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초월한 물아양망(物我兩忘) 세계, 그 열창의 순간들…

문광스님
문광스님

➲ ‘가선(歌仙)’ 송창식을 만나다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를 언급할 때 가왕(歌王) 조용필, 가황(歌皇) 나훈아와 같이 별칭을 붙여주는 경우가 있다. 이번 한국학 에세이의 주인공인 송창식 역시 ‘기인’이나 ‘도인’, ‘밤창식’, ‘씨크릿 창식’, ‘음유시인’ 등과 같은 다양한 별명들로 불리고 있지만 나는 그를 특별히 ‘가선(歌仙) 송창식’이라는 호칭으로 불러보고 싶다.

2003년 처음 이분을 만난 이래로 나는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쉼 없는 연습, 그리고 그 어떤 고승 못지않은 수련과 삶의 철학에서 깊이 감화된 바 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1975년에 가수왕 타이틀을 한 번 차지한 이후로 1등을 유지하거나 최고의 자리를 지키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곁에서 그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공감했을 것이다. 

그는 마치 ‘노래하는 신선’과 같이 세간사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음악의 세계에서 소요(逍遙遊)하며 노닐고 있을 뿐이다. 2020년 연말, 오랜만에 그를 만나 그간의 안부와 그동안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 뜻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져 보았다.

➲ 19세에 노숙할 때 호흡명상

송창식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 가운데 하나는 쎄시봉에 가서 처음 노래를 하기 전에 가정 형편이 곤란하여 19세부터 3년간 노숙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노숙을 하며 추운 겨울을 두 번 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호흡명상을 터득했다고 한다. 열을 빼앗기지 않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가늘고 길게 숨을 쉬면서 추운 겨울밤을 지새웠는데, 건물 계단에서 웅크리고 앉아 선잠을 자며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과정에서 깊은 참선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성성적적(惺惺寂寂)’의 선정상태로 몰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먹는 것도 부족하여 호흡 명상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지 않았더라면 크게 몸이 상할 뻔했노라고 회고하면서 “그러니까 세상의 나쁜 일은 전부 좋은 일인 거예요”라는 또 하나의 명언을 던져준다. 
 

미사리 라이브 카페 ‘쏭아’에서 수십 년간 한결같이 무대에 올라 열창하고 있는 송창식의 모습.
미사리 라이브 카페 ‘쏭아’에서 수십 년간 한결같이 무대에 올라 열창하고 있는 송창식의 모습.

➲ ‌“노래할 때가 나에게는 명상하는 시간”

이때부터 시작된 그의 명상수련은 노래할 때에 그 힘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평생토록 유지되어 왔다. 음악에만 오롯이 심취한 무아지경(無我之境)의 몰입과 각성상태는 듣고 있는 모든 대중들의 단전과 심금을 울리면서 그 노래가 담고 있는 가사의 의미와 기운을 전달하여 함께 공감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한다. 

하남 미사리에서 최초로 문을 연 라이브 카페인 ‘쏭아’에서 20여 년 동안 한결같이 라이브 공연을 이어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노래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명상하는 시간이에요.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고 나면 몸이 풀리고 기운이 더 좋아져요”라는 말에서 그토록 매일 연습하는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음악을 통해서 정(定)과 혜(慧)의 세계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기타연습과 노래연습을 수십 년째 이어 오고 있는 그는 “스님들이 수도하는데 끝이 없는 것처럼 몸이 있는 한 죽는 순간까지 연습해야 돼요”라는 말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환한 웃음과 함께 던져 준다.

시·공간이 끊어진 물아양망(物我兩忘)의 열창의 순간들은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을 쌓아 만들어낸 수련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늘 마무리 곡으로 선택되는 노래 ‘고래사냥’의 가사 “신화처럼 숨을 쉬는”이라는 대목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것은 평생을 정진하듯 노래해온 가선(歌仙) 송창식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 ‌‘우리는 연인(緣人)’, 가사에 녹아든 불교

송창식의 음악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은 가사에 담겨진 한국어의 아름다운 의미들이다. “빛이 없는 어둠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로도 느낄 수 있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 수 있는, 우리는 연인”이라는 가사를 담은 노래 ‘우리는’에서 ‘연인’은 원래 ‘연인(戀人)’이 아니라 ‘연인(緣人)’이라고 한다.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맺고 있는 소중한 ‘인연’을 노래한 것이란다. 

