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등 외부대상은 마음이 만들어

원효대사 해골 속 물 마시고
외계대상은 인식되는 과정서
주관적으로 드러남을 깨달아

등현스님
등현스님

가행위 수행의 네 번째는 법념처(法念處)이다. 법은 현상이라고도 하는데, 이 법을 오온에서는 신수심을 여읜 나머지의 개념(想)과 욕구(行)이다. 신수심이 인간의 몸이나 마음과 함께 작용한다면 법은 주로 개념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개념은 외부대상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믿는다. 외부 대상의 경험되어진 상태가 개념인 것이다.

하지만 개념과 외부 대상이 정확하게 일치하는지는 증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유식>에서는 개념에 의해 외부 대상이 경험되어진다는 물즉심(物卽心)을 말한다. 그러므로 유식의 법에 대한 관찰은 곧 개념에 대한 관찰이다.

신수심은 무상하지만 경험할 수 있는 실재인 것과 달리, 법은 실재하는 대상이 아니고 주관적인 마음에 의해 굴절된 표상이다. 그러므로 꿈과 같고 신기루와 같은 외부 대상들에게 집착할 것이 없다는 것이 바로 법념처 수행의 핵심이다. 

칸트는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가 현상세계(phenomena)라고 한다. 현상은 ‘물질 그 자체(noumena)’가 아니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마음의 12카테고리를 통해서 바라본 물질 상태이다. 그리고 이 카테고리를 떠난 ‘물질 그 자체’는 인간으로서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버클리는 조금 더 나아가서 세계는 ‘오직 인식할 때만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다.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는 것이다.

원효대사가 동굴에서 목이 말라 물을 마신 후 다음날 깨어보니, 그 달게 마신 물이 바로 해골바가지의 물이었음을 보고, 외계 대상은 인식되는 과정에서 주관적으로 드러남을 깨달아 ‘삼계유심 만법유식’이라 하였다. 이때 삼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외부 대상이다. 이 모든 존재가 사는 세계가 오직 알라야식의 현현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만법은 유식에서 오위백법(五位百法)을 말한다. 물질과 마음 그리고 모든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을 5가지 종류와 100가지 구성요소로 나눈 것이다. 이것은 8심, 51심소, 11물질, 24심불상응법, 6무위이다. 마음은 전오식, 제6식, 제7식, 제8식, 모두 8가지이고, 물질은 <구사론>에서처럼 5근, 5경, 1무표색, 합해서 11가지이다.

심불상응행은 인간의 사유 대상 중 물질도 마음도 아닌 개념 24가지이다. 그리고 무위법은 열반 등 조건이 모두 해체된 상태의 6가지를 말한다. 이처럼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을 모두 망라한 것이 오위백법이다. 이들 모두가 인식할 때만 현현한다는 것이 바로 만법유식이다. 

세계는 기세간과 기세간에 사는 중생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기세간은 욕계, 색계, 무색계이고, 기세간의 중생은 천상, 수라, 인간, 아귀, 축생, 지옥 등의 육도 중생이다. 그렇다면 세계와 육도 중생은 어디에서 왔는가? 초기불교에서는 “업에 의한 과보에 의해서 기세간과 육도 중생이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업은 어디에 의지하는가? 결국 마음에 의지해서 행한 행위가 바로 업이다. 이 세상에 있는 좋은 것과 나쁜 것, 괴로움과 즐거움이 모두 자신의 업에 의해서 경험되는 것이지 그것 자체로 실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만법유식이다.

세친은 유식 20송에서 이 문제를 자세하게 다루면서 ‘지옥 중생들은 업의 과보에 의해 그곳에 태어났다고 하지만, 지옥사자는 무슨 과보로 인해서 지옥에 태어나게 됐는가?’라고 반문한다. 만약 좋은 공덕을 많이 쌓았으면 천상이나 더 좋은 곳에 가야만 할 것이고, 악업을 지어서라면 고통 받는 지옥중생으로 태어나야지 왜 고통을 주는 지옥사자로 태어나게 됐는가?

만약 불보살의 화현이라면 불보살이 중생에게 고통을 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친은 지옥사자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발생되었는지 경전이나 논리를 통해서 증명할 수 없기에 마음에서 발생한 것으로 결론짓는다. 마음을 떠나서 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업에 의해서 세계는 꿈과 신기루와 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 등 외부 대상은 마음에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바로 유식무경과 만법유식의 원리이다.

[불교신문3631호/2020년11월21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