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외에 다른 사람도 깨달을 수 있음 보여줘

석가모니 붓다 성공적 첫 설법
귀의대상 삼보 최초로 성립된
인도불교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

사성제에 대한 여실지견 통해
무상정등정각 완전히 깨친 붓다

초전법륜 후 오비구 아라한과
제자들에 의해 깨달음 재생산

불교란 석가모니(śākyamuni) 붓다(buddha)와 그와 동일한 해탈체험을 한 제자들의 가르침이다. 여기에서 지칭하는 석가모니는 역사 속에서 현존하는 불교라는 다르마(dharma)를 정립한 붓다로서, 대승경전에서 묘사된 삼매체험과 결합되어 현현한 석가모니 붓다와는 명백히 구별해서 이해해야 한다. 

불교사에서 인도불교의 시간적 범주는 대략 기원전 6~4세기에서 13세기 후반까지 약 1800년 동안이고, 공간적으로는 인도 북동부에 흐르는 갠지스 강 주변에서 시작하여 점차로 인도 전역으로 전파되다가 쇠멸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인도에서 소멸로 불교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인도 외부로 전도사가 파견된 아쇼까 왕 이래, 줄곧 동아시아 전역에서 약 2000년 동안 주요한 신앙과 수행 체계로 전승되어 왔고, 현재에는 아시아 이외의 다른 대륙으로도 널리 전파되어 이제는 지구촌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르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초전법륜을 굴린 인도 녹야원 다메크 스투파 주변으로 기도하는 스님과 불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불교신문
부처님께서 초전법륜을 굴린 인도 녹야원 다메크 스투파 주변으로 기도하는 스님과 불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불교신문

인도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지구촌 전체로 전개되는 현재까지 불교는 다양한 지역·인종·시대 등을 두루 아우르며 영고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다양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 경험을 토대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그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생노병사’라는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함에 있어 최고의 지침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모든 불교에서 불교도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삼보(三寶)를 귀의처로 삼는다’는 맹서 혹은 서원이라 보고되고 있다. 즉 석가모니가 활동하던 당시부터 현재까지 삼보에 대한 귀의가 역사 속에서 존재한 모든 불교도들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토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귀의의 대상으로서 삼보가 최초로 성립된 인도불교의 역사적 사건은 초전법륜(初轉法輪)이다. 이 역사적 사건을 목격하고 있던 신들의 축하메시지에 따라 ‘초전법륜’이라 명명하고 있는데, 자세하게 풀이하면 ‘세간에서 어느 누구도 굴릴 수 없는(初) 정의로운 법륜(法輪)을 여법하게 굴렸다(轉)’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석가모니 붓다의 성공적인 첫 설법에 대한 이모저모를 기록한 것이 초전법륜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붓다는 자신이 체험한 깨달음의 과정이나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도 실제로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간절한 설득을 통해 교진여(kaun.d.inya) 혹은 다섯 비구들에게 법안이 열리게 하고 나아가 해탈 체험으로 이끌고 있다. 즉 단순하게 자신의 깨달음, 그 자체가 최고임을 선언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붓다는 사성제(四聖諦), 오온무아(五蘊無我)라는 가르침을 통해 제자들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도록 도왔고, 그 결과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되어 아라한과를 성취한 제자들에 의해 깨달음이 재생산된 것이다.

불교 해탈도의 측면에서 초전법륜은 깨달음이 붓다에게만 한정된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가능하다는 첫 사례이고, 붓다의 깨달음이 제자들의 해탈 체험으로 재생산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첫 설법에서 재생산의 기준이 되는 다르마는 사성제이다. 붓다가 사성제에 대한 여실지견을 통해 무상정등정각을 완전하게 깨달았다고 회고하고 있고, 그 설명을 들은 교진여가 자신도 붓다와 동일한 해탈 체험이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인해 법안(法眼)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교진여가 법안을 획득하는 순간, 이 상황을 목격하고 있던 지신(地神)에서부터 범중천(梵衆天)의 신들까지 모두 큰 소리로 “세존께서 바라나시 선인의 주처인 녹야원에서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범천이든 그 누구도 세간에서 굴릴 수 없는 정의로운 법의 수레바퀴를 여법하게 굴리셨다”고 외쳐 범천의 세계까지 울려 퍼졌고, 곧이어 일만 세계가 심하게 흔들렸고 성스러운 무량한 광명이 나타나, 붓다의 첫 설법을 축하하고 있다. 

법안을 성취한 교진여가 ‘제가 세존의 앞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라고 요청하자, 붓다는 그를 첫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오라 비구여, 내가 법은 잘 설하였다. 그대는 고통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 범행을 행하라”고 허락하며 구족계를 준다.

교진여의 구족계 수지는 불교 교단사의 첫 출발점이다. 동시에 모든 불교도들의 세 가지 보배, 즉 삼보가 성립된 첫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순간을 기준으로 소박한 형태의 삼보를 정의하자면 붓다라는 보배(佛寶)는 석가모니 붓다이고, 그의 다르마라는 보배(法寶)는 붓다의 깨달음과 비구들의 법안을 열리게 한 사성제이며, 그의 승가라는 보배(僧寶)는 구족계를 수지한 교진여 등의 다섯 비구인 것이다. 

