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불국선원 경자년 동안거 결제 현장

불국사 불국선원
경자년 동안거 결제 하루 전인 11월28일, 선원에 양해를 구해 잠시 불국선원 안을 엿볼 수 있었다. 선원 중앙의 문수보살 좌우로 여섯개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중국식 선방을 본 떠 만들었다고 한다. 

불국사 불국선원 경자년 동안거 결제 하루 전날. 용상방(龍象榜)을 짜기 위해 선원 대방으로 대중이 모였다. 올해 방부를 들인 선객은 모두 28. 두문불출 3개월의 수행 정진 기간 동안 객을 대접할 지객, 방 온도를 책임질 화대, 목욕물을 조절할 욕두 등 군더더기 없는 소임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주어졌다.

혹시 소임이 불리지 않은 분 없습니까.” 대답을 대신한 침묵이 이어졌다. 이내 선원장 종우스님이 불국선원의 청규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차담은 사시 공양 후에 합니다. 오후 불식은 없습니다. 발우 공양은 정해진 날에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경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친숙한 불국사이지만 일주문을 지나 청운교와 백운교, 무설전 너머로 시선을 옮기면 낯선 영역에 이른다.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운 곳. '일반인 출입금지팻말이 걸린 사립문을 지나 이르는 부처님의 나라 불국(佛國), 피안의 세계를 향해 걷는 성성한 납자들의 구역이다.

선원장 종우스님 말대로라면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불국선원이지만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면면이 자리한 지 오래다. 불국선원 안거엔 매번 28명이 방부를 들이는데 더함도 덜함도 없이 늘 수가 딱 맞다. 수년 전만 해도 선착순으로 방부를 받았는데 해제도 전에 입방 원서가 쌓이기 시작했다. 

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법랍 상관없이 입방을 허용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까닭이다. 선원을 찾아오는 이를 내칠 순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가방부를 들이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불국선원에선 물리적으로 수용가능 한 인원만 들이기 시작한 셈이다.

세세한 청규를 따로 마련하지 않는 것도 불국선원만의 규칙이다. 오전3시부터 오후10시까지. 밥 먹고 차담과 울력, 잠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 8시간 동안 집중 수행을 한다. 일과는 정해져 있지만 그 외의 것은 자유 수행의 형식을 취한다.

오후 불식, 묵언 수행은 따로 정한 바 없고 좌차(座次)에 따라 자리를 나누지도 않는다. 수행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되도록 청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정진할 수 있도록 한 선원장 스님 뜻이다.
 

불국사 불국선원
불국사 불국선원 가는 길.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금단의 구역이다.
불국사 불국선원
결제 하루 전날, 대중 스님들이 모두 모여 용상방 소임을 정하고 있다.
불국사 불국선원
대중 스님들에게 양해를 구해 뒷 모습이나마 촬영할 수 있었다.
불국사 불국선원
앞으로 3개월 간 기둥 사이 좌복을 두고 참선 정진한다.
불국사 불국선원
불국사 불국선원장 종우스님.

불국사 선원장을 지낸 지 올해로 딱 25. 1987년 불국선원에 들어와 1995년부터 선원장을 맡고 있는 주지 종우스님은 외호 대중인 동시에 구참 수좌다. 안거에 든 지 햇수로만 35년째. 위아래를 따지고 숫자를 묻는 얄팍한 질문에 말을 아끼던 스님은 몰입이라는 한마디 말로 답했다.

범부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을 무엇인가. 바로 몰입이다. 선의 경계에 들어가는 것, 그 순간 그 경지에 완전히 몰입해 빠져드는 것만이 진리에 일찍이 가까워지는 길이다. 좌차도 청규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오로지 공부, 오로지 삼매다. 그것이 범부 중생의 삶에서 헤매지 않고 부처의 길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잘하면 방금 출가한 사람도 진리에 이를 수 있고, 잘못하면 10, 20, 50년을 자빠져 있어도 소용없는 것이 공부다.”

출가 후 처음 입방을 하던 때나 30년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마주한 결제 때나 매번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을 새긴다는 종우스님이다.

코로나로 인한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도 불국선원 동안거는 달라진 것 없었다. 동안거 결제날, 토함산 매서운 바람과 호젓한 기운 속에서도 무설전에만 100여 명이 모였다. 용맹 정진에 나선 납자를 제접하는 불국사 정례 법회, 불국사 회주 성타스님, 불국사박물관장 종상스님, 주지 종우스님, 부주지 정문스님 등 종단 굵직굵직한 소임을 맡고 있는 어른 스님들이 빠짐없이 자리했다.

마스크를 눌러 쓰고 발열 체크와 손 소독에 임하는 스님들 뒤로 수십명 재가 대중이 먼발치에 자리했다. 예년처럼 조실 스님 법문을 함께 들었다.

한국 불교사에 있어 수행자의 사표이자 지남(指南)이 됐던 월산스님(1913~1997)이 살아 생전 남긴 육성 법문이었다. 끊임없는 공부를 강조했던 월산스님은 불국사 주지로 있으며 불국선원을 짓고 애착으로 가꿨다. 

일생을 돌고 돌았으나, 한 걸음도 옮긴 바 없나니, 본래 그 자리는 하늘땅보다 먼저이니라(회회일생 미이일보 본래기위 천지이전).”  스님이 입적 3일 전 불국선원에서 남긴 임종게다.

선승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고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오로지 '공부' 오로지 '삼매'다. 여전히 범부의 삶에서 헤매고 있다면 부지런히 걷는 수밖에 없다. 부처님의 나라, 불국을 향해서.
 

불국사 불국선원
동안거 결제날, 코로나 방역 지침에 따라 발열체크에 응하고 있는 스님들.
불국사 불국선원
불국사 회주 성타스님. 조계종 원로의원이기도 하다.
불국사 불국선원
불국사박물관장 종상스님.
불국사 불국선원
불국선원장 종우스님이 결제 대중에게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불국사 불국선원
경자년 동안거 결제 법회. 불국사 큰 어른 스님들이 모두 모였다.

불국사=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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