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욕심 위해 살고 있나요?

욕심에 따라 해탈 지옥 경험
초기불교 욕심 알아차리는 수행
대승은 서원의 기도로 승화해

등현스님
등현스님

인간의 모든 행위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욕심(rāga) 때문에 인간은 생각과 행위를 하고, 목표를 잡으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 역시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욕심이 없는 인간은 삶에 대한 의지 또한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심은 삶의 원동력이다. 그 욕심이 동기가 되어 행위와 말을 하고, 여러 가지 업도 짓고 직업을 갖게 된다. 또한 그 욕심이 인간을 노력하게 만들고 그 노력으로 삼매를 얻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 욕심의 결과가 업이며, 그 업에 의해 인간은 지옥에서 인간, 무색계의 천상까지 다양한 세계에 태어나게 된다. 

욕심은 맹목적이다. 이 맹목적인 욕심을 다스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우리는 과보에 대한 두려움을 활용하여 욕심을 다스릴 수 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욕심이 있는데, 크게는 세속적인 욕심과 출세간적인 욕심으로 나눌 수 있다. 출세간적인 욕심은 욕심이라기보다는 서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출세간의 욕심은 주로 자신을 포기하거나 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완전성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출세간적 욕심에 의거한 행위의 결과는 나와 남이 해탈의 길로 가는 것이다. 

세간적 욕심은 다시 욕계의 욕심과 색계, 무색계의 상계에 대한 욕심으로 나누어진다. 상계에 대한 욕심은 반드시 선정을 수반하고, 선정을 얻기 위해서는 오욕락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된다. 그러므로 상계의 욕심은 오욕락을 여읜 욕심이다. 그러나 선정의 미묘한 즐거움에 대한 욕심과 상념에 대한 욕심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반면에 욕계의 욕심은 오욕락을 즐기는 중생들의 욕심이다. 이 욕계의 욕심이 다시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 삼선도에 대한 욕심과 삼악도에 대한 욕심이다. 이 둘의 차이점은 이러하다. 타인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기쁨을 얻으려 하거나, 다른 생명들을 자신의 기쁨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삼악도의 욕심이다. 다른 생명의 행복을 도와주거나 타인의 오욕락 즐기는 것을 도와주는 과보로 인해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거나, 자신의 오욕락이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은 삼선도의 욕심이다. 

다른 생명의 행복과 기쁨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오욕락을 즐기는 욕심은 또한 세 가지가 있다. 아주 심한 분노를 자주자주 일으켜서 다른 생명을 고통에 빠트리거나, 남의 고통을 보면서 쾌락을 느끼는 것은 지옥의 욕심이고, 지나친 탐심으로 자신과 남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아귀의 욕심, 어리석음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고통에 빠트리며 쾌락을 얻는 것은 축생의 욕심이다.

이처럼 해탈에서 지옥까지의 모든 경험 세계는 욕심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욕심을 위해 인생을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초기불교에서는 이 욕심을 알아차리기 위해 사띠 수행을 하지만 대승에서는 서원(adhis.t.hāna)의 기도로 승화시킨다.

기원 후 대승불교가 발달하면서 여러 가지 기도의 형태가 불교에 정착되기 시작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미타경>에 언급된 내용인데,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하면 극락왕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마음과 욕망을 다스리지 않아도 아미타불만 부르면 극락왕생할 수 있는가? 아니면 마음과 욕망을 다스리면서 아미타불을 염해야 하는가?’이다. 만약 이 수행법이 석가모니불의 가르침과 일치하려면 8정도를 실천함으로써 욕심을 다스리면서 아미타불을 칭명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 가지 대상에 집중되어 있는 마음에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가 없으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바르지 욕망을 지닌 상태에서 삼매에 들게 되면 삿된 정에 빠져 정신이 다른 하급 세계의 생명에 의해 컨트롤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급하고 불의한 욕심을 유지한 상태에서도 염불만 하면 극락에 간다는 믿음은 부도덕하며 혹세무민하는 종교로 이끈다.

바른 선정을 얻기 위해서는 바른 욕구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중생의 고통을 보고 연민심을 내어 고통으로부터 구제하겠다는 바른 서원이 정정(正定)을 얻기 위해서는 무척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서원을 효율적으로 성취하기 위해서 깨달음을 얻겠다는 보리심을 발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환희지 보살의 서원이다.

[불교신문3643호/2021년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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