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심 뛰어넘어 자비공덕의 숲을 기른다

불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100인의 법사 스님이 매일 법문을 이어가는 백고좌법회(百高座法會)는 상상만으로도 환희롭다. 신라 진흥왕 때 처음 시작되어 고려시대에 성황을 이루었던 이 법회를, 30여 년 전부터 몇몇 사찰에서 재현하기 시작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100인의 스님을 모시는 백일법문뿐만 아니라, 여러 스님이 일정기간 동안 설법을 이어가는 다양한 모습의 산림법회(山林法會) 또한 백고좌법회의 전통을 이어 조선시대를 관통해왔다. 불교가 탄압받던 시기에도 당대의 선사들이 전국을 종횡무진하며 산중에 법석을 펼친 활달한 기상이 그려지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법회들이 한 해를 마감하는 시기이자 안거 철에 집중적으로 펼쳐져 정진의 열기가 뜨겁다.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양산 통도사 화엄산림법회 장면. Ⓒ통도사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양산 통도사 화엄산림법회 장면. Ⓒ통도사

산사를 밝힌 환희로운 법석

‘산림법회’란 대중이 모여 함께 정진하는 법회에 두루 쓰이는 말이다. 앞에 화엄ㆍ법화ㆍ금강ㆍ미타 등 경전명이 붙으면, 하나의 경전을 정해놓고 일정기간 강설하는 모임을 뜻하게 된다. 그 가운데 화엄법석이 많이 펼쳐진 것은, <화엄경>이 대승경전의 꽃이자 불교교학을 대표하는 경전으로 39품 80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 릴레이 강설에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화엄산림의 설행기간은 대개 삼칠일, 30일, 49일, 53일, 100일 등으로, 일주일 정도의 법화산림, 금강산림, 유마산림, 지장산림 등에 비해 기간에 있어서도 압도적이다. 

역사적으로 고대 신라 때 임금이 주재하는 백고좌법회가 펼쳐질 무렵, 태백산에서는 의상스님이 이끄는 법회로 진리의 불이 환히 밝혀졌다. 671년 당나라 유학길에서 돌아온 의상스님은 화엄 근본도량으로 부석사를 세우고, 태백산에 대로방(大蘆房)과 소백산 추동(錐洞)에 초가를 지어 ‘부석사 40일회’, ‘추동 90일회’ 등의 강경법회를 연 것이다. <화엄경>을 설한 이 법회에 대중이 운집하였고, 제자들이 화엄의 법등을 이어 후일 전국의 명산에 화엄십찰이 세워지기에 이른다. 

이러한 기상은 전 왕조에 걸쳐 120여 회의 백고좌법회가 펼쳐진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시대와 근현대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몇몇 사례를 보면 17세기 호남의 뛰어난 사상가 처능(處能)스님은 현종의 불교탄압에 맞서는 한편 남북을 오가는 운수행각으로 산림법회를 펼쳤고, 대흥사 화악(華嶽)스님의 화엄산림법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1000여명의 승속이 모여들었다. 18세기 화엄학의 대가로 꼽힌 통도사 환성(喚醒)스님 또한 일생 동안 산사를 주유하며 법석을 열어, 1725년 금산사에서 열린 화엄법회에는 1400인의 대중이 운집했다고 한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불교대중화에 본격적인 발을 내디뎌,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대중의 눈높이로 경전을 설하는 각종 산림이 설행되기에 이른다. 1927년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스님이 도반 스님들과 함께 화엄산림으로 그 문을 열었고, 같은 시기에 파계사와 대각교 중앙선원, 부산 법륜사 등에서 화엄산림이 펼쳐졌다. 

화엄산림법회의 전통 

불교에서는 수행자들이 모여서 정진하는 모습을 우거진 숲에 비유해 총림(叢林), 산림(山林)과 같은 표현을 쓴다. 특히 ‘산림’이란 ‘최절인아산 장양공덕림(摧折人我山 長養功德林)’에서 따온 말로 ‘나와 남의 분별하는 마음을 뛰어넘어 자비 공덕의 숲을 기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산림법회를 열 때 이전에는 한두 스님이 경전을 집중 강설했다면, 점차 날짜마다 법사스님을 달리하는 릴레이법회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특설법회에서 연례법회로 전통을 쌓아가는 사찰도 많다. 

서울 구룡사와 대구 법왕사는 100인의 선지식을 모시고 100일 간의 설법을 이어가는 옛 백고좌법회를 복원한 바 있다. 1991년부터 시작된 구룡사가 <화엄경>을 강론하는 백일법회였다면, 법왕사는 경률론 삼장(三藏)을 펼치는 법회로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 법륜사에서는 1931년부터 고승대덕을 초빙해 화엄산림을 펼쳐온 역사가 깊다. 송광사의 경우 연말연초의 49일 동안 일주일마다 여는 금강산림법회를 16년간 이어왔고, 동화사에서도 7일간의 법화산림을 수년 째 열고 있다. 천태종 삼광사의 경우 ‘법화산림 백만독 관음정진’이라 하여 법회와 함께 <법화경> 독송과 관음보살 정근으로 백일 철야정진을 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부산 소림사에서는 화엄산림, 법화산림, 열반산림을 각 10년, 8년, 10년씩 회향하고, 5일간의 참회산림법회를 42년 째 이어가고 있다. 

그 가운데 삼동결제 중인 음력 11월에 열리는 통도사 화엄산림법회는 역사성이나 규모에 있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중법회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 달 동안 매일 오전, 오후 두 차례씩 <화엄경>의 각 품을 주제로 30여 분의 제방 법사 스님들이 강설하게 되는데, 이 기간에는 수천의 불자가 운집해 장엄한 정진의 법석이 펼쳐진다. 

