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거리는 놀빛에 움츠린 나무들

너른 뜰에 수북한 늦가을을 쓸지 마라

하얀 님 오시면 속닥이다 포근하게 잠들게다

혹한을 삭힌 속앓이는

싹 틀 때 씨눈에게 옹알이 할 게야

- 이형근 시 ‘당신만의 뜰이 아니다’ 전문
 


뜰은 넓고 그곳에 낙엽이 수북하다. 시인은 그 낙엽을 쓸지 말라고 말한다.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면, 그리하여 잠든 듯하게 쌓여 몹시 심한 추위를 겪고 나면 새로운 싹이 움틀 것이니 그 시간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어떤 무위도 없이, 다만 무심하게 시간을 견뎌 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에서 실감이 있는 선시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형근 시인의 이러한 무심의 경지는 시 ‘선가록’에서도 나타난다. “졸고 있는 햇살에// 그이는 생각이 없으시다네요// 한 천 년 내내// 봄 봄날”이라고 썼다. 무심과 무욕에는 봄날만 깃들 것이다. 오늘은 이 평상심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불교신문3633호/2020년11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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