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살자

삶이 예술창작품이 되었다. 아들로부터 대화할 때 “응”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고 지적 받았다. 특히 조심해서 말해야겠다는 좋은 계기가 되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아 내 자신이 화들짝 놀랄 때도 한두 번 아니다. 수긍과 긍정, 창작의 계기는 모든 것을 수용하고 긍정하는 자세에서 태동된다. 즐거운 삶은 긍정모드가 첫째 조건이다. 서예 수업에서도 받아들이는 수용의 폭이 크면 클수록 글씨의 성장속도가 정비례한다. 도반들에게 반드시 ‘긍정심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한다.

‘응, 그래,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그렇지’ 이번 작품은 전통서예만 몇 십 년째 매달려온 나에게 천금같이 다가와준 작품이다. 거꾸로 돌려놓아도 아래 위가 똑같은 글씨, 좌로 눕혀도 오른쪽 돌려도 ‘응’이 되는 문자, 크고 작은 원의 크기는 매순간 다가오는 역경의 크기들, 색상은 내 기분의 느낌들이 숱한 사유가 모여 환희에 찬 절대 절명의 작품을 얻었다.

불기 2563(2019)년 6월 전시작품과 크기와 먹색을 달리하여 몇 작품 했지만 긍정의 힘은 ‘응’을 빛나는 최상의 작품으로 나의 기억에 새김되었다. 긍정은 지식의 힘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으로 자신에 대한 인정과 성숙한 내면의 순화된 동력의 힘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살림살이에 따라 사람을 대하고 사랑하는 법이 달라진다. 최고의 성숙은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인정해 주는데 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지켜주고 안아주는 모성애는 우리에게 무한 긍정을 설하고 계신다. 긍정의 힘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리에서 뜨고 싶어진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의 힘이 곧 자기 인생에 대한 성숙을 이끌어낸다. 작품을 다시 떠올린다. 그때 완성이라는 그 순간 내려놓은 붓을 감싸 안으며 울컥했던 그날이 아프고 쓰리고 힘들었던 나의 가슴을 쓰담쓰담 해주었다. 모든 좋은 것들은 멀리 돌아가는 길을 통해 목적에 다다른다. 

긍정은 인간의 내면의 자아를 환하게 한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이다. 고금당(古今堂) 벽에 걸린 작품의 안부가 궁금하다. 기분 좋은 날 그를 만나러 가야겠다. 한 사발 커피도 마시고 싶다. 분명 작품이 “응”하고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 올 것이다. 이런 인연 어디 있나요, 아니 역경과 순경이 다가와도 “응” 할 수 있는 마음공부나 해야겠다.

[불교신문3634호/2020년12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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