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나를 생각하는 순간 남 생기고
나와 남이 생기면 윤회 시작돼
오온개공 자각하고 증득해야

등현스님
등현스님

욕계에 대한 욕망을 다스리거나, 자아의 실체를 파악하여 공(空)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4념처의 수행이 근본이다. 4념처의 수행이 익숙해지면 4정근을 닦아서 탐진치의 불선법을 다스리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선근을 증장시켜야 한다. 불선법이 가라앉으면 마음이 고요해져 4 여의족을 성취하게 된다. 이처럼 4념처의 수행을 시작으로 37조도품을 차례대로 수행하여 마침내는 고통(苦)의 원인을 보고(集), 그 원인을 적절한 방법(道)으로 근절해버리는(滅) 4성제를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해탈의 상태는 향유할 대상도 없지만 향유하는 자도 없다. 3계의 대상들에 대한 탐하고 싫어하는 마음 때문에 윤회하는 것이기에, 3계에 대한 탐심과 진심을 놓아버리면 향유할 대상이 없음을 알게 되고, 향유할 대상이 없어 향유할 자가 없으면, 그것이 바로 해탈이다. 3계에 대한 집착을 세분화하면 탐·진·치·산란·교만과 의심·악견 등의 번뇌이다. 또한 번뇌는 순간적으로 잠깐 멈추는 법(선정)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법(지혜)의 두 가지가 있다.

번뇌를 다스리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른 이유는 현행하는 번뇌가 사람마다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름다움에 탐착하는 사람은 부정관을 수행해야 한다. 부정관의 시작은 이러하다. 처음에는 껍질이 벗겨져 피부가 없이 붉은 살점만 있는 몸을 마음속으로 상상하고, 그 다음에는 살도 없어 온 몸이 뼈로 이루어져 있는 상태를 반복하여 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순간적으로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지 근본적으로 끊는 방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대상을 만나면 다시 탐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진심이 많은 사람은 자애관을 닦아 연민심을 기르는 수행을 해야 한다. 자애관의 핵심적 요소는 내가 사람들에게 부당한 일이나 싫어하는 일을 당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전생에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였고, 이런 속임수를 당함으로 인하여 전생에 갚아야 될 빚을 금생에 갚았다고 생각하면, 여러 가지 황당하고 부당한 상황에서도 성내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애심과 연민심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번뇌와 고통에 무지한 사람은 연기관을 닦는다. 여기서 어리석음(치)은 자신의 행복과 불행의 원인에 대해서 무지한 것을 말한다. 행복과 고통이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고, 행복과 고통이 여러 가지 인과 연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을 관하는 것이 바로 연기관이다. 행복의 원인에 무지한 자는 행복의 원인을 닦지 않으므로 행복이 오래가지 못하고, 고통의 원인에 무지한 자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게 된다.

교만한 마음은 인과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나와 나의 환경이 연기에 의해 발생하고 소멸함을 알면 교만심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산란심이 있는 사람은 수식관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수식관은 숫자를 세거나 호흡을 따라가면서 마음을 호흡에 메어두는 방법이다. 이처럼 탐심, 진심, 치심, 산란심, 교만 등을 다섯 가지의 대치되는 방법에 의해서 다스리는 것은 번뇌를 잠깐 멈추게 하는 것이지 근원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아니다. 

의심은 부처님과 가르침에 대한 의심인데, 그 가르침의 핵심은 연기와 무아이다. 악견은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이므로 이러한 번뇌들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필경 오온개공를 깊이 관하여야만 한다. 삼계를 윤회하는 가장 큰 원인은 오해(무명)이고, 그중 가장 큰 오해는 윤회하는 곳에 내(我)가 있다는 생각이다.

<입중론>에서 월칭대사는 “나와 남이 있고, 나의 것이 있다라는 생각들이 윤회의 가장 근본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법칭대사는 <량평석>에서 “나를 생각하는 순간 바로 남이 생기게 되고, 나와 남이 생기는 순간 바로 윤회는 시작된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오온개공을 철저히 자각하고 증득한다면, 이것이 바로 번뇌의 근원적 소멸이며 통탈위라고 한다. 

[불교신문3633호/2020년11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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