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5년 신년 특집] 출판사 대표로 제2의삶 사는 유은실 아산병원 명예교수
[불기 2565년 신년 특집] 출판사 대표로 제2의삶 사는 유은실 아산병원 명예교수
  • 박인탁 기자
  • 승인 2021.01.05 09:54
  • 호수 3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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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활동을 즐기다보니 어느덧 본업이 됐네요”

40여 년 간 의술 펼친 의사
영국서 우연히 접한 책 통해
‘홀로 보기 아까워’ 번역 시작

‘고요한 소리’ 서울윤문팀서
11년째 불서 번역 자원봉사
매일 ‘명상’으로 일과 시작

경제성에 가로 막힌 좋은 원고
출판 돕고자 허원미디어 설립

맞이하는 죽음 문화 확산 위해
‘죽음’ 관련 강의·저술도 매진

누구나 아름다운 은퇴 선언에 이은 행복한 노년을 꿈꾸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만은 않다. 심지어 오랫동안 은퇴 후 삶을 준비해온 이들 마저도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덮치면서 아름다운 은퇴 선언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힘겨운 시기를 맞게 됐다40년 넘게 의사로서의 길을 걸어온 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명예교수는 지난해 8월 명예퇴직 후 행복한 제2의 삶을 위해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은퇴 후 삶을 고민하던 유 교수는 자신이 직접 번역해 출간했던 책 <은퇴 없는 삶을 위한 전략>에서 영감을 얻었다. “본업에 버금가는 노력을 들여 취미활동을 하다보면 그것이 곧 본업이 된다는 문장처럼 유 교수가 그동안 공들였던 취미인 출판과 번역업무가 제2의 삶에서 본업이 된 것이다. 출판과 인문학강좌를 위한 장으로 마련한 전통 한옥 북성재에서 128일 은퇴 후 행복한 노년을 설계하고 있는 유 교수를 만났다.

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명예교수는 허원미디어 대표로서 행복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명예교수는 허원미디어 대표로서 행복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유은실 명예교수에게 번역일은 머리를 식히는 취미활동에서 시작됐다. 20여 년 전 영국에 놀러갔다가 들른 서점에서 <To the ends of the earth>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됐다. 그 책에 흠뻑 빼져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유 교수는 당시 번역에 문외한이었다. 용기를 내고선 수소문을 거쳐 해외 출판사로부터 한글로 번역 출간해도 된다는 허락을 얻어냈다. 이를 통해 1996년 첫 번역서인 <여의사의 역사>가 출간됐다.

이듬해 선배 의사의 제안으로 <병리학의 역사>를 번역한데 이어 <우아한 노년> <천재들의 뇌> <삶이 끝나갈 때 준비해야 할 것들> 10여 권을 잇따라 번역하며 의사이자 번역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유 교수는 번역가에서 더 나아가 2005년 도서출판 허원미디어를 설립했다. 지인이던 한글전문가인 김명호 한의사가 훈민정음의 원리를 음양오행으로 체계적으로 풀어냈지만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인해 출판사를 전전하던 열악한 출판시장의 현실을 목격하고는 출판사를 직접 차리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그를 계기로 유 교수 또한 한글 창제원리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한글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한글, 자연의 모든 소리를 담는 글자>를 공저했으며, 한글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허원미디어에서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으로 순차적으로 번역해 출판했다. 허원미디어는 그동안 80권의 책을 허원북스를 통해 출판했으며, 2012년 마련한 전통 한옥 북성재에서 허원살롱을 통해 각종 강좌와 모임 등을 이어가고 있다.

“2005년 프랑크루르트 도서전에서 김명호 한의사가 특강을 펼쳤는데 외국인들이 한글에 관심을 갖고 한글로 직접 자기 이름까지 쓰는 것을 지켜보며 놀라웠죠. 게다가 김명호 한의사가 저서 출판을 위해 출판사를 전전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괜찮은 책을 집필해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출판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고 번역에 이어 출판도 재미있을 것 같아 제 호인 허원(虛圓)을 따서 허원미디어를 200512월 설립했어요.”

유 교수가 불교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 불교계 인사가 2009년 추진한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유 교수는 트레킹 기간 동안 룸메이트였던 한 교수로부터 번역일을 해봤으니, 외국의 좋은 책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는 번역 자원봉사 업무를 함께 하자고 제안 받았다. 바쁜 일정으로 인해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 인사동 사무실에서 함께 모여 글을 읽고 윤문하는 정기모임에는 자주 참여할 수 없다는 조건을 달고 번역 업무에 뛰어들었다.

