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융합 무한질주에도 한가지 의문, 당신의 발심!”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거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을 향해 똑바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천국을 등진 채 반대로 가고 있었다.”
-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중에서

 

보일스님
보일스님

➲ 인간인가, 기계인가 

인간의 신체를 기술로 대체할 수 있을까. 기계로 대체된 인간은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기계인가. 기계로 완전히 대체한 인체는 기계로 봐야 하나, 인간으로 봐야 하나. 지난 2009년, 안소니 아탈라(Anthony Atala)교수는 3D 프린터 기술을 이용해 인공신장을 만들어 냈고, 환자에게 이식수술에 성공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는 단지, 인공지능 기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생명공학 기술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급기야는 인간 유전자 편집 기술까지 완성했다. 인간의 유전적 질병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유전자 가위 기술을 통해 비정상적인 유전자를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퍼’ 기술은 비정상 유전자를 잘라내고 정상 유전자를 붙여 넣는 방식이다. 

이제 DNA 편집을 통한 인간 개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어제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인간’이 오늘의 ‘인간’이 아니다. 그 인간을 미래에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그 이전에 이 기술을 계속 개발해야 할 것인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딥러닝을 장착한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만을 주목하면서 우려하던 인간에게 더욱 어렵고 복잡한 화두가 던져진 셈이다. 

이 ‘크리스퍼’ 기술에서 오류가 발생할 확률은 4조4000만분의 1이라고 한다. 인간 유전체의 염기쌍이 약 30억 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크리스퍼가 잘못 절단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기술이 놀라운 것은 정확성뿐만이 아니다. 시간과 비용도 엄청난 수준으로 절감했다. 문제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이것을 조절하거나 통제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가위질하는 상황이다. 

생명 조작 기술이라고도 표현되는 이 유전자 가위기술이 거대한 폭력이 되어 인류를 파멸로 이끌 것인지 아니면 병고에 시달리는 중생들의 보살이 될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과연 이들은 고유한 의미의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볼 수 없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그리고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생명 조작 기술들이 범죄가 아닌 과학이 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다양한 의문과 우려 속에 기술은 이미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고 있다. 사실상 과학은 무한 질주하는 폭주 기관차와 다를 바 없다. 다시금 질문을 반복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가 아니라 ‘과연 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시점이다. 

➲ 초연결의 시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잡아함경> 제30권) 우리는 붓다가 설한 가르침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 디지털 혁명 시대의 인터넷은 수많은 컴퓨터가 연결된 거대한 그물망과도 같았다. 우리가 네트워크를 떠올릴 때는 으레 컴퓨터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사물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컴퓨터들끼리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 즉,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핸드폰 등 할 것 없이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디지털화된 자신의 정보들을 공유하게 되었다. 사물들끼리 디지털을 통해 자신들의 정보를 공유하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간에 사람이 개입되지 않고서도 말이다. 결국 사람들끼리는 물론, 사람과 사물, 그리고 사물과 사물 간에 경계를 초월하는 ‘초연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표적 특징으로 거론되는 것 중의 하나가 사물인터넷(Iot)이다. 지금까지는 그저 텔레비전이나 가전제품들의 연결을 상상했다면, 앞으로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만물이 연결된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사람들 각자가 가진 스마트폰과 같은 휴대용기기가 중심이 되고 내 주변의 모든 사물들은 물론 멀리 있는 것들까지 마치 태양 주위를 도는 무수한 행성들처럼 서로 연결되면서 무수한 디지털 정보를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기능하는 상태이다. 