그간 통도사 화엄산림법회는 1927년 경봉(鏡峰)스님에 의해 극락암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관련자료가 발굴돼 그보다 앞서 본사에서 개최되었음이 밝혀졌다. 1922년에 촬영한 구하(九河)스님의 사진과 <구하역사>라는 친필일대기에 따르면, 스님이 주지로 취임한 지 10년 되는 1922년에 소임회향을 겸해 대웅전에서 보담(寶潭), 해담(海曇) 두 스님을 강백으로 모시고 2월 그믐부터 한 달간 화엄산림법회를 열었던 것이다. 당시 화엄산림이 연례행사는 아니었으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면 개설하는 전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순천 송광사 금강산림법회 회향에서 법성게를 염송하며 도량을 도는 모습. Ⓒ불교신문
순천 송광사 금강산림법회 회향에서 법성게를 염송하며 도량을 도는 모습. Ⓒ불교신문

근대 화엄산림을 연 경봉스님 

경봉스님은 1925년부터 극락암에 만일염불회(萬一念佛會)를 조직해 <화엄경>을 설법하기 시작했다. 농사가 주업인 당시 불자들에게 겨울철 농한기를 틈타 사찰에 기거하면서 기도하고 불법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다가 1927년 겨울에 극락암 무량수각에서 도반스님들과 함께 삼칠일 동안 본격적인 화엄산림법회를 개설하게 되었다. 

경봉스님은 젊은 시절 <화엄경>을 통해 발심하였고, 만해스님을 만나 수학하면서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에 경남지역 각 포교당을 돌며 화엄법문을 설하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화엄의 심오한 세계를 알리는 데 열정을 쏟는 한편으로, 몇 년 간의 구상 끝에 연례적인 대중법회를 기획하게 된 것이다. 

특히 경봉스님은 낮에는 무량수각에서 <화엄경>을 강설하고 밤에는 삼소굴에서 화두정진을 하다가 1927년 11월 20일 새벽, 방안에 촛불이 출렁이는 것을 보고 조사선의(祖師禪義)를 깨달았다. 이어 1930년에는 화엄산림법회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며 <화엄경> 법문이야말로 어둠 속의 등불과 같은 것임을 강조하였다. 

극락암에서 시작된 화엄산림이 본사로 내려와서 동짓달 한 달간 화엄전에서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1975년의 기록을 보면 12월 3일부터 한 달간 열린 화엄산림에 경봉, 월하, 벽안스님 등이 설법을 하였다. 그 뒤 1994년에 400평의 설법전이 완공되면서 연인원 만인 이상이 동참하는 대법회로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한때 법회기간을 53일로 늘리고 53인의 법사 스님을 모셔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53인의 선지식을 상징하는 법석을 열었다가, 다시 한 달로 정착돼 오늘에 이른다. 

초기에는 동참자들을 위한 설법 중심이었으나, 점차 영가를 청해 함께 법문을 듣게 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를 아우르게 되었다. 따라서 영가위패를 모시고 토요일 저녁예불을 마친 뒤 법성게(法性偈) 정진을 하며, 일요일 오전법문을 마친 뒤 천도재를 봉행한다. 천도재가 영가에게 시식을 올리는 의식이라면, 법성게 정진은 다함께 환희로운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기를 염원하는 의식이다. 

산자와 망자를 위한 법문

한 달간 화엄법석이 펼쳐지는 중에 매주 영가에게 시식을 올리고, 극락왕생의 의미를 구상화해 법성게 정진을 하는 것은 종교의례로서 적절한 구도를 지녔다. 이로써 동참신도들은 법회의 공덕을 선망 부모·조상에게 회향하는 의미를 실천하게 될 뿐만 아니라, 릴레이 법문 속에 주기적인 활력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성게 정진은 많은 대중이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법성게’로 통칭되는 이 의식은, 의상스님이 <화엄경>의 핵심사상을 210자로 축약해 만든 법성게를 염송하면서, 이를 도형화한 법계도(法界圖)를 돈다는 뜻이다. 화엄법석이 이어지는 기간에 화엄의 핵심이 담긴 게송을 새기며 도량을 도는 것은 그 의미가 잘 구현된 의식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토요일 저녁예불이 끝나면 법주스님을 모시고 <금강경>을 독송한 다음, 스님들과 불자들이 긴 광목 끈을 잡고 법성게와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하며 법당을 돈다. 함께 잡은 끈은 일체 중생이 연기적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뜻하며, 반야용선에 의지해 고해의 바다를 함께 건너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앙에서는 바라춤ㆍ나비춤으로 불법을 찬양하는 작법을 펼치고, 회심곡의 장엄염불이 이어진다. 조선시대의 법석이 천도재와 함께 개설되었듯이, 법회의 공덕으로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이기도 하다. 

회향법회에는 마지막 법사 스님의 설법을 마치고, 영단에 시식을 올린 다음 영가를 떠나보내는 봉송이 이어진다. 위패를 모시고 금강계단 앞으로 나아가 다함께 인사를 올리고, 법성게와 장엄염불을 염송하며 긴 행렬을 이루어 소대로 향하는 것이다. 소대에 도착하면 위패와 장엄물을 태우면서 화엄산림법회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동짓달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시간이자 동안거에 든 수행자들의 정진이 무르익는 결제 철로, 이 기간에 불법(佛法)의 향연을 이어가는 것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산자와 망자 모두가 불법의 환희로움 속에 화엄의 세계를 체험하며 성찰과 신앙적 의미를 아우르는 대중법회라 하겠다.

[불교신문3633호/2020년11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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