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사 불화기행] <21> 영축산 통도사 영산전 견보탑품도
[한국 산사 불화기행] <21> 영축산 통도사 영산전 견보탑품도
  • 신광희 중앙승가대학교 연구교수
  • 승인 2020.11.27 10:32
  • 호수 3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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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견보탑품도’이자 사찰벽화의 백미
통도사 영산전 서벽 전경.
통도사 영산전 서벽 전경.

통도사는 경남 양산 영축산에 자리한 (영축)총림이자 조계종 제15교구본사로, 신라 때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석가여래의 정골(頂骨), 지절(指節), 치아사리, 그리고 금란가사가 모셔진 불지종가(佛之宗家)이자 국지대찰(國之大刹)이기도 하다. 통도사는 동서로 길게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입구에서부터 하로전(下爐殿), 중로전(中爐殿), 상로전(上爐殿) 구역으로 나누곤 한다. 

영산전은 하로전 구역의 중심 법당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영산(靈山)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한 인도 왕사성(王舍城) 영축산(靈鷲山)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 건물은 영축산을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법화경> ‘서품(序品)’을 보면 ‘불주왕사성기사굴산중(佛住王舍城耆闍崛山中)’이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기사굴(耆闍崛) 산중이 바로 영축산이다.

통도사 영산전의 최초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고려 초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는데, 현재의 모습은 18세기에 갖춰진 것이다. 관련해서 구체적인 기록도 전한다. 바로 1716년에 쓰여진 ‘영산전천왕문양중창겸단확기문(靈山殿天王門兩重創兼丹雘記文)’이다.

이에 따르면, 1713년 봄 어느 날 밤에 화재로 영산전과 천왕문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었고, 1714년 임간청인(任間淸印)스님 등 네 분의 대선사가 모연(募緣)하여 건물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이듬해인 1715년에 단청 불사를 했고 1716년 모든 공사를 마무리했다. 법당 내부가 마련된 후에는 1734년에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를 봉안하고 1736년 불상 개금을 진행했으며 1775년에 석가팔상도를 제작, 봉안했다. 
 

견보탑품도, 18세기, 400×234cm, 통도사 영산전 서벽.
견보탑품도, 18세기, 400×234cm, 통도사 영산전 서벽.

영산전의 찬란한 벽화 세계

벽화는 불화의 시원으로, 그 전통이 가장 오래된 형식이다. 사찰의 전각 안팎에는 해당 건물의 성격에 부합하는 주제의 그림들이 그려지며 장엄을 위한 단청(丹靑)도 함께 조화를 이룬다. 통도사 영산전의 경우도 벽체와 포벽은 물론 내목도리 윗벽과 대량, 창방 등에 두루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그 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외벽화는 풍화 등으로 현재 훼손이 심하지만, 내벽화는 보존이 잘 되어있다. 전체적으로 뚜렷하면서도 세밀한 필선과 유려한 채색으로 이루어진 불화 걸작 중의 걸작이다. 

특히 서벽에는 <법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에 근거한 일명 ‘견보탑품도’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내목도리 윗벽에는 대부분 <석씨원류응화사적(釋氏源流應化事蹟)>에 나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행적과 불제자들의 전법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석씨원류응화사적은 명나라 15세기 초반에 편찬된 이후 청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수정, 증보된 석가모니 부처님 관련 불서이다. 부처님의 일대기와 열반 이후 제자들이 서역과 중국에 불법을 전파한 과정들을 기록했다.

흥미로운 점은 사건의 전개에 따라 문자로 내용을 서술하고 그림으로 도해했다는 점이다. 총 400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부처님 일대기가 200항목, 제자들의 전법기(傳法記)가 200항목이다. 

영산전에는 석씨원류응화사적 중 총 48항목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그중에는 ‘사굴산법화묘전도(闍啒山法華妙典圖)’도 포함되어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싼 곳의 나무 아래, 부처님이 풀 방석 위에 항마촉지인을 하고 앉아계신다. 그 앞에는 사리불이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석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그 외에도 옷을 보시한 공덕으로 미래에 부처가 된다는 수기를 받은 바라문의 이야기를 그린 ‘시의득기도(施衣得記圖)’,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제석천이 변신한 길상이라는 이에게 보리수 아래에 깔 풀을 얻는 내용을 그린 ‘천인헌초도(天人獻草圖)’ 당나라 때 현장스님이 인도로 경전을 구하러 가던 길을 그린 ‘현장취경도(玄奘取經圖)’ 등 다양한 내용이 그림으로 펼쳐져 있다. 
 

견보탑품도 부분 (다보여래와 석가여래).
견보탑품도 부분 (다보여래와 석가여래).