하지만 붓다는 다섯 비구들에게 구족계를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은 탁발조차 나가지 않고 비구들이 둘 혹은 셋이 번갈아 탁발해온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쉬지 않고 그들에게 다르마를 가르친다. 이후 붓다는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반야를 통해 통찰하는 것을 주제로 한 <무아상경(無我相經)>을 설한다. 이 설법을 듣는 동안 비구들에게 저절로 마음이 번뇌(漏)들로부터 해탈되며 ‘실로 그때에 세간에 여섯 아라한이 있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초전법륜의 서술이 마무리되고 있다.

붓다의 첫 설법에 대한 기록은 초기 불전들 가운데 여러 율장과 경장에서 찾을 수 있지만 서술 구조상 율장의 내용이 경장의 것보다 더 오래된 형태로 알려져 있다. 율장에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삽입된 제3자의 내레이션이 경장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장의 건도부나 부수(附隨)에 편집된 것을 중심으로 전체적 맥락을 살펴보면 크게 수계건도, 왕사성 결집의 사례, 경증(經證)이라는 세 유형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그 중 가장 구체적 묘사는 수계건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계건도는 현존하는 여섯 광율 중에 <마하승기율>을 제외한 모든 율장에 편집되어 있으며, 거기에 서술된 초전법륜의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비교 대상을 경장, 즉 산스끄리뜨어 전승인 아함(Āgama)나 팔리어 전승인 니까야(Nikāya)의 서술로 확장할 경우, 율장과 내용에서 큰 차이가 발견되며, 아함과 니까야의 내용도 각기 율장의 일부만 편집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르다. 

초전법륜의 전체 줄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논의의 편의상 팔리어로 전승된 율장 I, <대품>의 수계건도에서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법문’이라는 이름아래, 서술된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여 설법하기로 결심한 붓다는 누가 가장 빨리 다르마에 대한 완전한 이해 혹은 해탈적 통찰을 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그 대상을 숙고한다. 먼저 알라라 깔라마, 욷다까 라마뿟따를 떠올리지만 그들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어 고행림에서 도움을 받았던 다섯 비구를 떠올려 그들을 찾아 바라나시 녹야원으로 유행을 떠난다.

도중에 사명외도(ājīvika)를 만나 짧은 대화를 주고받고, 다시 유행하여 녹야원에 도착한다. 다섯 비구들은 멀리서 붓다를 보고서 서로 모른척하자고 약속하지만 붓다가 다가오자 자신들의 약속을 잊어버린 채 곧바로 맞이하면서 준비된 자리에 앉은 붓다에게 평소처럼 ‘고따마’라는 이름과 ‘벗이여’라는 말로 인사한다. 

그러나 붓다는 그러한 호칭으로 부르지 말라고 한 다음, “여래는 아라한이고 정등각자이다. 귀를 기울여라. 불사(不死)는 발견되었다. 내가 가르치겠다. 내가 다르마를 설하겠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가르친 방식 그대로 실천한다면 오래지 않아 범행의 완성을 현세에서 스스로 현증할 것이라고 두 번, 세 번 거듭 그들을 설득한다.

그럼에도 다섯 비구들은 그와 같이 극단적 고행을 통해서도 얻지 못했던 성인에게 적합한 뛰어난 지견을 고행을 포기한 일반인이 돌아간 자가 어떻게 얻을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거부한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붓다가 ‘내가 이전에 너희들에게 이렇게까지 말한 적이 있었던가?’라고 간절하게 말하자, 그제서야 그들은 귀를 기울여 세존의 말씀을 듣고 싶다고 마음을 연다. 

②이때 붓다가 처음 설한 가르침이 유행자(遊行者)들이 접근해서는 안 되는 두 극단과 그것을 떠난 중도(中道)이다. 반드시 이것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중도가 정각이나 열반 등으로 이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붓다는 그 중도가 다름 아닌 팔정도(八正道)라고 밝히고, 팔정도가 하나의 구성요소로 배대된 사성제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③이어서 붓다는 어투를 회고적으로 바꾸어 12가지 측면으로 사성제에 대해 여실지견한 정각 체험을 통해 자신이 최고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깨달았다고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고 밝힌다.

④그 순간 다섯 비구 중에 교진여가 법안을 성취하고, 이 장면을 목격하던 신들이 성공적인 첫 설법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천상 가득 울려 퍼지게 한다. 동시에 일만 세계가 심하게 흔들리고 신들의 위력까지 넘어서는 무량한 성스러운 광명이 나타난다. 

⑤붓다의 설명을 통해 자신들도 동일한 깨달음이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한 교진여 등의 다섯 비구들이 붓다에게 순서대로 구족계를 받으며, 이후 붓다는 탁발조차 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에게 다르마를 가르친다. 

⑥붓다가 다르마를 수습한 다섯 비구들에게 <무아상경>을 설하는데, 그 때 ‘오온무아’라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반야를 통해 다섯 비구들은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된다.
 

원과스님

■ 원과스님은…

승혜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8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1999년 3월 직지사에서 청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2010년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삼선불학승가대학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불교신문3643호/2021년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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