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에서 마주한 추(秋)갑사

석탑과 단풍 몇 그루 그리고 함께한 가족만으로 갑사 가을은 멋진 추억이 된다.

계절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풍경을 ‘잘’담아 와야 할 때가 사진기자에게는 종종 있다. 11월10일이 그런 날이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를 촬영할 요량으로 공주 갑사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결론만 말하자면 풍경사진은 당일 제작되는 주요지면에 미반영 된다는 것이다. 출장 이유가 급 퇴색했다. 이럴 경우 일반적인 선택지는 2가지다. 바로 회사로 복귀하거나, 비중이 작은 사진기사로 만족하는 것이다.

잠시 난감. 하지만 이내 다른 귀착점이 떠올랐다. 내려가는 곳은 ‘춘(春)마곡 추(秋)갑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이 아름답다는 갑사. 기사기획을 수정해 본 지면에 싣기로 마음먹었다. 왜? 그 명성을 알기에.
 

대적전 오르는 돌계단 길. 어느 계절에 와도 한 폭의 그림을 선사해준다.

일주문을 지나면 사천왕문을 거쳐 바로 사찰중심 영역으로 오를 수 있다. 하지만 풍광이 좋은 시절인연에 갑사를 찾았다면  철당간지주(보물 제256호)를 거쳐 대적전을 지나는 길을 추천한다. 그래봤자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길이다.
일반적으로 당간지주는 대웅전 앞에 있기 마련인데, 갑사 당간지주는 대적전에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드물게 철당간이 함께 잘 보존돼있어, 보는 재미도 있다.  
먼저 산 능선 방향으로 시야가 트이기 시작하면 알록달록 계룡산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갈색 잎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단풍이 어우러졌다. 이때면 단풍의 적기에 도착한건지, 혹은 얼마나 빠르거나 늦었는지 직감할 수 있다. 대략 일주일 전쯤이 절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도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는 크게 모자람은 없다. 
 

웅장함은 꼭 엄청난 규모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알게 해준 갑사의 붉은 단풍.

오르는 길 좌우로 색색의 단풍이 다시 등장한다. 또한 그 나무들 사이를 제약 없이 거닐 수 있다. 풍성한 단풍을 매달고 있는 나무 밑으로 들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라다 봤다. 하늘 천장을 단풍잎 뒷면으로 빼곡히 메워버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단풍은 스스로 선명한 색을 발하지만, 역광으로 가을 햇살이 머금으면 투명하고 맑아진다.
 

이번 여정의 시작점 이었던 감나무 따기. 대웅전 뒤편의 감나무에서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마다하지 않고 도와주신 탄주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수분이 줄어들며 누렇게 돼 버린 나뭇잎이 이런 햇살을 머금으면, 어린 병아리 솜털 마냥 여린 노란빛이 되살아난다. 붉은 단풍은 더욱 놀랍다. 떨어짐을 준비하며 바싹 말라 오그라든 잎이 머금은 햇살로 어린아이의 ‘고사리 손 합장’을 닮았다. 노년의 잎들이 햇살에 의지해 여렸던 봄날의 어느 날을 추억한다. 그리고 마지막 잎새가 되어가고 있다.

그 길을 계속 걸다보면 돌계단이 보이고 그 위로 대적전 지붕이 승탑(보물 제257호)과 함께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고 단풍나무 한그루가 운치를 더해준다.   
 

언제나 멋스런 갑사의 편액은 가을에서 변함이 없다.

이내 대적전 주변과 갑사 중심영역을 이어지는 대적교를 만나게 된다. 계룡갑사(鷄龍甲寺)라는 푸른색의 강당 편액이 오는 이들을 한 번 더 반갑게 맞아준다.

평일임에도 가을 갑사를 찾은 이들이 있다. 지금까지 잘 참았던 올 한해 큰 숨 한번 힘차게 들어 마신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는지 확인까지 마치고서야 마스크를 잠깐 벗는다. 가족과 사진 한 장 남기는 모습이 애처롭고 애틋하다. 이 또한 잘 극복하고 나면 훗날 또렷이 남는 색다른 추억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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