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탁
박인탁

설악산 신흥사는 한국전쟁 직후 혼란기를 틈타 불법반출됐던 소중한 성보 문화재를 연이어 환수하는데 성공했다. 먼저 미 해병대 중위 출신인 락웰 씨가 신흥사에 들렸다가 기념품으로 몰래 가져갔던 신흥사 경판 1점을 65년만인 2019년 3월 미국 시애틀 현지에서 환수했다.

이어 지난 7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신흥사 영산회상도와 6점의 시왕도를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으로부터 넘겨받았다. 신흥사는 11월9일 신흥사 통일대불 광장에서 영산회상도·시왕도를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공개한데 이어 같은날 유물기념관 1층 로비로 이운해 연말까지 누구나 친견할 수 있도록 했다. 

신흥사 성보의 환지본처(還至本處)에는 원소장자로서 10년전부터 누구보다 환수에 앞장서온 신흥사 스님들은 물론 종단과 정부부처, 지자체, NGO 등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김현정 전 라크마 큐레이터는 라크마 수장고에서 영산회상도를 처음 발견해 소장 사실을 고국에 알렸으며, 울산에 온 락웰 씨 손자의 친구로부터 처음 전화를 받았던 김만중 속초시립박물관 학예사는 경판이 신흥사 성보임을 알아챈 뒤 신흥사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등 관계기관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환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게다가 락웰 씨가 1954년 가을에 찍었던 기증 사진은 신흥사 영산회상도·시왕도 환수에 결정적인 물꼬를 트는 증거자료로 채택됐다. 문화재를 복원한 박지선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장과 이를 후원한 CJ그룹도 큰 힘을 보탰다. 

여기에다가 속초시민들도 노력도 적지 않았다.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를 결성한 뒤 두 팔을 걷어붙이고 생존 주민 증언을 취합해 동영상과 책자로 제작 보급하고 세미나를 여는 등 성보의 환지본처에 힘을 보탰다. 이와 더불어 속초시민들은 지난 8월과 11월 두 성보의 이운과 첫 공개에 맞춰 속초 전역에 500여 개의 현수막을 각각 내걸며 ‘우리 지역 문화재’의 환수를 반겼다. 

문화재는 원소장처에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낼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신흥사 경판을 반환한 락웰 씨는 문화재 불법반출에 대한 죄책감에 20, 30년 전 시애틀 주재 한국영사관에 연락해 반환하고자 했지만 당시 영사관 측으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해 무산됐다고 지난해 3월 환수단 일행에게 털어놨다.

‘귀찮은 일’, ‘특정 종교의 옛 유물’이 아닌 ‘우리 문화재’라는 관심만 있었다면 신흥사 경판은 물론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또한 20, 30년 전에 환수할 수도 있었던 셈이다. 우리 모두 지키고 후손에게 건네줘야 할 소중한 ‘우리 문화재’라는 인식을 갖는다면 보다 많은 우리 문화재가 하루속히 환지본처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신문3634호/2020년12월2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