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콩떡이었지

윤성은


우리 오 남매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옹~

비가 무섭게 쏟아지는 날이었어. 강물이 으르렁거리며 몸을 부풀리자 엄마는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어. 비를 쫄딱 맞으면서 하나하나 날랐지.

언니 오빠들보다 내 울음소리가 더 작았던 걸까. 나는 결국 마지막까지 다리 밑에 남아 있게 됐어.

불어날 대로 불어난 강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비가 떨구는 울긋불긋한 낙엽을 삼켜댔어. 나도 낙엽처럼 되지는 않을까 무서웠어. 몸이 떨려왔지.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 느껴졌어. 내가 너무 조용하게 있어서 나를 잊어버렸나? 그래서 오지 않는 걸까? 겁이 났어.

야옹야옹 울면서 엄마를 불러대는데 커다란 그림자가 내게 다가왔어.

“야옹아.”
 

삽화=용정운
삽화=용정운

태어나서 엄마가 아닌 동물을 본 건 처음이었지. 세상에 다른 동물이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어.

“야옹아, 엄마 잃어버렸어?”

나는 조금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올 거라고 말했어.

야옹~

커다란 동물은 내 말을 못 알아듣더군.

“너 여기 있으면 위험해. 언니랑 같이 가자.”

나는 싫다고 도망쳤어. 잘 걷지도 못할 때라 엉금엉금 배를 끌면서. 결국, 잡히고 말았지.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언니가 안아주자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어. 따뜻하고 포근했지.

언니는 한 손으로 우산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나를 껴안아 다리 위로 올라갔어. 빗속을 걸어가며 내게 속삭였지.

“바람 쐬러 왔는데 비가 쏟아지네. 그래도 다행이야. 널 만나서. 너…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언니 목소리가 빗소리와 어우러져 자장가처럼 기분 좋게 들렸지. 비는 세차게 내렸어. 세상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가물가물 잠이 오는데 언니가 떡집을 지나며 말했어.

“콩떡이네. 너랑 똑같이 생겼다.”

그래. 그때부터 언니는 나를 콩떡이라 불렀어. 흰 바탕에 검정, 노랑, 회색 무늬가 콩떡 같다고 콩떡이라 불렀지.

언니는 나를 가방에 넣고 버스에 탔어. 내가 답답해서 야옹야옹 울 때마다 언니가 말했지.

“쉿, 다 왔어. 조금만 참아.”

이때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봤어야 했는데…. 다 왔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어.

한참을 가다 또 다른 버스로 갈아탔어. 온종일 버스만 탔지.

날이 어두워져서야 언니가 사는 곳에 도착했어. 땅 밑의 세계였지. 내가 태어났던 곳처럼 말이야.

언니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말했어.

“반지하지만 살 만해.”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어. 다리 밑에서 나던, 비릿하고 축축한 냄새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달랐지.

언니는 맛있는 것도 많이 주고 나랑 잘 놀아줬어. 집도 따뜻했어. 눈 내리는 날 창가에 앉아 조그만 틈으로 바깥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고. 그래서 원래 가족을 잊고 살았어. 언니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지냈지.

언니가 일을 나가 종일 밖에 있다 와도 괜찮았어. 날 낳아준 엄마도 먹이를 구하러 나가면 이틀 동안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으니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니와 함께 잘 때였어. 언니 뺨에 딱 붙어서 언니를 쭉쭉 빨면 골골 노래가 절로 나왔지.

그러다 언제부턴가 등 한가운데가 가렵기 시작했어. 언니는 내 등에 털이 빠지고 있다며 병원에 데리고 다녔지. 그래도 낫지 않았어.

내 잘못이야. 언니가 주는 약을 잘 먹지 않았거든. 썩은 풀냄새가 나 구역질이 났어. 언니가 약을 목구멍에 넣어줄 때 언니를 할퀴고 물기까지 했다니까. 그래도 언니는 끝까지 나를 치료해 주려고 했어. 시간이 지날수록 가려운 부위는 점점 넓어졌지만…….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어. 평소처럼 언니의 물렁거리는 뱃살을 앞발로 꾹꾹 누르며 그르렁거리는데 언니가 말했어.

“콩떡아. 어떡하지? 돈이 없어. 더는 너를 병원에 데리고 다닐 수가 없어.”

돈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치료에 필요하다는 건 알 수 있었지.

