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회,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기리는 ‘국민축제’
연등회,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기리는 ‘국민축제’
  • 장영섭 기자
  • 승인 2020.12.18 13:14
  • 호수 36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연등회’의 의미와 역사


부처님 당시 여인 ‘난타’
등 공양한 ‘빈자일등’ 유래
9세기 통일신라시대 시작
고려시대 국가의례로 정착

부처님오신날 지정 이후
연등회의 위상도 높아져
“국적, 인종, 종교 초월
문화적 다양성 보여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연등회는 1200여 년 동안 우리 국민과 함께해 왔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연등회는 1200여 년 동안 우리 국민과 함께해 왔다.

해마다 5월 무렵이면 전국의 밤하늘은 수십 만 개의 연등으로 물든다. 연등의 환한 불빛은 부처님의 빛나는 지혜와 따스한 자비를 상징한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열리는 연등회(燃燈會)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스스로 본받고 세상에 널리 펼치자는 뜻을 갖고 있다.

연등회의 유래는 경전 <현우경(賢愚經)>에 나온다. 인도에서 부처님이 살던 당시에 난타(難陀)라는 이름의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부처님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등불을 공양하고 싶었으나 너무 가난했다. 하루 종일 구걸을 해서 간신히 얻은 동전 한 닢으로 등잔과 기름을 샀다. 난타의 등불은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초라한 등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사람들의 등불은 하나 둘 꺼져 가는데 홀로 영롱히 살아있는 기적을 보여줬다. 부처님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는 진정성이었다.

부처님은 사해(四海)의 바닷물을 모두 끌어와 붓거나 크나큰 태풍을 몰아온다 하여도 그 등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재산과 정성을 진실하게 다 바친 것이기 때문이라며 난타를 진심으로 격려했다. 이에 감동한 난타는 비구니 스님이 되었다. 이른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일화로, 연등의 기원으로 전해진다. 한편 불교의 상징이 연꽃인 까닭에 연등의 (연꽃 연)’이라 오해하기도 하는데, ‘(불태울 연)’을 쓴다.

난타의 마담에서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이 생존하던 때에 인도에는 이미 등()과 관련한 의식이 있었다는 점이다. 아울러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시기는 공식적으로 기원전 2년으로 본다. 중국의 연등회는 2세기부터 개최됐다. 원래는 정월보름에 열려 상원연등회(上元燃燈會)’라고 불렸다. ()나라 때부터 나라의 정규행사로 자리했다. 일본에서는 당나라의 의례를 모델로 서기 651년에 첫 연등회를 열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이 한데 모여 연등을 켠지는 1200년을 헤아린다. 지금은 소실됐으나 9층 목탑으로 유명한 황룡사는 삼국시대 최대 건축물로 짐작된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경문왕 6(866) 정월 보름과 진성여왕 4(890) 정월 보름에 임금이 경주 황룡사로 행차해 연등을 간등(看燈)했다고 적혔다. 역사적 기록에 근거하면 서기 866년부터 연등회가 열렸다고 유추할 수 있다.

연등회가 국가 차원의 의례로 뿌리를 내린 때는 고려시대부터다. 독실한 불자였던 태조 왕건은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 등의 중요한 행사를 소홀히 다루지 말라고 유언했다(훈요10). 아예 등을 만들고 잔치를 준비하는 국가기관까지 설치했다(연등도감). 고려인들은 부처님의 탄신일을 28일로 믿었다.

<삼국유사>에는 음력 28일부터 열반일인 15일까지 서라벌(경주) 사람들이 흥륜사에서 전탑(塼塔, 벽돌을 쌓아 만든 탑)을 도는 탑돌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의 출가열반절 기간이 그들에겐 봉축 기간이었던 셈이다.

아버지 최충헌의 뒤를 이어 무신정권을 이끈 최우가 부처님의 탄신일을 48일로 옮기면서 연등회도 지금처럼 화창한 봄날에 열리게 됐다. 임금의 주도 하에 열리는 연등회는 단순한 불교행사가 아니라 국민총화의 자리였다.

1975년 부처님오신날이 국가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연등회도 크게 확대됐다. 예전에는 부처님오신날 축하법회를 마친 뒤 각자의 소원을 적은 연등을 들고 사찰 주변을 도는 정도였다.

공휴일 제정 이듬해인 1976년부터 불자들은 여의도광장에서 종로 조계사까지 9km의 차도를 당당히 활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길어서 행진을 마칠 즈음이면 다들 녹초가 됐다. 마지막 대열이 도착할 쯤엔 자정이 넘기도 했다.

1996년 동대문운동장으로 출발장소를 바꿨다. 여기가 철거되면서 2013년 종립학교인 동국대학교 운동장으로 변경됐다. 동대문-탑골공원-종각-조계사까지 손에 손에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연등을 들고 함께 걷는다. 전체 길이는 5km 정도이며 저녁 9시 반 무렵이면 다들 조계사에 모인다. 전체 인원은 20만을 말하기도 하고 30만을 말하기도 한다. 분명한 건 국민축제라고 말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점이다. ‘외국인 반 내국인 반이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가 연등회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핵심 역시 초()종교성과 보편성에 있다. “연등회가 원래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종교적인 의식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적이나 인종, 종교, 장애의 경계를 넘어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준다사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지정 배경을 설명했다. 크고 작은 연등의 불빛이 반짝이고 번쩍이는 아래서는, 이념이나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가 아름답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