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
이봉주

스승님의 김삿갓 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리기 위해 수상 장소인 영월을 가는 길이었다. 내가 운전하는 차에 세 분의 여성 시인님을 모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고속도로를 달릴 때 한 분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그런데, 그분은 휴대폰을 받자마자 무 잘라내듯 “됐어요 끊어요” 하는 퉁명스러운 말로 바로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당연 옆 자리 앉아있던 시인 한 분이 “잘 가고 계신지 걱정이 돼서 남편 분께서 전화하신 것 같은데 왜 그리 매정하게 끊으세요?”하고 걱정스러운 듯 물으니, 그 시인이 하시는 말씀이 아침에 남편 분께서 화장실에서 용을 쓰며 용변을 보길래 왜 그리 용을 쓰냐고 했더니 남편 분이 버럭 화를 내더라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예전에 읽었던 김태정 시인의 <동백꽃 피는 해우소>시 구절이 어렴풋이 머릿속을 스쳤다. “똥 누는 일 그 안간힘 뒤에 바라보는 쪽창 너머 환하게 안겨오는 애기 동백꽃 꼭 그만한 나무 한 그루였으면 좋겠다” 그리 생각해 보면 어찌 화가 안 났겠는가!

환하게 안겨오는 애기 동백꽃 같은 나무가 되려는 순간을 방해했으니, 솔직히 나도 변을 볼 때 가끔 용을 쓴다. 그래서 이 시 구절을 그 시인 분께 들려드리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뭐라고 남편 분을 변론을 해 드리고 싶었지만 시 구절이 정확하게 생각이 나질 않아 말없이 운전만 했다. 

화장실하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정호승 시인은 그의 시 <선암사>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라고 썼다. 그리고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라고 썼다. 화장실은 절대 둘이 함께 할 수 없는 혼자만의 공간이다. 예전에 누군가는 속된 말로 화장실을 나홀로 다방이라고도 했다.

해우소는 굳이 글자 풀이를 하지 않아도 절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몸 안의 음식의 찌꺼기만 버리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찌꺼기도 함께 버리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망상도 하고 번뇌도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깊은 명상을 하거나 고독에 빠지기도 하고 지나간 일을 후회도 할 것이다. 

그들이 쭈그리고 앉아 아무도 모르게 해우소에 버리고 간 번뇌와 눈물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픈 詩일지도 모른다. 나는 커다란 바가지를 들고 선암사 해우소로 가고 싶다. 스님들이라고 번뇌가 없을까?

그곳 해우소에는 스님들이 버린 번뇌와 속세인들이 버린 번뇌가 함께 뒤섞여 동백꽃 같은 詩로 피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안간힘을 쓰며 저 깊은 어둠의 통 속에 버리고 간 詩를 한 바가지 퍼 올려 그 곰삭은 詩의 향기를 가슴 깊숙이 들이키고 싶다.   

[불교신문3632호/2020년11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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