“병원 간다고 아르바이트 시간 몇 번 바꿨더니 그만 나오래.”

언니는 가슴 불룩하게 숨을 들이쉬었어.

“후우, 너…태어난 데로 돌아갈래? 고양이 공부하면서 알게 됐어. 어쩌면 너는 엄마를 잃어버린 게 아닐 수도 있대. 어미 고양이가 사냥을 나간 걸 수도 있고, 터를 옮기려고 새끼를 한 마리씩 옮기느라 다른 새끼와 잠시 떨어져 있는 걸 수도 있대.”

언니는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말했어.

“내가 너를 납치한 걸 수도 있다는 말이야. 네 엄마한테서 너를 떨어트려 놨다고.”

내가 말했어.

납치가 뭐냐옹~ 난 지금 행복하다옹~ 야옹~

언니는 내 말을 또 못 알아듣고 중얼거렸지.

“너를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다음 날 언니는 일을 마치고 상자 하나를 갖고 집에 왔어. 내 마음에 쏙 드는 튼튼한 종이 상자였어. 바로 들어가 앉았지. 상자 안은 아늑했어. 조그만 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보는 것도 재밌었고.

언니는 웅크리고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어. 상자가 텔레비전을 가려 어떤 장면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언니 표정은 꽤 심각해 보였어. 왠지 모르게 불안했어. 나만 보면 재잘재잘 떠들던 언니가 입을 꼭 다물고 있었으니까. 난 꼬리로 몸을 감싸고 웅크리고 앉아 언니를 몰래몰래 살펴봤어. 그러다 깜빡 잠이 들어 버렸지.

얼마나 잤을까 상자가 흔들거려 잠에서 깼어. 고개를 빼고 싶었지만, 상자는 닫혀 있었어. 몸으로 전해지는 떨림이 버스 안 같았지.

내가 야옹거리자 언니가 말했어.

“쉿, 다 왔어. 조금만 참아.”

거짓말이었지.

난 계속 울어댔어. 어디 가냐고, 집에 돌아가자고.

야옹- 야옹-

어떤 아저씨가 큰소리를 냈어.

“아, 거 참! 조용히 좀 시킵시다!”

언니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내게 말했어.

“콩떡아, 괜찮아, 괜찮아….”

거짓말.

그 끔찍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 버스를 갈아타는 것 같았고 또 한참을 달렸고 언니가 나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게 느껴졌지. 상자에 난 작은 구멍으로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어.

내가 야옹야옹 목 터지게 소리 지르는데 언니가 상자를 내려놓으며 울먹였어.

“난 널 키울 능력이 안 되는 것 같아. 너… 나 따라올까 봐 상자 닫아 뒀어. 테이프도 안 붙였으니까 너라면 충분히 열 수 있을 거야. 나 간 다음에 나와 알았지?”

언니는 가짜였어.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상자를 긁어댔어.

“나 갈게. 넌…… 여기서 네 엄마 기다려. 혹시 몰라서 먹을 것도 상자에 넣어뒀어.”

나는 가지 말라고 내 옆에 있으라고 울었지.

야옹- 야옹-

“미안해, 콩떡아.”

그 말이 언니가 나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어.

언니를 쫓아가려고 악쓰며 상자를 물고 뜯고 긁었어. 기우뚱 쓰러지며 상자를 얽어둔 틈이 보였지. 나는 두꺼운 종이를 앞발로 누르고 머리로 밀어서 겨우 상자에서 나왔어.

나는 정말 다리 밑으로 돌아와 있었어. 내가 태어났던 곳으로 말이야.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 변한 건 나무뿐이었어. 알록달록 단풍 대신 연둣빛 싹이 나 있었거든. 추운 겨울을 언니와 함께 보냈던 거야. 겨우내 달콤한 꿈이 악몽으로 변했어.

나는 상자 안에 들어가 차가운 바람을 피하며 엄마를 기다렸어. 수많은 밤을 다리 밑에서 보냈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어. 언니가 챙겨준 먹이도 다 먹어 버리고 말았지.

살기 위해 길을 떠났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 난 길고양이로 태어났지만 집에서 자랐으니까.

길 위의 삶은 녹록지 않았어. 춥고 배고프고 무서웠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쓰레기통을 뒤져 그나마 먹을 만한 걸 찾아내는 거였지. 썩는 내가 역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배를 채울 수 있는 건 뭐든 먹어야만 했어.

