다. 세속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 난처해하던 예비 스님들의 모습도 꺼내든 책 속에서 고스란히 살아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을 다 삼켜버린 것 같다. 거기다 추위까지 더하니 세상은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아침이나 저녁 고요히 앉아 성현의 말씀을 한 두 줄 이라도 읽고 음미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어려운 시대지만 우리를 붙들어 주고 발심하여 수행해 나가는 가르침을 읽고 조금이라도 용기를 낼 수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지면으로 <초발심자경문>을 만나려 한다. 

<초발심자경문>을 같이 보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일상 속에서 함께 위안을 삼는 그런 하나의 작은 일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초발심자경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우리들의 공부 책으로 내려온 것은 조선 초 부터다.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자경문(自警文)’ 이 세 편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진 것이다.

‘계초심학인문’은 고려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쓴 것으로 중국에 전해오던 여러 청규의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갓 출가한 초심자들의 마음가짐과 일상의 몸가짐 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세히 밝힌 글이다. ‘발심수행장’은 신라 원효스님이 발심에 대하여 자신의 수행 체험을 기반으로 쓰여진 것이다. <자경문>은 고려말 야운(野雲)스님이 지은 것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스스로 경계해야 할 내용을 강조한 글이다. 

<초발심자경문> 공부는 처음 불교에 입문한 행자들을 위한 지침서로 사용되었다. 스님들은 <초발심자경문>을 평생 곁에 두고 읽고 곱씹어 보는 책이다. 재가불자들도 읽으면서 되새겨 봐야할 만큼 수행자의 몸과 마음의 기본적인 자세를 강조한 글이다. 강원에 있을 때이다. 어떤 도반스님은 학년이 올라감에도 계속해서 <초발심자경문>만 경상에 놓고 간경하였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 스님은 “나는 이 정도면 된다”는 말로 간단하게 답했다. 

강원에 몸담고 학인들과 어울리면서 보낸 한 때, 교과목 개편 등 여러 변화가 많을 때였다. 다양한 교과목들을 공부해야 하는 학제 개편을 보면서 몇몇 강사 스님들과 이야기했던 내용도 <초발심자경문>이었다. 교과목 다양화도 좋지만 <초발심자경문> 정도를 끊임없이 반복학습이면 더 훌륭한 수행자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다시 이 책을 가까이 두고 읽게 된 인연에 감사할 뿐이다.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과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그리고 ‘자경문(自警文)’ 이렇게 세 편의 글이 엮여져 있는 이 책은 순서대로 읽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부터 읽어나가려고 한다. 경계하는 것보다는 발심이 먼저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 필자 양관스님은…청하스님을 은사로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출가했다. 동아대 국문학과, 통도사 승가대학,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박사과정과 은해사승가대학원을 졸업했다. 동화사승가대학장, 행자교육원 교수사, 통도사 포교국장, 창녕포교당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 울산 동축사 주지이다.

[불교신문3643호/2021년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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