우리는 수많은 인연의 인드라망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그 인연의 귀중함을 가끔 잊고 살기 마련이다. 이처럼 그의 노래 가운데에는 ‘선운사’, ‘토함산’에서처럼 인간의 본성과 불교의 진여를 함께 녹여낸 곡들도 많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노랫말 속에는 많은 함축과 상징들이 압축되어 있다.

➲ 옷, 집, 음악에 담겨 있는 한국사랑

다음 질문은 그의 독특한 개량한복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량한복을 만들어 입은 인물이다. 1979년 말부터 3년에 걸쳐 직접 디자인하여 만든 옷이 지금 그가 입고 있는 개량한복이다. 지금 인사동 같은 개량한복집에서 파는 옷과도 완전히 다른 형태의 옷이라고 한다.

처음 옷의 본을 따서 여러 양장점에 주어 보았지만 서양 의복에 익숙한 사람들은 좀처럼 제대로 이 옷을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금은 80세가 훌쩍 넘은 한 머리 좋은 여성분이 이 옷을 제대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송창식의 의복은 40년 가까이 한 분의 양장점 할머니가 지금껏 만들어 주고 계신 것이었다. 

왜 한복을 개량해서 만들어 입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매우 자세하게 동서양의 의복의 차이를 설명해 준다. 조각조각을 붙여서 만드는 것이 기본인 서양의 복식과 통으로 천을 몸에 감은 뒤에 잘라가며 만드는 한복의 차이에서 한국인은 한국 특유의 편안한 의복을 입을 때 빛을 발한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야기는 직접 설계한 집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5년 동안 건축설계를 공부해서 직접 집을 지은 인물이다. 여기에서도 서양 건축술에 익숙해 있는 한국 건축의 문제점이 지적된다.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모든 음식재료들이 준비되는 우리네 집과는 달리 서구식 주방은 모든 음식준비가 끝난 것을 간단히 조리만 해 먹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미 그 용도가 아주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는데 기존의 건축가들은 이를 위해서 별도의 공간을 만들 생각밖에 못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접 건축설계를 공부해서 정식으로 본인의 집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서구의 것을 그대로 이식해서 억지로 한국 고유의 것들에 접목시켜서 생겨난 부작용은 그의 전공인 음악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서양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12음계의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서 공부해왔던 그는 어느 날 미군부대에서 노래하는 아마추어 외국인의 음악과 한국의 전주대사습놀이에 출전한 국악청년들의 음악을 보면서 커다란 깨달음에 도달했다고 한다.

“내가 그동안 잘한다고 생각해 왔던 음악이 알고 봤더니 보통 서구인들보다도 못하고 한국인 고유의 음악보다도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기존에 공부해 왔던 음악을 모두 버리고 한국의 전통적인 음악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새롭게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왔다고 한다.

그는 진정한 한국학의 전도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과 머무르는 집과 노래 부르는 음악 등등, 그 모든 분야에서 우리 한국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외부에서 이식된 것들을 수용하기에 바빴던 것이 우리의 20세기 역사였음을 냉철하게 분석해 주었다. ‘가나다라’라는 노래를 만들어서 재일교포의 한국어 발음 연습용으로 보급하고 싶었다는 말에서 깊은 한국사랑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 ‌입선(立禪)에서 시작된 만일(萬日) 수련

그는 방송에서 만일(萬日)을 목표로 수련한다는 도는 운동을 종종 보여준 적이 있다. 매일 일어나자마자 2시간씩 도는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은 서서 참선을 하는 입선(立禪)에서 비롯된 것이다. 2024년이면 목표인 만일이 되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련하기 위해서 미국과 같이 날짜선이 변경되는 외국에는 출국조차 하지 않고 지내왔다고 한다. 

만일이 지나고 나면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더니 “그건 그때가 되어봐야 알죠. 어차피 운동은 해야 되는 거니까”라는 웃음 묻은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그동안 ‘연공최귀(連功最貴)’라는 말을 만들어 불자들에게 하루도 빠지지 말고 수행하라고 지도해왔다. 그러면서 나보다 더 연공을 오래해 온 분들이 두려울 뿐이라고 말해왔다. 내가 송창식이라는 분을 존경해 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듯 우리 한국 땅에는 숨어 있는 수행자들이 조용히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불교신문3639호/2020년12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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