그 와중에 싸움도 붙었어. 쓰레기에도 네 거 내 거가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지. 길 위에 그 어떤 것도 내 거는 없었어. 난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었지.

떠도는 수고양이에게 잡혀 원치 않는 짝짓기도 여러 번 했어. 그게 길 위의 삶이지.

봄꽃이 질 무렵,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새끼를 뱄어. 배는 점점 묵직해지고 나는 점점 말라 갔지. 하필 나 같은 엄마한테서 태어날 아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엄마는 어땠을까? 우리 오 남매를 가졌을 때 마냥 좋기만 했을까? 아니면 나처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걱정했을까? 복잡한 생각에 머리가 어지럽다가도 뱃속에 꼼지락거리는 아가들이 느껴질 때면 어쩐지 마음이 든든해졌어. 아가들이 나에게 알려주는 것 같았지. 더는 혼자가 아니라고. 같이 잘살아 보자고.

다시는 썩은 음식을 먹지 않기로 했어. 아가들이 나와 같은 삶을 살게 할 순 없었으니까.

길을 헤매고 다니다가 돌담 넘어 삐악거리는 병아리 소리를 듣게 됐어. 난 모두가 잠든 밤, 담을 넘기로 다짐했어. 개 짖는 소리가 들렸지만 굶어 죽거나 개한테 물려 죽거나, 죽는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독한 마음을 먹어도 담을 넘을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 난 죽지 않을 정도만 병아리를 훔쳐 먹고 버티며 목숨을 이어갔어.

하루하루 시간이 흘렀어. 내 배는 금방이라도 새끼가 나올 것처럼 묵직해졌지. 굶어온 날이 너무 많아서인지 새끼를 배서인지 모르겠지만 기운은 점점 빠져갔어.

평소 같으면 조심했을 텐데 삼일 연속 담을 넘었어. 배고픔에 판단이 흐려진 거야.

비가 무겁게 내리던 날이었지. 가슴을 졸이며 담을 넘었어. 조그만 구멍으로 닭장에 들어가는데 철컹철컹 철망이 흔들렸어. 커다란 개가 빗물을 뚝뚝 떨어트리면서 철망을 긁어대고 있었어. 덩치가 너무 커서 내가 다니는 구멍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던 것 같아. 온몸에 털이 쭈뼛 섰지. 난 철망을 사이에 두고 개와 한참을 맞섰어. 그러다 집주인이 닭장 문을 열고 들어오는 틈을 타 뛰쳐나갔지.

개는 끈질기게 나를 뒤쫓았어. 난 죽을힘을 다해 담벼락을 뛰어올라 도망쳤고.

쏟아지는 비 때문인지 개 때문인지 몸이 자꾸 떨렸어. 비가 얼마나 많이 내리던지 달리는 내내 눈앞이 새하얬지.

끼~ 이익, 쿵!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 한 대가 길 맞은편의 나무를 들이박고 서 있더군. 운전했던 아저씨가 차 문을 열고 나와 급히 내게 달려왔어. 난 너무 놀라 꼼짝할 수 없었지.

아저씨는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물었어.

“괜찮아?”

아저씨는 우산도 쓰지 않고 비를 쫄딱 맞고 있었어.

자동차가 내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지만 이렇게 말했지.

놀랐다옹~ 야옹~

아저씨가 말했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차로 돌아갔어. 아저씨의 뒷모습은 차가운 빗속에서도 푸근해 보였지.

왠지 지금이 내가 아가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아 큰 소리로 말했어.

나 엄청 깜짝 놀랐으니 책임지라옹- 야옹-

난 야옹야옹 울며 아저씨 뒤를 따라갔어. 아저씨는 차 문을 열려다가 멈춰 섰어. 그러곤 뒤돌아 나를 내려 봤지.

“너 사람 손 많이 탄 놈이구나.”

내가 답했어.

그렇다옹~ 야옹~

아저씨는 차 앞에 우두커니 서서 꼼짝도 안 했어. 난 아저씨 앞에 얌전히 앉아 생각할 시간을 줬어. 가족을 들인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

우리는 마주 보고 한참 동안 비를 맞았어. 아저씨의 젖은 어깨 위로 김이 피어오를 때까지 말이야.

“타. 우선 병원부터 가보자.”

아저씨가 마음의 준비를 마쳤는지 차 뒷문을 열어줬어.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운전만 했어. 빗방울 소리만 후드득후드득 들려왔지. 가끔 앞에 달린 조그만 거울로 나를 살펴볼 뿐이었어.