벽화로 구현된 법화경 견보탑품

견보탑품도(見寶塔品圖)는 거대한 보탑 안에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나란히 자리를 나누어 앉아 있는 소위 ‘이불병좌(二佛竝坐)’를 표현한 벽화이다. 거대한 벽에 높게 솟은 보탑과 그 안에 자리하신 두 분의 부처님, 그 주변의 보살과 제자들이 합장한 채 서 있다. 그 옆의 양 벽면에는 협시청중(脇侍聽衆)도 그려져 있다. 이렇듯 이 벽화는 법화경 제1품인 ‘견보탑품’을 시각화한 것인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때, 탑 높이 500유순이요, 너비 250유순이나 되는 것이 땅에서 솟아나 공중에 머무르니, 갖가지 보물로 치장하고, 오천의 난간이요 감실이 천만이라.

세존이시여, 그 무슨 까닭으로 이런 보탑이 땅에서 솟아나며, 또 그 속에서 음성이 들리옵니까?

이 보배로운 탑 가운데는 여래의 전신이 계신다. 오랜 과거에 동방으로 한량없는 천만억 아승기 세계를 지나 보정(寶淨)이라 하는 나라가 있었으며 그 나라에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그 이름이 다보(多寶)였느니라. 그 부처님께서 보살도를 행하실 때 큰 서원을 세우시되, ‘만약 내 성불하여 멸도한 뒤에 시방 국토 그 어디든 법화경을 설하는 곳 있을 양이면, 내 탑이 이 경을 듣기 위하여 그 앞에 솟아나, 증명해 좋다고 찬탄하리라’. 

그때, 사부중이 과거 무량 천만억겁 그 전에 멸도하신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 설하심 뵙고, 일찍이 없던 일이라 감탄하여 천보화 무더기로 다보불과 석가불의 위에 흩더니, 그 때 다보불이 보탑 중에서 자리 반을 나누사 석가여래에게 드리시며 이리 말씀하시되,

석가모니불께서는 이 자리에 앉으소서. 곧 석가모니불이 그 탑속에 들어가 그 자리에 결가부좌하셨다.
 

(석씨원류응화사적) 시의득기도, 18세기, 44×45.5cm, 통도사 영산전 남측면 내목도리 윗벽.
(석씨원류응화사적) 시의득기도, 18세기, 44×45.5cm, 통도사 영산전 남측면 내목도리 윗벽.

조선후기 불교 벽화의 백미

견보탑품도는 세로 400cm, 가로 234cm의 거대한 화면에 그려져 있다. 중앙에는 오색 서운에 싸인 보탑이 우뚝 솟아 있으며 탑신과 옥개에는 화려한 영락과 풍경이 장엄되어 있다. 각 층의 지붕에는 기왓골까지 표현했으며 탑신에는 흰 선을 이용해 면을 나눈 것까지 묘사했다.

또한, 초층부터 7층까지는 난간을 표현했고 그중 3층까지는 연꽃잎 모양의 난간을 세밀하게 그려 넣었다. 보탑의 주위에는 서운 속에 상반신을 드러낸 보살과 제자들이 좌우 각 2위씩 대칭을 이루며 서 있다.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는 보탑의 3층에 마련된 감실(龕室)에 서로 마주 보며 합장한 자세로 자리하고 계시며 그 뒤로는 오색의 서기(瑞氣)가 뻗어 나가고 있다. 

이 벽화는 붉은색, 녹청색, 황토색, 청녹색, 그리고 백색을 위주로 채색했는데, 채색의 배분이 조화롭고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일반적으로 벽화는 윤곽선을 위주로 묘사되어 있고 형태 표현에 중점을 두는 편이지만, 이 견보탑품도는 윤곽선 내부의 표현은 상당히 정밀하게 처리했다. 

이 그림에서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부분은 보탑의 화려한 장엄이다. 이에 대해 견보탑품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보탑은 가지가지 보물로 장식되어 있으며, 5천의 난간과 천만의 방이 있으며, 한량없이 많은 당번을 장엄하게 꾸미고, 보배 영락을 드리우고 보배 방울을 또 그 위에 수없이 달았다. 그 사면에는 다마라발전단향(多摩羅跋栴檀香)을 피워 향기가 세계에 가득하고, 모든 번개(幡蓋)는 금·은·유리·차거·마노·진주·민괴 등 7보를 모아 이루니, 그 탑의 꼭대기는 사천왕궁에까지 이르렀다.

통도사 영산전 견보탑품 벽화는 18세기 초 건물의 중수 및 단청 불사 때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법화경 견보탑품의 내용을 구체적이면서도 우아한 화취로 재현한 한국불교 벽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현재 보물 17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교신문3632호/2020년11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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