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숭총림 방장 달하스님

“눈·코를 돌이키니 철저히 신령스럽네. 쉬어 돌아오니 온몸이 본래 청정이라 인연을 놓고 상속을 끊으니 고금이 이 물건이로다. 백로는 싹트지 않는 가지 위에 꿈꾸고 숨길은 나무 끝끝마다 봄이로다.” (만공스님 법어)

덕숭산 동안거 결제법회는 만공스님 열반다례일 전야에 산중이 대웅전에 모두 모여 “내 얼굴 못 보는 것이 내 법문이다“라고 하신 만공스님의 법문 분위기로 겨울 안거에 들어갑니다. 다례를 모실 때는 특별히 조용합니다.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내려다보시는 턱 밑에서 치는 죽비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평생 들었던 법문이 이 한 죽비 소리에 다 꿰어집니다. 어떤 경책보다, 어떤 법문보다 실제적인 이 죽비소리는 만공스님의 할이요, 언하대오의 시절인연입니다. ‘경허스님, 만공스님과 함께 정진하는 이 도량에 겨울 방부를 들였구나! 이런 횡재가 어딨나!’ 이런 생각이 절로 듭니다.

수미산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다시 산을 찾아 헤맬 일이 없어집니다. 그때 그때 인연 닿는 대로 산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부처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한 마디가 화살로 청석 바위 돌호랑이를 관통시킵니다. 모기의 침으로 철우의 무쇠 소가죽을 뚫고 피바다에 풍덩 빠지게 합니다. 부처님의 유아독존 이 한 마디는 언하대오의 한 마디요, 부처님 탄생 제 일성(第一聲)입니다. 이 물건은 본래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입니다.

그래서 이놈은 고봉밥을 먹는 상머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 잘하는 상머슴이 되겠습니다.스치는 작은 인연도, 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입니다. 우주를 굴려주는 대 달마요. 모든 생명을 살리는 관세음보살입니다. 행자를 시봉하고, 대중을 시봉하는 대승보살이 되겠습니다. 검다, 희다를 넘어서 다 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중에 들고 싶은가? 부처님의 '유아독존' 이 한마디에 남을 탓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남을 원망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끝없는 삼보의 대자대비 앞에 이 정성을 바칠 뿐입니다. 모두가 명훈가피요, 자타가 일시에 이 자체로 녹아져 ‘이 뭘까' 뿐입니다.

동안거의 입방은 하늘이 감동하고 땅이 감동할 일입니다. 이 결제에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놀랍고 놀랄 일입니다. 내가 이 안거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놀랍고 놀랍습니다. 바보처럼 공부해갈 뿐입니다. 세상의 때를 다 벗어났다 하더라도 피곤이 남아있으면 쉬어 줘야 합니다. 근원을 알았다 하더라도 시작일 뿐입니다.

경허스님께서는 “맑은 바람이 푸른 대나무를 흔든다’ 고 하는데 어느 곳에서 이런 소식을 알았는가“ 하셨습니다. 경허스님은 일생을 통틀어 '이 뭘까' 였습니다. 한 평생 '이 뭘까'를 둥실둥실 대하의 물결처럼 멋있게 굴리다가 臘月 三十日 眼光落地時에도 오직 한마디 부시하물, 다시 '이 뭘까' 였습니다. 옛 사람은 '이 뭘까'에 의심이 떨어지고 확신이 서면 세상만사 '이 뭘까'에 맡겨버리고, 울력할 때 울력하고 예불할 때 예불하고 청규 따라 힘닿는 데까지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단풍이 낙엽이 되어 뿌리로 돌아가고 산천은 봄을 잊어버리고 깊은 휴식에 들어갑니다. 천년의 고요가 장중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생각을 쉬고 내 자리로 돌아와 안거에 계합하니 깊은 호흡이 뿌리째 시원해집니다. 자고 새면 물과 육지 허공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수많은 눈동자들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늦어버린 생각으로는 감당될 일이 아닙니다.

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고불이요 태어나기 전이요
응연이 한 모양 둥그렀다.
석가도 오히려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을
가섭이 어떻게 전한다고 하느냐.

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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