거울에 비친 아저씨 눈이 물었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렇게 나의 이야기가 시작됐지. 그러니 아저씨와는 진짜 가족이 되어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아저씨가 내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답했어.

“그래, 우리 같이 잘살아 보자.”

흔들리는 차 안은 기분 좋게 따뜻했다옹~
 


➲ 동화 당선소감 / 윤성은

“누군가의 슬픔 달래주는 글 쓰고 싶다”

윤성은
윤성은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이 집 떡볶이 맛있네, 감탄하고 있는데 당선 전화를 받았다. 입안 가득 든 떡 때문에 마음껏 좋아하지 못했다. 속으로는 많이 놀라고 기뻤다. 얼마나 놀랐는지 떡볶이가 체하고 말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12월 초순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어떤 이가 나에게 칼을 주며 잘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40센티 정도 되는 커다란 칼이었다. 어딘가 집어넣어 숨기고 싶었다. 그런데 칼집이 없었다.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가 없었다. 부탁받은 칼이라 그러지 못했다. 나는 그 묵직한 칼을 들고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를 돌아다녔다. 이 무시무시한 것을 어쩌나, 초조한 마음에 잠에서 깼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꿈에 나왔던 칼은 글을 암시했던 것 같다. 글을 쓸 때 나는 온 마음을 다한다. 혼자서 웃고 울며 글을 쓰다가 완성작을 보고 감탄한다. 나라는 사람이 이런 글도 쓸 수 있단 말이야? 글벗들도 종종 나의 글을 보고 좋다고 해준다. 하지만 온갖 공모전이란 공모전은 다 떨어지며 내 글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역시나 우리끼리만 좋은 글이었어. 글쓰기 말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내가 과연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글공부하면서 흔들린 적이 많았다. 꿈속에서 칼을 들고 다닐 때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나에게 칼을 준 분은 내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어주신 불교신문 심사위원님이 아닐까. 감사하다. 이제는 그 믿음 저버리지 않도록 글쓰기에 정진할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고 슬픔을 달래주는 글을 쓰고 싶다. 정해왕 선생님, 정이립 선생님, 어작교 글벗과 칠성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늘 지지해주는 부모님, 가끔 엄청난 영감을 안겨주는 남편 박준호, 사랑한다.
 


➲ 동화 심사평 / 방민호 서울대 교수

“사람살이 함축한 고양이 이야기에 한 표”

방민호
방민호

‘내 이름은 콩떡이었지’는 ‘길냥이’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어느 젊은 여성의 손에 거두어져 ‘콩떡’이라면 별명을 얻었다가 다시 되돌려지는 고난 끝에 새로운 삶을 얻게 되는 이야기다. 

‘풍경소리’는 심사위원의 마음을 무척 산란스럽게 했는데, 함월산사에 매달려 있는 ‘풍경’이 겪는 태풍 이야기의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느낌을 차마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도복숭아’는 영어학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아이 가빈이가 다른 아이들이 불행한 일을 당하는 사이에 며칠 동안 의식을 상실했다 깨어나는 이야기다. 삶으로의 생환을 신비스럽게 처리한 독특한 작품이다.

‘하루살이 춘몽이’는 어느 때보다 심사위원의 양식을 찌르는 작품이었다. 몇 해 심사를 해오면서 ‘불교 동화’라고 분류할 수 있을 만한 좋은 작품을 세워 올리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처음 읽고 ‘이 작품이라면 동화에 불교적인 세계인식이 잘 습합된 수작이지 않나?’하고 생각했다.

좋은 작품이 많다는 것은 확실히 신춘문예를 잔치스럽게 만들지만 심사위원은 곤혹스럽다. 결정을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결국은 ‘내 이름은 콩떡이었지’로 낙착을 본다. “우리 오남매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옹~”으로 시작하는 이 길냥이 이야기의 마지막 어구 “때라옹”이 주는 재미에 코로나 시절을 맞아 아픈 세상살이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이 배면에 숨어 작동한다.

가볍지 않고, 그런데 무겁지만도 않다.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있다. 사람 손에 거두어진 새끼 고양이의 ‘인생’ 유전이 마음을 깊게 움직이는 점이 있다. 결정은 어쩔 수 없는 절차다. 당선작을 쓴 분에게 큰 축하드린다. 

[불교신문3642호/2021년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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