이처럼 사물인터넷 기술은 먼 미래의 기술도 아니고, 또 다른 물리적 기계를 새롭게 사야 구현되는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누구나 핸드폰을 통해 그 기술의 중심에 서 있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디지털 세계에 물들어 가고 그 자신조차도 디지털화 되는 ‘인간 인터넷’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 데이터 위조나 변조를 막기 위한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뿐만 아니라, 초연결, 초고속, 최실시간 영상처리서비스인 5G 기술이 상용화되고 있다. 5G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혈관과 같고 일상에서는 고속도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처럼 5G 기술은 마치 인드라망처럼 날줄 씨줄로 촘촘하게 세상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 기계와 기계 또는 사람과 기계 심지어 현실과 가상 세계가 네트워크로 묶어 낸다. 이제 시간과 거리의 물리적 제약 등을 뛰어넘어 서로를 연결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연결, 초융합, 초고속의 4차 산업혁명 기술은 인간의 삶과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사실상 기술은 무한 질주하는 폭주 기관차와 다를 바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가 아니라 ‘과연 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시점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연결, 초융합, 초고속의 4차 산업혁명 기술은 인간의 삶과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사실상 기술은 무한 질주하는 폭주 기관차와 다를 바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가 아니라 ‘과연 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시점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데이터, 데이터, 데이터 

데이터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무슨 소리냐고? 현재 전 세계적인 대유행 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야기이다. 전 세계의 생명공학 회사들은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정확도가 높은 진단키트와 백신,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었을까. 

바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덕분이다. 이 기업들은 인공지능 기반 ‘빅데이터’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만약 빅데이터 시스템이 없었다면, 진단 키트를 생산하는데만도 2~3개월 이상은 걸렸을 것이다. 방대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가지고 테스트를 설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기에 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다. 코로나19의 샘플 없이도 사전에 공개된 유전자 데이터 정보만을 사용하여 테스트를 설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빅데이터’가 더 이상의 피해확산을 막아낸 것이다. 

사실 제4차 산업혁명을 지금까지 소개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혁신기술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이 ‘데이터’였다. 그 만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치 인체에서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액처럼 혁신기술을 운용하고 작동하게 만드는 핵심 역량은 이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마이크로 소프트, 테슬라,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 등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데이터 기업이라는 점이다. 이 회사들은 전 세계를 고객으로 삼아 데이터 사업을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데이터 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기업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고객의 모든 관심을 데이터화해서 통계를 내고 미래를 예측한다.

지금까지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연재를 하면서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라는 두 영역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이 ‘데이터’이다. 데이터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데이터에 대한 지나친 맹신이 새로운 미신을 만들어 낼 위험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과연 미래에는 과학기술로 인해 미신이 사라질까. 모를 일이다. 과학기술 자체가 미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에필로그

동트기 전 이른 새벽, 법당 종두(鐘頭) 스님이 예불을 위해 정성껏 불단에 촛불을 켠다. 바람에 혹여나 꺼뜨릴까, 이지러지는 촛불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감싸 쥐고 한참을 서 있다. 새벽의 적막 속에서 차가운 법당, 절하는 스님의 가사가 좌복에 쓸리는 소리만이 사각거린다. 이 모든 광경이 경건하게 느껴진다. 

데이터를 신봉하는 ‘데이터 교도’들은 말한다.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며, 그 인간의 상상력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산물’이라고. 그렇다면, 내 마음속 구도를 향한 발심도 알고리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인간이다. 같은 데이터라도 그 수치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개인적 편견이 개입될 여지는 여전히 크다. 그렇다면, 그 의사결정과 예측은 왜곡된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본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데이터를 믿을 것인가. 신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믿을 것인가. 결국 인간이다. 인간 자체가 데이터의 흐름 속에 있는 하나의 칩이라고 하든, 알고리즘이라고 하든 상관없다. 그 데이터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새로운 의지를 발휘하는 것은 인간이다. 아무리 객관적인 숫자라고 할지라도 그 수치는 맥락 속에서 얼마든지 달리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떠오르는 의문 한 가지. 그 마음, 그 발심(發心)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제 60여 회에 걸친 연재를 마무리할까 한다. 4차 산업혁명과 불교를 소개하는 내용만으로도 거의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조고각하(照顧脚下)하는 마음으로 돌아보니, 글의 논리는 허술했고, 상상력은 빈약했다. 무엇보다도 재미없는 얘기를 어지간히도 많이 늘어놓았다. 부끄럽다. 그런데도 이 어설픈 산승의 이야기를 자비의 마음으로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와 용서를 구한다. 혹여 인연이 된다면, 인공지능에 대한 보다 깊은 종교, 철학, 예술 이야기는 후일을 기약해 본다. 

[불교신문3641호/2020년12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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