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밤 붙드는 별에서
최선을 다해 빛나는 너를 본다

혜인스님
혜인스님

동트는 어스름에 밤이 도망가 달빛이 희미해질 때까지 빛나는 별들이 있다. 본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 여섯. 이 밤의 끝을 잡고 있는 별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그저 보는 일뿐이란 걸 아는 듯, 별들은 볼수록 하나둘 더 빛을 발한다.

보라. 세계적인 스타가 된 방탄소년단이 쓰는 언어는 이제 신조어가 되어 사전에 등재되기까지 한다. “보라해(I purple you).” 무지개의 마지막 빛깔인 보라색처럼 ‘마지막 빛이 다할 때까지 너를 사랑해’라는 뜻이란다. 스타는 별(star)을 알아보는 법인가보다. 별이 내게 말하거든, 마지막까지 빛을 내는 나를 보라고.

대학 전공 수업 때 독특한 강의를 하시던 초빙 교수님이 떠오른다. 아직 현역에서 방송, 영화 콘텐츠를 제작하는, 모교 선배시기도 한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 날은 한 학기를 마치는 날이자, 서로 이별하는 날이자, 당연하게도 기말고사 일이었다. 독특했던 수업만큼 시험문제도 아주 단순하지만 답하기는 어려운 방식이었다. 그래서 끝까지 풀었다. 답을 아는 것도 아닌데, 더 쓸 말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최대한 잘 답하고 싶어서 마지막까지 풀었다.

교수님은 끝까지 시험지를 붙들고 있는 내게, “학생한텐 보너스점수 줘야겠네, 제일 마지막까지 푸니까”라고 하셨다. 교실 문을 나서는 순간 문제도 답도 까먹어버렸지만, 결국 그 과목은 A⁺를 받았다.

아직 동트기 전이지만 어느새 별도 달도 사라져버린 새벽 숲을 걷는다. 한쪽에 쌓여있거나 여기저기 흩어져있거나 겹겹이 붙어, 가만히 있는 돌무더기를 본다. 아름답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말라비틀어진 단풍잎들을 본다. 아름답다. 딛고 있는 흙과 발걸음으로 난 길과 가문 계곡을 본다. 아침 공기의 참과 산뜻함이 내 몸을 감싼다. 아직 넘어 나오지 않은 햇볕의 여운이 스며든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드디어 노오란 볕이 든다. 보라. 마지막까지 밤을 빛내던 별의 선물을.

기특하다. 이제 86일 남은 천일기도까지, 914일 동안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는데도. 가끔 늦잠을 자도 기어코 일어나 도량석을 돌고, 종송을 하고, 새벽예불을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는 게. 마지막까지 밤을 빛내고 떠나는 새벽 별들에게 그렇게 매일 작별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는 게. 하루에 네 번씩, 가끔 빼먹는 때가 있어도 다른 방식으로라도 어떻게든 한 날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했다는 게. 그렇게 914일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는데도, 오늘도 꾸역꾸역 또 기도를 한다는 게. 참 기특하다.

포교원에서 지원한다는 청년 불자 유튜버들이 나를 찾아왔었다. 그분들과의 대화를 마칠 때쯤, 카메라를 들고 있던 PD가 1년 후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영상편지로 담아보자고 했다. 마지막 차례가 내게 왔을 때 나는 카메라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PD가 말했다.

“하시면 됩니다, 스님.”
“끝났는데요.”
“네?”
“눈으로 말했어요.”
“아-”
“내가 보고 있다고, 1년 후의 내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1000일을 86일 남긴 오늘의 나를, 새벽이 오도록 마지막까지 밤의 끝을 붙들고 있는 별에서 본다. 희미해지는 작은 빛 속에서, 별이 되고자 했던 환상 속의 나를 보고, 별이 되지 못한 현실 속의 나를 보고, 그저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해 빛나고 있는 너를 본다.

보라. 그 작은 빛을. 마지막 별빛의 눈물 나는 노력이 선사하는 아침의 커다란 기적을. 온 마음을 다해, 마지막까지 ‘보라’한다. 사랑한다. 너를.

[불교신문3631호/2020년11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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