그 자원봉사가 바로 사단법인 고요한 소리서울 윤문팀의 번역 업무이며, 함께 하자고 제안했던 그 교수가 바로 이후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와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던 변영섭 현 고요한 소리 공동대표다.

우연한 인연으로 시작해 11년째 고요한 소리의 번역 자원봉사를 이어가고 있네요. 또한 수요일 저녁마다 책을 함께 읽으며 서로 묻고 답하며 공부할 뿐만 아니라 명상전문가의 지도를 통해 함께 명상도 하는 독서모임을 이어가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현재는 으로 비대면 모임을 이어가고 있어요.”

사단법인 고요한 소리1987년 근본불교 빠알리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역경사업을 발원하면서 출발했다. 고요한 소리 창립자이자 회주인 활성스님은 쉬운 우리말로 잘 번역해 값 싼 책을 내자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이에 공감한 각계 인사로 이뤄진 자원봉사자들의 숨은 노력으로 30여 년 동안 소리’ ‘법륜’ ‘보리수잎’ ‘금주의 말씀시리즈를 통해 100권 남짓한 책을 발간해오고 있다.

이와 더불어 유 교수는 고요한 소리가 연 중도포럼에서 좌장을 맡고 있는 미산스님(서울 상도선원장)이 새롭게 고안한 하트 스마일 명상로 하루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23일 코스인 하트 스마일 명상 집중수행 프로그램을 다녀온 뒤 매일 아침마다 명상을 통해 몸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유 교수는 의사이자 아마추어 한글전문가로서 신체구조, 특히 발성기관에 대한 스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고요한 소리 독서모임을 통해 명상을 꾸준하게 하고는 있긴 하지만 제가 근기가 약해 쉽지가 않네요. 201912월 서울아산병원에서 미산스님 초청 명상특강을 열었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이후 환자와 의료진을 위한 명상프로그램을 준비하다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됐는데 조속히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명상프로그램도 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유 교수는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죽음에 대해 공론화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의사들, 죽음을 말하다>를 공동집필하기도 한 유 교수는 죽음 관련 교육은 어릴 때 할수록 더 효과가 크다며 죽음관련 수업이 정식 정규과목으로 편성될 수 있도록 매진하고 있다.

유 교수의 노력으로 2018년부터 울산대 의과대학에서는 대학원 과정에 공통선택과목으로 의료인의 삶과 죽음 이해라는 과목을 개설한데 이어 2021년부터는 학부과정인 예과본과과정에도 죽음학관련 과목을 운영하게 됐다. 아울러 울산대 교양학부에도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봐야할까라는 과목을 개설해 강의하고 있다. 특히 유 교수는 울산대 의대 뿐만 아니라 전국 의과대학 커리큘럼에 죽음학 강의를 편성할 수 있도록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울러 고등학교 때부터 윤리나 사회 과목에 죽음 관련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과 지혜를 모아 나간다는 구상이다.

우리 모두 죽음을 두려워 하지만 서로 터부시 하고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아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교육을 조기에 함으로써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준비해야지요. 제 전공인 병리학 강의는 학교에서 제 후배와 제자들이 할 수 있어, 저는 병리학 강의 대신 죽음학 강의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죽음학 강의를 잘 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당연히 그 자리를 양보할 것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교육부에서 죽음학을 정식 교육과정으로 편성하는 게 저의 장기 목표인 만큼 부단히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병원에서 의사 가운 입은 유은실 교수 모습.
병원에서 의사 가운 입은 유은실 교수 모습.

유은실 명예교수는…

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명예교수는 1976년 서울대 의과대학에 입학한 뒤 학··박사 학위를 잇따라 취득했다. 20083월부터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로 활약하다가 20208월 명예퇴직 한 뒤 명예교수로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퇴직 후에는 출판사 허원미디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출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번역 작업과 함께 저서 집필에 매진하고 있다. 서울 서촌에 한옥 북성재를 마련해 출간과 인문학강좌의 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활성스님이 운영하고 있는 사단법인 고요한 소리에서 2009년부터 번역 작업을 돕고 있으며 미산스님이 계발한 하트 스마일 명상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하고 있는 불자다.

[불교신문3642호/2021년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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